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직업에는 뒷면이 보이지 않는다
라디오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라디오 듣는 청취자분도 적었고 유튜브 구독자도 참 적었습니다. 요즘 콘텐츠는 수치로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판단하기 때문에, 수치가 적은 제 라디오는 ‘못하고 있다’ 쪽으로 판단될 때가 있었습니다. 개인방송에서 라디오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일상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가끔 처음 뵙는 청취자분들이 제 일상 이야기를 듣다가 "줄리님은 어떤 일하세요?"라고 물어보실 때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청취자 수가 적은데 설마 라디오 DJ만 하지 않겠지, 라는 마음이겠죠?)
솔직하게 직장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라디오를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대부분 반응이 두 가지로 갈립니다. 하나는 "오-대단하시네요. 그런 결정하기 쉽지 않았을텐데요." 이 반응에는 뒷 이야기도 붙습니다. 잠깐만, 라디오를 하면 수입은 어떻게 되는 거죠? 지금 청취자도 적고 유튜브도 적은데 수입은 대체 어디서 나는 거예요? 줄리님 이러다가 거지되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걱정으로 이어지죠.
그리고 다른 반응은 이렇습니다. "줄리님, 이런 거는 직장 다니면서 같이 병행해도 괜찮았을텐데요." 이 반응에 대해서는 그러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해줘야 합니다. “제가요, 직장 다니면서도 라디오를 해봤는데요. 퇴근하고 피로해서 라디오 할 시간도 없고, 야근에 회식도 있어서 자주 빠지기도 하게 되덥니다. 그래도 있는 힘을 다해 시간 내서 라디오를 하려 해도 온전히 맑은 정신으로 라디오를 할 수 없더라고요.”라는 기나 긴 말씀드려야 합니다.
제 이야기를 다 듣던 청취자분들은 “아, 그렇군요.(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네요)“하고 넘어가기도 하고, "에이, 그건 변명이에요!"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있는 그대로를 말했는데 변명이라뇨. 그럴 때는 힘이 빠집니다. (본인이 그렇게 직장 다니면서 라디오하고 유튜브 영상도 자주 올릴 수 있으면 본인이 하시지 그러셨어요!) 이런 질문이 종종 생기면서 나중에는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어요“라고 말하면 간단해집니다. 또는 비밀이라고 하거나요.
남들이 보기에는 쉬워 보여서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병행하면 될 것 같은데?' 생각 한 번씩 할 수 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편해 보이는 직업이 있고, 좋아 보이는 직업이 있죠. 막상 하는 사람들은 호수의 백조처럼 발을 쉬지 않고 구르고 있는데 표정이 편해 보인다고 편하다고 보는 분들이 있어요.
예전에 개그우먼 신봉선 씨는 개그맨이 되기 전에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쉽게 보였다고 합니다. 예능 나와서 재밌게 이야기하고 돈 많이 벌고요. TV에서 보는 예능은 잘 편집된 1~2시간짜리 분량이지만 실제로 촬영할 때는 굉장히 길죠. 처음부터 끝까지 마냥 재밌을 수도 없습니다. MC와 게스트들이 준비된 이야기로 잘 풀어나가고, 그중에 연예인들 간의 마찰이 있을 수도 있고요. 신봉선 씨는 직접 경험을 하고나니 꽤 어려운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합니다.
