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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리 Apr 04. 2016

18_베를리너_그라피티_그라피티 아티스트/화가_파블로

Pablo Diaz Benzo

나와 그의 이야기_

파블로의 섭외는 전적으로 수민의 강력한 주장에 의해 이뤄졌다. 베를린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키워드로 그라피티가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게 그 주된 이유였다. 하지만 의례 그라피티라 함은, 모두가 잠든 새벽녘에 경찰이나 일반 시민의 눈을 피해 몰래 그리고 빨리 작업하고 사라지는 게 보통이니 누가 과연 우리와 '양지'의 인터뷰를 하겠다고 나설지 의문이었다. "나 그라피티 하는 사람이야!"라고 드러내는 순간, 그 본연의 멋이 조금 떨어지는 건 아닐까라는 괜한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이미 수민에 설득되고만 우리 셋은 주변 인맥을 총동원해 누군가를 찾아 나서기로 의견을 모았다.


다행히 오래 걸리진 않았다. 우리 셋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아마 칠레에서 온 어떤 친구가 그라피티를 활발히 하는 것 같던데...'라는 단서를 던져준 것이다. 수민은 바로 그 사람의 이름을 수소문 해 페이스북으로 장문의 구애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답장은 오지 않았고, 우리는 그라피티 투어라도 참여해 다른 사람을 섭외해보려던 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수민이 대뜸 꽥 소리를 질렀다. 파블로의 답장이 온 것이었다. "안녕 얘들아. 인터뷰 재밌겠다. 근데... 혹시나 독일 경찰이 이 책을 보진 않겠지? 하하." 인터뷰 당일, 마스크라도 쓰고 올 줄 알았던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파블로는 해맑은 청년의 이미지를 물씬 풍기며 등장하였다. 우리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밝고 유쾌한 유머를 뽐내며 말이다.


> 아티스트/그래픽 디자이너_파블로 <

Pablo Benzo

칠레 산티아고 출신의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 페인팅 작업에 집중하고 싶어 1년 전 여자친구와 함께 베를린으로 옮겨 왔다. 현재 한 잡지의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생활비를 벌며 이 외 시간에는 부지런히 그라피티와 회화 작업을 한다. 뿐만 아니라 베를린의 여러 갤러리에서 활발한 전시 활동 또한 펼치고 있다. 그에게는 캔버스 천뿐만 아니라 베를린 도시 전체가 커다란 도화지나 다름없다.  


베를린 Rigaerstr. 근처 그래피티


그라피티로 둘러싸인 베를린

베를린은 무수한 그라피티가 지배하는 도시이다. 건물 외벽은 물론이고 전철, 공사장 파이프까지 스프레이를 뿌릴 수 있는 여백의 장소만 있다면 어김없이 눈에 띈다. 아이러니 한 건, 베를리너 대부분이 이를 지저분하고 불편하게 여기기보다 이 도시의 특성이자 문화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베를린의 역사와도 관계가 깊다.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세워진 베를린 장벽이라는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여백'의 공간에 서쪽의 베를리너들은 그림을 그려 메시지를 남겼고, 통일 후 아티스트 그룹이 벽 전체를 그림으로 도배하면서 현재는 '이스트사이드갤러리'라는 유명 관광명소가 되었으니 말이다. 때문에 이 도시의 벽은 다양한 이슈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스스럼없이 주고받을 수 있는 엄연한 매체의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하다.    


"사실 그라피티는 야외냐 실내냐 벽이나 길 위냐로 규정되는 개념이라기보다는 메시지를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려고 하는지 그리는 사람의 의도가 중요해. 밤에 몰래 와서 주인 허락 상관없이 그리고 가는 사람들도 있고 사회비판적인 메시지를 담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그냥 그리고 싶은 걸 마구 그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공통적으로는 스스로가 그린 그림이 자신 개인의 소유가 아닌 도시의 것이라는 생각이 있어. 때문에 언젠가는 지워지거나 철거가 되거나 혹은 다른 그라피티 작가들의 그림으로 덮여도 그게 당연한 거지." 그렇게 이 도시에서 그라피티는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아티스트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   


                                                                      베를린 장벽_앞 / 뒤


칠레에서는

베를린이 그라피티 아티스트들에게 인기를 얻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버려진 건물들이 도처에 널려있다는 점 때문이다. 파블로 또한 이런 빈 공간 혹은 벽을 찾기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베를린 방방곡곡을 돌아다닌다. 처음 파블로가 이 장르에 관심을 갖게 된 건 14살 즈음이었다. "처음 그라피티 봤을 때 엄청 놀랐어. 젝 키스(zeckis)라는 예명을 가진 사람의 작품이었는데 칠레 그라피티의 선구자 같은 인물이야. 원래 칠레에는 정치에 관련한 벽화가 많았어. 그라피티는 그런 기존 형식과 내용을 파괴한 거였거든. 그때 또 우연히 같은 동네에 사는 그라피티 아티스트를 알게 됐고, 함께 버스 타고 1시간 반이나 떨어져 있는 발파라이소(Valparaíso)의 그라피티를 보고 오기도 했어. 지금은 그라피티가 칠레 전국에 매우 흔하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거든." 산티아고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해안 도시 발파라이소는 최근 라틴 버전의 '베를린'이라고 불릴 정도로 비슷한 면면이 많은 도시이다. 그중에서 특히 도시 전체를 메우고 있는 그라피티가 한몫한다. 파블로는 그곳에서 그라피티라는 새 장르를 접한 뒤 페인팅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평생 그림을 그려온 그에게 그릴 수 있는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자신만의 공간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라피티를 그리는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이유를 갖고 있어. 대 부분 단순해.  마음껏 그릴 수 있는 벽이 있다면, 와이 낫(Why  not)?이라는 생각인 거지. 난 예술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아. 단지 그림이 그리고 싶고, 저기 벽이 있고, 그래서 그려."



