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즈와 하이에크 그리고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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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부터. 요즘 세종 서적의 번역자 풀이 괜찮은 모양이다. 이 책의 번역도 훌륭했다. 박수 열 번 친다. 개인적인 아쉬움이라면 Modern Monopolies라는 멋진 제목을 밋밋한 "플랫폼 기업 전략"으로 바꾼 것은 불만이다. 편집자가 소심한 분인가 보다.
플랫폼을 다룬 책은 많다. 플랫폼의 중요성이 부각된 이후에는 국내 저자의 책도 많이 나왔다. 슈말렌지, 에반스, 학주의 선도적인 책이 나온 이래 플랫폼을 중요성을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 만큼 그 위력을 체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도 간접 네트워크 효과에 기반해 움직이는 플랫폼의 논리는 분석적인 측면에서 아직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특히 요즘에 새로 생긴 플랫폼인 우버나 에어비앤비 같은 회사는 기존 책들이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
이 책은 이러한 공백을 메우는 역작이다. 학술연구자들이 아니라 현업을 뛰는 사람이지만 학술적인 엄밀함 또한 필요한 수준에서 놓치지 않고 있다. 책의 내용은 요약해서 정리해 다시 볼 만큼 유용하다. 교환 플랫폼과 메이커 플랫폼의 구분, 플랫폼의 작동 원리, 플랫폼이 성공적으로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거버넌스의 요소를 다루고 마지막으로는 네트워크 효과가 어떻게 작동하게 되는지를 꼼꼼하게 다루고 있다. 마지막 장에서는 플랫폼의 미래를 다루는데, 이 장은 앞 날을 멀리 내다 볼 줄 능력이 있는 분이 아니라면 그리 재미는 없을 것이다. 나는 그랬다.
책의 내용이 쉽고 간단한 만큼 별도의 내용 요약을 하지는 않겠다. 사서 보시면 된다! 내 맘대로 쓰는 서평이니 이하에는 책을 읽고 떠오른 경제학의 잡생각을 몇 자 적어보겠다.
플랫폼을 다룰 때 항상 떠오르는 두 명의 경제학자는 로널드 코즈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다. 코즈는 어떤 종류의 경제적 거래가 계약-시장을 통해서 형성되기 위해서는 거래 비용이 낮아야 한다는 점을 일찌감치 간파했다. 영리하게도 그는 '거래 비용이 낮다면' 시장을 통해 모든 거래를 호혜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했다. 시장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거래 비용이 낮다면'을 무시했고 반대로 시장을 불신하는 사람들은 이 대목을 강조했다.
사실 코즈의 정리한 거래 비용이라는 것은 역사적이고 조건적이다. 낮출 수 없는 거래 비용이라는 게 있을까? 대체로 경제적인 조건이 변함에 따라서 변화가 따를 것이다. 이 경우 어떤 경제적인 거래가 조직되는 양상은 '시장'과 '조직'을 오갈 수 있다.
하이에크는 분권화된 시장의 중요성을 다른 측면에서 파고든 사람이다. 그의 질문은 시장 사회주의자의 공격에서 출발한다. 하이에크 이전의 신고전파 경제학은 정보의 완전성을 가정했다. 시장 사회주의자들은 정보가 완전하다면 굳이 시장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충분히 진보된 컴퓨터 쉽게 시장을 계산해서 가격 변동과 조정에 따른 낭비를 줄일 수 있다고 보았다. 이에 하이에크는 시장이란 분권화된 시스템이 개인들만이 보유하고 있는 정보를 효율적으로 모으고 조정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제도라고 주장했다.
플랫폼이 왜 이 둘과 관련되는가? 플랫폼은 대체로 거래 비용을 줄이는 것에서 출발한다. 거래비용을 줄여서 이전에 시장 거래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지 못했던 거래를 '시장화'한다. 우버를 생각하면 쉽다. 제도에 따라서 정해진 고정 가격으로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상례였다. 택시 가격이 매 순간 정해지면 안 될까? 어떤 조건들이 성립하면 이게 가능해진다. 완벽한 시장은 아니지만 이를 달성할 것이 우버다.
