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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지 Sep 29. 2023

우리 아부지는 '선생님'이셨다

몇 해 전, <싱어게인>으로 30호 이승윤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다. 연예 트렌드에 민감한 우리 모녀는 전화통화 중 어김없이 30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자연스레 대화는 우리 집 영재였던 동생으로 이어졌다. 엄마의 교육 소신에 다시금 감탄하며 통화를 마친 후, 엄마의 딸이 아닌 두 아이의 엄마로서 그날의 기억을 잊지 않으려 나는 블로그에 글을 남겨두었더랬다.


그런데 며칠 후, 내 댓글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헛!

글 말미 옛 추억을 떠올리며 우리 가족이 성남방송에 출연했던 사진을 작게 올려두었는데 (화질도 안 좋고 거진 20년 전 모습들이라 초상권 문제는 없을 듯하여)

그 사진 속 아버지를 알아본 분이 있었던 것이다.



놀람 반 설렘 반의 묘한 기분으로 답글을 달고 나니 곧이어 다시 댓글이 올라왔다.



글을 남기신 분께는 차마 정직하게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사실 난 이 분이 바로 기억났다.


늦은 저녁, "선생님!!"을 외치는 카랑카랑한 소리가 대문 밖에서 울려 퍼진 것도, 무작정 떼를 쓰듯 집에 들어오겠다고 우겨 화가 머리끝까지 난 아버지를 기어이 마주하는 기쎈 모습도, 한참의 이야기 끝에 엄마가 주는 간식거리들을 먹으면서 아부지의 나직한 충고 앞에 꺽꺽 우는 사람도 그 언니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이었다. 어찌 잊으랴, 그 강렬한 기억을. 심지어 그 언니가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우리 집안 분위기를 살피고 있었다는 것도 새삼 놀라웠다.


이 댓글을 캡처하여 아버지께 보내니 아버지 역시 기억하신다는 답장이 왔다. 메신저 역할에 충실해야겠다 마음먹은 나는 곧바로 '아부지가 기억하고 부끄러하신다'는 답을 달아드렸다.



아버지가 기억하신다는 답에 이어 달린 댓글엔 글을 쓰는 분의 그 마음과 감성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꿈길. 소녀. 달콤한 솜사탕.


후에 아부지와 연락을 하고 아부지께 선물을 보내오신 그분은 지금 통영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가정을 꾸려 살고 계시다 했다. '그때의 강렬한 기억에 비해 매우 무난하고 잔잔한 직업을 갖고 계시는 것 같군.'이라 생각하며 혼자 설핏 미소 지었다.


우리 모두에게 그런 시절이 있었지. 꿈같이 희미하고 소녀처럼 불안했지만 지나고 보면 다 달콤한 추억이던 그 시절.


모든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자라나는 아이들, 학생들도 당연히 그러하다. 그 부족함으로 부딪히고 깨지면서 학교에서 배우고 자라는 거다. 그럴 때 잡아주고 힘주는 게 선생님의 역할일 테고 말이다. 그러나 요즘은 자신이 완벽하다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자신이 완벽하면 교육도 조언도 훈육도 필요가 없다. 그저 자기 입맛에 맞춰주는 사람만 필요하다. 자신이 태양계의 태양이 되어야 만족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로 인해 '선생님'의 존재가, '학생'의 존재가 흐려져 간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어느덧 퇴직하신 지도 7년이 넘어가는 아부지가 누군가에게 '선생님'이었다는 사실이 가슴 따뜻하게 와닿는 순간이다. 지금도 학생들을 위해 '선생님'이 되려 노력하시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선생님들과 그런 선생님을 통해 자라나는 학생들 모두를 마음 다해 응원해 본다.


아, 아부지께 그 언니가 그때 왜 울며 집에 온 거였냐 물으니 "야자 자꾸 도망가서"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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