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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ynthia Apr 26. 2020

'바다의 눈'을 찾아서

자연을 만끽하기 위한 (춥고 배고프고 힘들었던) 여정

눈으로 뒤덮인 산은 누구에게나 낭만, 멋, 그리움을 불러 일으킨다. 

그 환상적인 풍경을 마주하며 설 떄의 감격, 감동은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감정을 자아낸다.

그러나 그곳에 직접 몸을 담그러 가는 것은 쉽기만 한 여정은 아니었다.


모르스키에 오코까지, 크라쿠프에서 당일치기를 계획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크라쿠프 버스터미널까지

크라쿠프는 나이트 버스가 다닌다. 폴란드 입국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시차적응이 덜된 때라, 오후 5시에 잠들어 새벽 3시에 깨는 불균형한 수면패턴 덕택에 크라쿠프 터미널로 아침 일찍 나갈 수 있었다. 한국에서 출발한지 안 될 때를 노리는 것이 좋다. 아무리 늦어도 4시 반까지는 터미널에 도착해 5시 이전 버스를 타는 것을 추천한다.

구글맵으로 실시간 버스 위치를 알 수 있기 때문에, 도착 10여 분 전에 숙소를 나서서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시내 곳곳을 등불이 밝혀주고 있어 생각보다 무섭거나 어둑어둑하지 않았다. 새벽의 외국 황량한 거리에는 차라리 사람이 아무도 없는게 낫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옆에서 현지인 두어명이 담배를 피고 있었고 제발 나에게 말을 걸지 않기만을 기도했다.......(.....)

1월 말 새벽 3시 30분 경 크라쿠프 시내 거리 풍경. 춥기 때문에 옷을 단단히 갖추고 나가야 한다. 현지인이 있으면 눈도 마주치지 말고 태연한척 하는게 제일이다.

터미널에서 맞닥뜨린 의외의 난관(미리 한번 가보자)

의외의 난관은 버스터미널에서 발생했다. 크라쿠프 역을 가로질러 가야 하는데 길을 잘 몰라 어두컴컴한 곳을 헤매면서 공포감을 느꼈다. 구글맵 상으로는 지하 통로를 이용하라고 나왔는데, 지하 통로는 클로즈하는 것 같고 위쪽 통로를 이용해 기차역을 관통하면 나이트 트레인을 타는 곳이 나온다. 밝은 곳으로 나오니 안심이 되었다. 이곳을 지나 역을 완전히 빠져나와, 계단을 한 층 올라가면 크라쿠프 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 기차역과 터미널이 붐비는 타이밍에 미리 한번 가볼 것을 추천한다. 어둡고 인적드문 곳에서 헤매는 것이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새벽시간대는 티켓박스가 문을 열지 않기 때문에, flix Bus 홈페이지를 통해 자코파네 행 버스를 결재했다(약 13유로. 한국 신용카드 사용 가능). 그리고 출발 2분을 남겨둔 버스에 올라타 기사님께 QR 코드를 보여주자 단말기로 인식하더니 타라는 신호를 보낸다. 지정석이 아니기 때문에 빈자리 아무데나 앉으면 된다. 사진은 없지만 참고하세요....새벽 4시 15분 차임에도 사람이 꽤 많았다. 겨울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라 그런가. 그리고 이때부터 도착까지는 기억이 없다 Zzz....


자코파네에서 등산로 초입으로

자코파네에서 내린 것은 오전 7시가 좀 안된 시간이었다. 아직도 어둑어둑했고,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모르스키에 오코행 봉고를 찾아 올라탔다. 기사님이 '모르스키에 오코!'라고 큰 소리로 모객을 하니, 찾기 어렵지 않다. 손님이 다 치고 출발하기까지는 시간이 깨나 걸렸다. 드디어 봉고가 산을 향해 출발한다. 눈이 많이 오는 기후 탓에 자코파네의 모든 집은 세모형 지붕을 지니고 있다더니, 정말인듯 했다. 자코파네 특유의 세모지붕 집들을 보며 두근두근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등산로 주차장 도착해서 10 즈워티를 기사님께 주고 하차한다.

저멀리 보이는 산등성이!


등산로 입구

등산로 입구 주차장에서 내리면 그때부터는 엄청난 등산의 시작이다. 주차장 한켠엔 간이 화장실이 있고, 입구 바로 옆쪽엔 카페테리아가 있다. 배가 고파서 뭐라도 사먹을까 했더니 10분인가 기다려야 한대서 그냥 출발했다(....) 등산로는 국립공원 구역으로, 돈을 내고 입장해야 한다(얼마인지는 까묵...)

남의 나라까지 와서 등산이라니...

등산로가 꽤나 힘들기때문에 가다가 멋지다고 생각이 든 지점에서만 사진을 찍었는데 의외로 많네...

사진을 찍으면 속도가 안 붙고 카메라나 기타 물품들이 굉장히 무겁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등산가방을 안 들고 온것에 대한 후회가 막심했다.


그리고 올라가면 갈수록 기온이 낮아지기 마련. 너무 추웠다.......

출국 시에 짐이 되더라도 등산가방과 보온병을 꼭꼭 챙기시길...장갑이나 모자 복면 등등 방한용품은 기본이다.

점점 해가 떠오르고...일출을 이 멋진 산에서 보다니!

물론 경치는 정말 아름답다. 국경을 이루는 장엄한 산줄기와 끝도 없는 눈길....!

2시간 30분 간 쉼없이 걷다보니 너무 힘들었고 이젠 정말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였다.

뭔가 거의 다 온거 같은데...
저기만 넘으면...!
도착!!!!!