이렇게 보면, 플랫폼이란 일종의 관리되는 시장 같은 것이다. 그래서 플랫폼을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냥 장터를 생각해보자. 장터가 요지에 있을수록 더 많은 상인(공급자)이 모여든다. 더 많은 상인이 오니 그만큼 손님(수요자)도 많아진다. 손님이 또 더 많은 상인을 부른다. 우리가 아는 물리적인 시장은 사실 플랫폼의 좋은 사례다.
기술 위에 올라탄 요즘의 플랫폼들 역시 기본적인 논리는 같다. 자신이 구축한 마당에 더 많은 공급자와 수요자를 태우고 이들 사이에 '좋은' 거래가 많이 발생하도록 조정하는 것이다. 플랫폼의 실력 차이는 이 '좋은' 거래를 어떻게 만들어내고 확대하고 유지하는지에 달려 있다. 책에서는 이를 플랫폼이 지니는 일종의 관리 업무로 이해하면서 네 가지 기본적인 내용을 제시한다.
이제 플랫폼을 코즈 그리고 하이에크와 엮어보자. 코즈는 거래 비용에 따라서 거래가 시장이나 기업을 비롯한 위계, 명령, 제도 등에 의한 조정 방식을 따를 수 있다고 보았다. 이렇게 보면 플랫폼을 거래 비용을 줄여서 시장 밖에서 이루어지던 거래를 '시장'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밀레니얼 초기에 영국의 주간지 Economist에서 "거래비용이 줄어들면 기업이 사라질까, "라는 질문은 도발적이었지만 예언적인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거래비용을 줄이는 행위는 '진공'에서 달성되지 않는다. 시장의 거래 비용은 시장 자체 때문에 낮아진 것이 아니다. 플랫폼이 거래 비용을 낮추고 이를 위해 참여자들의 행위를 조율하고 규율한다. 이 점에서 시장 거래를 가능하게 만드는 일종의 기술, 제도, 사업적 조건으로 플랫폼을 봐야 할 것이다.
이제 하이에크다. 하이에크는 시장이 정보를 충분히 낮은 비용으로 조직하는 아마도 유일한 장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역시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플랫폼은 수요자와 공급자가 지니고 있는 정보의 문제를 제거하거나 이에 따른 고통을 완화한다. 이는 곧 거래비용을 줄인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시장 참여자들이 이를 통해 왜곡을 최소화하면서 거래를 달성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거래가 플랫폼의 설계와 돌봄 없이 가능할까? 플랫폼은 '야경국가'가 아니다. 책의 저자들이 강조하듯이 정보와 네트워크의 흐름, 속도, 품질을 조율하는 플랫폼의 정보적 기능 없다면 그 안의 (시장) 거래는 왜곡되고 망가지게 마침내 사라질 것이다.
코즈와 하이에크라는 두 경제학자의 필터로 바라본 플랫폼은 '시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가 어떤 조건에서 서로 잘 기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이고 살아 있는 사례다. 시장이란 결국 개개인에게 흩어진 정보를 가격이라는 정보로 빠르게 모으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시장 참여자들이 다른 정보에 접근하지 않고 가격만 보더라도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시장 경제의 궁극적 목적이다. 여기서 핵심은 개개인에게 흩어진 정보를 최대한 잘 모으는 것이다. 일부에서 과장하듯이 플랫폼이 시장 참여자들의 모든 욕구와 의도를 파악해서 참여자들의 참고할 수 있는 가격을 없애고 정보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기능할 수 있는, 즉 시장과 그 상호작용의 결과물인 가격을 폐지하는 온전한 플랫폼 사회주의를 이룰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기계 학습 혹은 AI가 그 정도의 완성도를 지니는 날이 오기 전까지, 플랫폼은 시장과 계획의 문제를 단계를 맞물려 풀어낸 흥미로운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