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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의 라디오 Nov 18. 2021

일상의 실수로
깨달음을 얻은 두 가지

드디어 내게 작업실이 생겼다(?) 

처음 라디오를 시작했을 때는 작업실 공간 없이 집에서 했습니다. 바로 등 뒤에는 침대가 있고, 정면으로 고개를 들면 TV가 보이는 한마디로 집중 안 되는 주거 겸 작업실이었죠. 집에서 실시간 라디오, 팟캐스트 녹음, 영상 촬영 편집을 했습니다. 집과 업무 공간은 분리해야 하는 게 가장 좋은데, 당장은 작업실을 구할 환경이 안 됐습니다. (수익이 많이 안 나는데 작업실부터 구하기는 좀 그랬거든요)




그래서 집에서 업무를 하니 가끔은 몸과 마음이 늘어져 계획을 미룰 때도 있었습니다. 어차피 자기 전까지만 하면 되니까, 라는 마음입니다. 이동 시간이 없으니 마음만 준비되면 바로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게 장점이지만 또 단점이기도 하죠. 같은 컴퓨터, 책상, 의자에서 쉬기도 하고 일을 하기도 하니 마음이 쉽게 다잡아지지 않더라고요.



특히나 문서 작업 같은 경우에는 집중이 잘되지 않았습니다. 팟캐스트 에세이를 쓸 때 집중해보려고 잔잔한 노래를 틀기도 하는데, 집중이 될 때가 있고 아닐 때도 있습니다. 잔잔한 노래로도 집중이 안 될 때가 있어서 방법을 하나 찾았습니다. 동네 도서관! 도서관마다 컴퓨터 작업하는 공간이 있죠. 거기서 1인당 하루에 최대 2시간씩 이용을 할 수 있습니다. (얏호, 나만의 무료 작업실이 생겼다)


2시간이라는 시간 내에 문서 작업을 하니, 집중도 잘 되고 좋더라고요. 그래서 매일 도서관에 가서 [아침 깨워 줄리] 대본을 쓰고, 팟캐스트 에세이도 작성했습니다. 2시간이 조금 모자랄 때도 있지만 대부분 작업을 해놓으니 마무리 작업은 집에서 간단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오- 나만의 작은 작업실이라니. 게다가 집에서 걸어서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아 가는 데 귀찮지도 않고, 도서관이 조용해서 집중하기도 참 좋았습니다. 2시간이라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으니 집중력도 더 생기더라고요. 째각째각.



저만의 작업실(그러니까 동네 도서관)을 갈 때 꼭 들고 가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텀블러입니다. 하루에 2L 이상을 마시기 때문에 텀블러를 에코백에 늘 갖고 다니는데요. 그날도 평소처럼 텀블러를 갖고 업무를 하러 나갔습니다. 업무를 하며 물을 중간중간 마셔주고, 작업을 끝내고 집으로 가기 전에 텀블러에 물을 꽉 채워 담았습니다. 그렇게 아무런 생각 없이 집으로 가다가 잠시 편의점에 들러서 먹을 것을 사려고 갔습니다. 어떤 것을 먹을까, 천천히 고민하면서 과자를 구매하고 편의점을 나가려는데, 바닥에 물방울이 보이는 겁니다.


마치 누가 물기가 남은 대걸레를 들고 이동한 것처럼 물이 이동 경로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편의점 직원이 청소를 하셨구나, 생각하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무심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싶어져 손을 넣었습니다. (사람은 역시 촉이 있나봅니다. 갑자기 느닷없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싶어지더라고요)


주머니는 차갑고 촉촉했습니다. 앗! 왜 주머니가 차갑지? 하고 보니 매고 있던 에코백에서 물이 떨어져 나오고 있더라고요. 그것도 실시간으로요.



허! 바보-! 편의점에서 본 물방울이 누가 아닌 제가 떨어뜨린 거였습니다. 에코백 속의 텀블러가 뚜껑이 제대로 안 닫혀 물이 새고 있던 거였죠. 에코백 밑면이 천천히 물들어지며 물방울이 조금씩 떨어진 것 같았습니다. 뚜껑을 제대로 닫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죠. 텀블러를 보니 어느새 물은 1/5 정도만 남아 있었습니다. 마시려고 담아 놓은 물이 반 이상이 없어지고, 이렇게 에코백만 적셔버리다니. 한순간의 행동으로 허탈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구나, 싶었습니다. 바보 같은 실수에 멍-하니 텀블러를 보다가 이 일로 두 가지를 깨닫게 됐습니다.