"비밀인데..."

몇 주 전  베를린의 그루네 발트(Gruenewald) 숲에서는 자그마한 그라피티 페스티벌이 열렸다. 이 곳은 파블로의 시크릿 캔버스이기도 하다. 숲 안 쪽에 위치한 토이펠스베어그(Teufelsberg, 악마의 산이라는 뜻) 언덕 근처는 그가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다. "사실 칠레와 마찬가지로 베를린에서도 그라피티는 불법이야. 하지만 이 도시에는 누구도 관리하지 않는 버려진 장소들이 너무 많아. 이 토이펠스베어그 또한 마찬가지야. 과거 동서 분단 시절에 미군의 군사시설로 쓰였으니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 지금은 이렇게 한가롭게 숲의 풍경이 되어버렸지. 때문에 여기 오면 좀 더 여유를 갖고, 무한한 캔버스에 내 작품을 완성할 수 있어." 파블로는 특히 여름이 되면 이 주변에 텐트를 치고 친구들과 함께 밤새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베를린의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이 곳은, 화려하고 유머 넘치는 그라피티와 함께 하나의 거대한 설치 작품 같은 느낌을 풍긴다.  



여행에서 일상으로

파블로는 원래 칠레의 산티아고 미술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다. 졸업 후에는 3년 간 광고회사에서 일하기도 했다. "너무 지루했어. 아무리 내가 좋은 작업을 한 다 하더라도 광고주나 투자자에 의해서 모든 게 다 바뀌더라고. 2년쯤 지나고 내가 한 작품들을 쭉 살펴보니 그 어느 하나도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어. 그래서 이건 아니다 싶었지." 1년 뒤 파블로는 3개월 간의 유럽 여행을 시작했다. 바르셀로나, 파리, 부다페스트 등 유럽 곳 곳의 유명 그라피티 장소들을 방문하고 관련 페스티벌을 찾아다녔다. 베를린도 그중 하나였다. "베를린에 한 일주일 지내면서 마치 이 곳이 내 집처럼 느껴졌어. 뭐라고 정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도시의 미관이나 느낌이 칠레랑 상당히 비슷했고, 당시 우연히 알게 된 사람들도 다 좋았어. 물론 그라피티가 자연스럽게 도시에 녹아있는 것도 주요했지." 파블로는 돌아가자마자 열심히 돈을 모았고, 6개월 만에 비행기 표와 몇 달간의 넉넉한 생활비를 벌어 다시 이 도시를 찾게 되었다. 여행이 아닌 일상으로.


화가 파블로

한편, 작업실의 작은 캔버스를 마주할 때의 파블로는 스스로를 아티스트가 아닌 그림 그리는 사람(painter)으로 칭한다. 작품을 통해 어렵고 복잡한 '생각'을 요구하는 현대미술보다 '느낌'을 갖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는 한 작품을 마주하면서 짧은 시간 안에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맛본다. 마침 그가 신은 양말에는 헨리 마티즈(Henri Matisse)의 춤 작품이 그려져 있다. 알록달록한 그의 그림이 앙증맞게 양말에 묘사되어 있었다.

곧 파블로는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 직접 가져온 자그마한 소품집을 꺼내기 시작했다. 구상보다 추상의 도형에 관심이 많은 지 파블로의 그림은 인물들마저도 둥글거나 납작한 형태를 갖고 있었다. "내가 쓰는 스튜디오에서 두 달에 한 번씩 전시를 열어. 작년 10월에는 다른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갖기도 했고, 올해 11월에도 거기서 전시하게 됐어. 6월에 샌프란시스코 출신 여자애와 전시를 기획할 예정이기도 해. 베를린에서 작년에 만났는 데 이렇게 뭔가를 같이 할 수 있는 마음 맞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야. 이것저것 설명할 필요 없이 잘 통하니까. 어쨌든 재미가 우리의  주목적이야."


사실,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던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라피티라는, 어찌 보면 거칠어 보일 수 있는 활동을 취미로 갖고 있는 사람이 그리는 그림이기에는 너무나도 앙증맞고, 얌전하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시커먼 복면을 쓰고 도시가 잠든 새벽녘 경찰을 피해 범법 활동을 하고 다닐 거라고 생각했던 전형적인 그라피티 아티스트의 이미지는, 장난기 가득한 파블로를 보자마자 사라져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마지막까지 우리를 빵 터뜨린 그의 한 마디 "얘들아, 근데 베를린 경찰이 한국말을 하진 못 하겠지? 내가 은근 겁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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