어릴 때는 TV 프로그램을 편안하게 보기만 했는데, 사회생활을 하며 일하고부터는 출연자들과 뒷배경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시트콤 에피소드가 끝날 때 NG 장면을 가끔 보여주잖아요. 어릴 때는 NG장면 재밌다,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보면 NG 날 때마다 선배 연기자가 후배 연기자를 장난으로 나무라는 표정이나 말을 하거나 아역 배우들이 NG 나면 고개를 90도로 숙이며 '죄송합니다'하는 모습을 보고 현장의 분위기를 가늠하게 될 때도 있죠.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그 현실은 현실에 있는 사람들만이 알겠죠? 연예인뿐만 아니라 그 뒤에서 고생하는 스태프들도 보이더라고요. 촬영감독도 저 부분 촬영하려면 나중에 또 찍고 하겠지? 저 장면 촬영하려면 미리 올라가서 대기해야 할 텐데, 출연자를 찍으려면 촬영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뒷걸음질을 해야겠구나 등등. 우리가 보는 재밌고 좋은 장면들이 나오려면 많은 사람의 시간과 노력이 다 갈아져 들어가는구나 싶습니다. 그 안을 더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더 힘든 부분도 많을 거예요. 그렇지만 겉으로 슬쩍 지나가면서 보기에는 그렇게 힘들어 보이지 않죠. 나도 할 수 있겠는데?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어릴 때는 음악 프로그램에 나오는 가수들이 춤도 힘들게 추지 않고 왼쪽 오른쪽 리듬만 타면서 부르기 쉬운 노래만 하길래 '나도 가수해도 되겠다' 생각했어요. 알고 보니 연습생 때는 힘든 댄스들을 다 거치고 무대에서는 대중들이 따라하기 쉬운 춤을 추는 거였더라고요. (어린 줄리는 참 단순했구나.)
라디오를 시작할 때 쉽겠다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분명 나를 이유 없이 괴롭히거나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상한 채팅으로 라디오 분위기를 방해하는 사람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라디오 시-작! 하면 갑자기 사람들이 들어와 내 라디오를 들어줄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았고요. 모든 것을 다 고려했어도 실제로 경험하고 나면 '앞으로는 어떻게 나아가야 하지?'하고 걸음을 멈춰 내 자리를 돌아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청취자가 늘어나는 것 같아도 갑자기 어느 순간 고무줄처럼 다시 원상태로 돌아올 때도 있고요. 갑자기 많은 사람이 나를 응원해주다가도 휙 바람에 휩쓸리는 것처럼 사라질 때도 있습니다.
어떤 분이 보기에 라디오는 쉬워 보일 수 있습니다. 청취자들과 편하게 이야기하고 노래 틀어주는 거잖아요, 생각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크리에이터로 나만의 컬러를 갖고 자리를 잡는 것도 어렵고 매일 꾸준히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재미없는 콘텐츠는 금방 외면받을 수 있어 새롭고 참신한 콘텐츠를 매일 만들어야 하죠. 조금이라도 지루하거나 재미가 없으면 사람들은 제 라디오를 보고 듣지 않을 겁니다.
초반에는 한분 한분이 구독 취소를 하거나 떠나갈 때는 흔들렸습니다. 이런! 한명이 구독 이탈을 했어! 내가 실수했나? 처음이라 청취자 수도 적어서 한분 한분의 행동이 크게 느껴진 것이었죠. 그렇게 작은 행동에도 휘둘리면 저는 주체성을 잃기도 쉬울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 마음을 다잡아야지.
라디오를 시작한 초반에는 반응이 없으면 이렇게 저렇게 바꾸려고 시도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콘셉트나 내용이 휙휙 바뀌기도 하니 적응을 못하는 분도 있었고, 너무 바뀌니까 떠나가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아마도 아닌 건 버리고, 도전해보자 하는 불안한 마음에서 그랬던 것인데 지금은 차곡차곡 청취자분들이 생기기 시작하니 조금은 가만히 지켜볼 수 있는 인내심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지나가는 청취자분들이 휙휙 던지는 말에도 흔들리지 않게 됐고요.
아직은 거센 폭풍이 오지 않아서 덜 흔들리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도 지금부터 조금씩 연습을 하려고 합니다. 나만의 뿌리를 땅속에 깊이 내려 많은 사람에게 보이는 커다란 나무가 되기 위해서요.
그러기 위해선 햇빛과 영양도 필요합니다. 그러니 구독과 좋아요 그리고 댓글을 달아주시길 바랍니다. 어딜 가나 구좋댓이네요. 구독과 좋아요 댓글. 지긋지긋한 대사지만 크리에이터의 숙명이니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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