첫 번째, 모든 일에는 사소한 부분도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텀블러 뚜껑을 제대로 맞춰서 닫지 않으면 뚜껑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텀블러의 용도를 제대로 이용할 수 없죠. 하나의 일에도 모든 부분을 잘 살펴봐야겠다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큰 부분만 보였고, 작은 부분은 신경이 쓰이지 않았습니다. 요즘 많이 깨닫는 부분입니다. 예전 유튜브에 ASMR 영상이 반응이 좋아 자주 올렸었는데요. 청취자는 제 목소리가 좋다며 댓글로 좋은 반응을 줬습니다. ASMR 영상을 보는 분들은 어떤 점이 좋은지 잘 아시니 댓글로 많은 이야기를 해줍니다. 목소리를 조금 더 낮추는 게 좋다거나, 얼굴은 정면을 보는 게 좋고, 배경음악은 좀 더 작게 혹은 안 들리게 하는 것도 좋다. 저도 자기 전에 제 ASMR 영상을 보니 초반에 찍은 ASMR 영상은 들으면서 하지 않고 제가 편안하게 목소리를 내다보니 목소리가 되게 크게 녹음된 것도 있었어요. 잠이 와야 하는데 오히려 잠이 달아날 것만 같았죠.



정말 세세한 부분이 중요하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보이는 라디오 화면도 초반에는 제대로 설정하지 못해 화질이 낮고 어두웠습니다. 보기에도 그렇게 좋지는 않더라고요. 그때는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더라고요.


잘 만들어진 채널이나 방송도 많잖아요. 저도 시청자 입장에서 다른 영상을 보면 확실히 좋은 화질의 DSLR로 촬영하고 좋은 음질로 녹음하고 영상 편집도 공을 들여서 만든 걸 보면 보기에 좋습니다. 괜찮은 영상은 두 번 세 번을 보게 되기도 하고요. 점점 영상을 만들수록 그런 부분을 내가 놓쳤구나, 싶었습니다. 빨리하고, 자주 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닌 천천히 가도 완성도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깨달았답니다.


텀블러 뚜껑을 보고 깨달은 것 중 두 번째는요, 어떻게든 언제든 깨닫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에코백 안에서 텀블러 물이 퍼지고 있었을 때 바로 알지는 못했습니다. 에코백 안에 물이 흐르는지, 아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죠. 그러다 점점 시간이 흐르며 제 피부에 떨어졌을 때야, 그제야 물이 흐른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쩌면 편의점에서 조금씩 물방울 자국으로 힌트를 준 것 같은데, 그때도 몰랐죠. 그러다 내 피부에 딱 닿았을 때야 알게 됐습니다.



제가 매일 하고 있는 라디오도, 잘하는 것이 맞는지 아닌지 가시적으로 단번에 알 수 없었습니다. 특히나 네이버 NOW [아침 깨워 줄리] 라디오에서는 청취자 수가 몇 명인지 저한테도 뜨지 않거든요. 채팅을 치셔야 그제야 그분이 듣고 있구나, 정도만 압니다. 많이 듣고 계신 걸까~아닐까~긴가민가했는데 요즘에 아침깨워줄리 라디오 청취자분들이 그러시더라고요.


저 조용히 잘 듣고 있었습니다.


채팅을 치지 않았을 뿐 듣기만 하는 청취자도 많았습니다. 제 유튜브나 팟캐스트 댓글에도 잘 듣고 있다면서 표현해주시는 분도 늘어났고요. 어떻게든, 언제든 깨닫게 되는구나 싶었습니다. 어쩌면 힌트가 있었음에도 그걸 못 봤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텀블러 뚜껑이 잘못 닫혀 물을 흘렸고 그걸 알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제가 하는 일도 비슷하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그인을 하지 않고 듣는 청취자분들도 있고, 구독하지 않고 시청하는 유튜브 시청자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보이는 것 뒤에 보이지 않는 것도 있다고 생각을 하니 마음이 한층 넓어졌습니다. 그리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속 지속하자. 앞으로 사소한 부분도 신경 쓰고 조용히 보고 계시는 청취자분들을 위해 계속 라디오를 해나가겠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텀블러 뚜껑이 잘 닫혔는지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조심조심.




▼ 그 ASMR 영상이 뭔데요?


▼ 아침 깨워 줄리는 어떻게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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