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크 조각 모음 시즌
치과치료 이후 몸에 변화가 생긴 듯 하다. 임플란트 식립 3주가 지나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운동을 하게 되어 완급조절을 하지 못한 탓인지, 아니면 어제 상자 분리수거하면서 힘주는 각도가 근육에 무리였던건지 원인을 알 수 없으나 팔꿈치 감기라고도 불리는 내상과염이라는 병을 처음으로 겪게 되었다. 치과치료도 쉽지 않아서 힘들었던 시기에 적응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일상에서 팔을 쓰는 일도 조심해야 하다니. 온 우주가 운동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데 듣지 못하고 있는걸까? 내가 주인이 아닌 것 같은 몸과 공존하는 일에는 언제나 앞선 걱정과 뜻대로 되지 않는 억울함이 뒤따른다. 하지만 지난 경험들을 반추하면, 어떤식으로든 지나가기 마련이고 늘 걱정보다는 나은 결과였으니 이번에도 그럴거라 믿어보는 것 이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대체로 명석한 생각에 뿌리를 둔 부정보다 허황되고 근거없는 긍정이 나은 방향을 만드는 것 같다. 살아가는 일은 정말 이상한 일에 연속이야.
지하 태권도장 에어로빅 수업에 거의 매일 가고, 월수금 저녁으로 스피닝까지 했으니 몸에 과부하가 올 수 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든 건 쉬고 일주일 정도 지났을 즈음이었다. 집에서 느긋하게 9시쯤 일어나 아점을 먹고 밀린 책을 읽고 산책하는 일상을 지내보니 흩어져만 있던 조각, 이어지지 않은 사건들이 하나의 조형물로 만들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운동을 하면서 깊게 생각하기를 피하고 몸에만 집중하면서 비워내려고 했던 것을 인정해야만 하는 작은 사건이었다. 각종 OTT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했음을 같이 기록해두어야만 한다. 보이는 것들은 자꾸 사고를 가로막는다.
작년에 1월부터 6월까지는 줌바를 배웠고, 7월부터 파워에어로빅을 했으며 올해 1월부터는 스피닝을 했으니 주중에 하루도 빠짐없이 사람들을 만났었다. 파워에어로빅은 매일 운동하는게 기본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집합체라 왜 운동을 못하는지 세부사항을 공유할 수 밖에 없는 분위기다. 나는 그래서 오늘도 그들에게 나의 병명을 공유할 수 밖에 없었다. 내 아픔을 확성기로 알려야하는 게 너무 이상하고 부당한 상황이 아닌가 싶으면서도 선의와 걱정에 가까우니 괜찮은건가 싶어 이 둘을 가감해보면 나쁘지 않은, 별거아닌 일이 된다. 도대체 운동이 뭐라고, 서로가 서로를 얽지 못해서 애쓰는건가 싶다. 그런데 또 나 따위가 뭐라고 신경써주는게 고맙고 나도 누군가를 그렇게 궁금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 또한 이상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사람이란 뭘까. 아무튼,
2월말부터 지금까지에 작은 성과라고 할 수 있는 일은
<호밀밭의 파수꾼>을 다 읽었고, 정원의 사진산문집<어느 미래에 당신이 없을 것이라고>를 단숨에 그러나 집중해서 한 자리에서 읽어냈으며, 다윈의 <종의 기원>도 더디지만 나아가고 있고, 프랑스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도 매일 1장씩 더해서 읽어내고 시간이 쌓이고 있다는 것과 조금은 느긋하게 몸의 변화를 바라보는 느리지만 잔잔한 속도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예전에 데스크탑 컴퓨터를 쓸때, 좋아하던 작업 중에 하나가 디스크 조각 모음이었다.
컴퓨터를 정리정돈하는 개운한 기분에 주기적으로 했었던 기억이 있다. 맥북을 쓰면서는 그런 작업을 한 기억이 없으니 이 작업을 안한지도 어느새 10년이 지나갔는데, 지금 내가 거치는 시간은 디스크 조각 모음인 것 같다고 생각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