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과 또 다른 시작을 기념하는 우리만의 파티
드디어
우리가 목표로 삼았던 열아홉 명의 인터뷰이를 모두 만났다. 누가 정해준 것도 아닌데, 수민이 베를린을 떠나는 5월 12일에 맞춰 미친 듯이 달려왔던 시간이었다. 온전히 책 만을 위해 만남을 갖고, 녹취를 하고, 글을 쓰면서 그렇게 두 달여를 보냈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시작과 일단의 마무리를 위해 조촐한 파티를 열기로 결심하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난 한국에서 맡던 갤러리 일과 맞물려 돕지 못 하는 상황. 그래서 나탈리가 사진집과 음료를, 수민이 파티 음식과 기념 영상을 담당하기로 한 후 각자 준비에 열을 올렸다.
이름하야 '베를리너' 출간 기념 파티.
시간은 2015년 5월 7일 저녁 7시.
준비 요원은 나탈리, 수민, 그리고 류보.
'Where is Jesus'
왠지 모를 거리감이 느껴지는 이 장소명에 나는 맨 처음 보지도 않고 반대를 외쳤다. 수민이 지나가다 한 번 글을 쓸 겸 들른 카페였다. 번듯한 dj부스도 있고, 커피와 술을 파는 바도 있는, 너무 넓지도 좁지도 않은 공간이라며 적극적으로 추천하였다. 당시 마땅히 떠오르는 장소가 없었기도 해서 일단 직접 확인해보기로 하였다. 막상 가서 보니 수민의 말대로 우리의 취지와 목적에 상당히 부합하는 그런 장소였다. 마침 자리에 있던 주인이 흔쾌히 우릴 반겨주는 통에 그 자리에서 바로 결정을 내렸다. 종교도 없는 셋이 모여 '예수님 어디 계셔요~?'
나탈리
먼저 나탈리는 우리가 쥐어준 얼마 안 되는 예산에 자신의 돈까지 부어가며 정성스레 사진을 인화하고 자르고 붙여 나름의 근사한 화보집을 만들어 주었다. 또 그녀의 전매특허 과일주를 위해 보드카와 수박, 포도, 자두 등 온갖 과일을 썰고 또 담그며 맛난 음료를 마련해주었다.
수민
수민은 나의 도움 없이 해야 하는 음식 마련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대충은 못 하겠다며 혼자 50줄이나 되는 김밥을 만들어냈다. 나중에 들어보니 너무나도 방대한 양의 장을 본 탓에 마트에서 집까지 도보 10분이 넘는 거리를, 혼자 큰 카트를 질질 끌며 돌아왔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의 황당한 시선에도 터덜터덜 짐을 날랐을 언니를 떠올리니, 미안함과 고마움에 눈물이 핑 돌았다.
완성된 수민의 김밥. 지나가던 이탈리안 무리가 이 김밥에 매료돼 한창을 머물렀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맛있었다.
류보
인터뷰를 위해 잠시 집을 떠나 수민과 같이 살던 두 달 동안 류보는 틈만 나면 내가 살던 곳에 들러 인사를 건네곤 하였다. 한 손에는 타고 온 롱보드, 다른 한 손에는 맛난 와인을 들고서. 물론... 오프 더 레코드로 넘어가자면, 플랫 메이트인 내가 그리워서였다기 보다 당시 나탈리를 열혈이 좋아하던 그였기에 더 자주 출몰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하하. 이유야 어찌 됐든 우리의 파티에서 음악담당은 당연히 류보였다. 류보 없는 파티는 상상불가. 역시나 그는 묻고 따지는 것 없이 한 걸음에 달려와주었다.
허당 우리 셋
원래 계획대로라면 '대학 방송국 국장'출신인 수민이 맛깔난 편집 영상을 선보이기로 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다시피 이미 김밥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던 상태. 결국 허접한 무언가를 급히 만들기보다 깔끔히 포기하는 게 좋다는 판단을 내렸다. 파티 당일, 우리의 영상이 궁금해서 왔다가 아무것도 없다는 말에 일찌감치 가버리기도 한 친구가 있기까지 해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별 수 없었다. 뿐만 아니다. 책 출간 파티(book launching party라고 대대적으로 sns에 홍보하였다)라는 타이틀에 속아 이미 완성된 출판물을 기대하며 찾은 사람들도 허다했다. 이렇게 말만 번드르르하게 사람들을 초대해, 어마어마한 양의 김밥과 나탈리의 화보집을 제외하고 놀 거리가 딱히 없었던, 지금 생각해보면 참 미흡했던 파티였다. 그래도 참 많은 사람들이 파티를 찾아 주었다. 인터뷰를 통해 만났던 친구들뿐만 아니라 물심양면 우리를 서포트해주던 베를린 인연들, 보기만 해도 흡족한 그런 사람들로 공간은 북적였다. 특히 너무 신난 나머지, 새벽 무렵의 나는 필름이 끊긴 채로 마뉴엘과 리사에 의해 집으로 강제 소환되기까지 하였다...
파티가 끝난 후
그 후, 수민은 원래의 계획대로 베를린을 떠났다. 좀 더 길게 이 도시에 남아 함께 책을 마무리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비자를 원망하며 우린 마지막까지 애틋했다. 그렇게 나와 나탈리는 이 도시에 남아 여전한 베를린의 삶을 이어갔고, 수민은 한국에서의 새로운 챕터를 향해 나아갔다. 아직 마무리짓지 못한 녹취와 글들을 산떠미처럼 남긴 채, 출판이 될지 안될지의 여부도 확실치 않은 상태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잠시만 안녕을 고했다!
+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드디어 책이 나오게 되었다.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변화의 시기를 거쳐 지금 여기에 이르기 까지, 참으로 험난했다. 서울과 베를린의 물리적인 거리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거리까지 배가 되면서, 수민과 나는 숱하게 싸움을 반복했고 결국 각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여전히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의 둘. 하지만 그렇게 가까운 사이도 막상 일을 할 때에 있어서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순간들이 찾아왔다. 나는, 언니의 표현을 빌어말하자면 '과하게 차갑고 잔인했던' 원망의 이메일을 보내 책과 베를린으로부터 멀어진 언니를 탓 하기에 바빴고, 언니는 새로 입사한 게임회사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나를 피로해했다.
그렇게 멀리서도 또 함께 글을 쓰고 고치자던 애초의 바람은 멀어져만 갔다. 처음부터 불가능한 시도였을 거다. 두 사람의 글을 하나로 엮는다는 것은. 나는 이 찝찝한 기분을 이기지 못 하고 결국 2015년 9월, 서울로 돌아왔고 1년여의 기간 동안 홀로 글을 쓰고 고치고를 반복하였다. 셋에서 둘, 둘에서 하나가 되면서 포기의 순간은 시도 때도 없이 나를 찾아왔다. 또 순간순간 찾아오는 괴리감도 상당했다. 내가 있는 지금의 이 도시는 너무나도 분주한데 나는 저 멀리 떨어진 한갓진 베를린을 이야기하다니. 그러나 결국은 다시 또 제 자리. 베를린과 베를리너에 대한 나의 깊은 애증은 어찌 당해낼 제간이 없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책이 나온다. 그렇게 생각 없이 벌려놓았던 성대한 파티의 결말을 지금 여기 2016년 서울의 여름에서 드디어 마무리 짓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