산꼭대기에서 만난 '바다의 눈'

작은 비탈길이 보였고 저기만 넘으면 된다는 생각에, 추위와 고통을 잊은 채 내다질러 비탈길을 넘어섰다. 그러자 모르스키에 오코를 눈앞에 마주했고, 생전 처음 보는 놀라운 광경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고생스럽게 마주한 터라 감격이 더했다.

감격도 잠시, 피부로 느껴지는 한기가 온몸을 강타했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 정상에 있는 작은 산장에 들어갔고, 몸을 녹이며 산장 내부를 살펴보았다.

폴란드의 아이돌 요한바오로 2세의 방문 당시 사진을 볼 수 있었다. 보자마자 든 생각은, 저때는 나이가 상당히 들었을 때인데 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싶고...운동선수 출신이라 체력이 좋으셨다니...다르긴하군...하며 들고 온 초코바를 물었다. 산꼭대기에서 깨달은 체력의 중요성...

제대로 된 끼니를 할 수 없어서 너무 힘들고 배가 고팠다...초코바 정도로는 부족하고 뭔가 끼니가 될 만한 걸 먹었어야 하는데, 산장의 음식들은 폴란드 전통 음식이라 먹고싶은 비주얼은 아니었다(외국 가면 향 때문에 음식을 꽤나 가리는 편...폴란드에서도 주식이 햄버거였음). 컵라면이 무척 간절했으나 그런건 있을리 없고, 자판기에서 커피를 하나 뽑아먹었다. 마끼야또의 향이 그윽하게 풍겨오니 한기가 좀 가시는 듯 했다. 풍경을 만끽하기 위해 산장 문을 열어제쳤다. 이중문인데다 바람 때문에 문이 잘 열리지 않았다.

내 작품은 아니고 먼저 온 누군가가 남겨놓은 흔적. k가 빠져있네요...
산등성이 사이로 해가 뜨는 광경은 정말 감동 그 자체...
산줄기에서 흘러나온 물이 졸졸졸 경쾌하게 흐르는 시냇물. 흐르는 물은 얼지 않아!
특히 이렇게 해가 들지 않는 곳은 엄청나게 춥다.

호수를 걸어보자

겨울에는 호수가 얼기 때문에 호수를 걸어서 가로지를 수 있다. 호수 주변을 둘러보며 사진도 찍고, 장엄한 자연도 맘껏 즐겼다. 볕이 드는 곳은 좀 낫지만, 응달은 엄청나게 춥다. 냉장고 속에 들어있는 느낌이었다. 겨울이 아닌 때는 호수가 얼어있지 않아 주변 산책로를 둘러볼 수 있다고 하는데, 겨울은 엄청나게 추운 대신 이렇게 겨울만의 특권을 누릴 수 있다.

산책길 둘레 근처로는 눈이 무릎까지 쌓여있기 때문에 눈을 밟았을 때 빨리 털어내지 않으면 옷과 양말이 그대로 젖어버려 동상 직행열차를 탈 수 있으니 꼭 방수가 되는 옷과 신발을 챙겨가시길....한번 당하고(?) 나서는 삼각대로 눈을 푹푹 찔러가며 깊이를 가늠했는데 너무 깊이 들어가길래 눈길을 가로지르는 것을 포기했다.

이 장엄한 산이 주는 감동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하늘과 산이 자아낸 이 아름다운 풍경...

배만 좀 덜 고팠으면 좋았으련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랬는데....

이제는 내려갈 시간

정오가 넘어서야 이렇게 해가 제대로 들기 시작했고 사람들도 몰려왔다. 사람들이 많아져서 사진을 찍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에 걸어내려오기 시작했다.

내려오면서는 해가 들어 또 다른 멋진 경치를 볼 수 있었다. 예상과는 다르게, 내려오는 길이 더 힘들었다. 곳곳에 얼음이 얼어 있어 몇번을 미끄러졌다. 불쌍한 내 무릎...올라올때보다 더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렸다. 아이젠을 사오지 않은 것에 대한 막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다시 크라쿠프로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가면 자코파네 시내로 가는 승합차가 있다. 그걸 타고 다시 자코파네 터미널로 나가 막 떠나려고 하는 크라쿠프 행 버스를 잡아탔다. 22 즈워티를 기사님께 내고 탔다.

폴란드의 겨울은 해가 4시면 지기 때문에 벌써 이렇게 어둑어둑해진다.

약 2시간 반정도가 걸리는데, 곳곳에서 차가 막혀 더 오래 걸린 것 같다.


다음에 다시 오게 된다면 자코파네 시내에서 숙박을 하며 여유롭게 아침도 먹고 등산으로 지친 몸을 편히 쉬이고 싶다. 크라쿠프 당일치기는 정말...두번은 못할 것 같다. 아니면 겨울이 아닐 때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


힘들 때 떠올릴 '자코파네'가 생겼다는 것.

그래도 겨울 자코파네와 모르스키에 오코의 풍경은 아마 평생을 두고 아른거리는 기억으로 남게될 것 같다. 폴란드말에는 '삶이 힘들 때 자코파네가 있다는 것을 떠올려보라'는 속담이 있다고 하는데, '좋아봤자 얼마나 좋겠어...'라는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다녀와보니 '이제 나에게도 힘들 때마다 떠올릴 자코파네가 있구나.'하는 생각에 뜻깊고 보람찬 등산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폴란드, 크라쿠프를 방문한다면 시간을 내어 꼭 자코파네와 모르스키에 오코를 다녀올 것을 추천드린다. 하루 꼬박 걸리는 머나먼 여정이지만, 당신의 삶에 두고두고 추억할 '자코파네'가 생긴다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위로와 안식이 될테니!

매거진의 이전글 풀어놓을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이 쌓여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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