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운동 유랑기
돌이켜보면 나는 항상 운동을 좋아했다. 학교에서 배우는 운동 종목들을 잘하진 못해도 좋아했고, 대학교에 가서도 농구모임을 만들어서 놀 만큼. 인문대 철학반에서 만난 인연으로 이어진 친구들과 <농구(n) & THE CITY=NAC> 라는 모임을 만들고 나이롱 농구를 했던 시절도 어느덧 10년이 더 지났다. 여학생 위원회에서 만난 수리를 따라 성신여대에 요가학원을 다니기도 했고, 할머니 집 근처에 있는 청량리 주민 스포츠센터에서 수영을 잠시 배우기도 했다.
결혼하고 미국에서 살았던 때는 LA FITNESS에서 줌바 수업을 즐겨들었는데, 인종과 장애에 대한 벽이 없이 같이 춤추는 게 너무 좋았던 기억이 남아있다. 다시 해외에서 살 기회가 생긴다면, 맨 처음으로 그곳에 주민센터를 찾아가 운동을 먼저 등록하자는 원칙도 생겼다. 작년에 독일 주재원 나가는 줄 알고 프랑크푸르트에서 무슨 운동을 할지 설렜던 건 지금 생각해도 조금 웃긴 일이야.
나이가 들었다는 말은 사람이 살아온 시간이 안으로 쌓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안에는 사랑이 들기도 하고, 미움이 들기도 하고, 몸의 병 뿐만 아니라 마음의 병이 들기도 한다. 몸이 아픈 시절을 지나면서, 언제 어디에 있더라도 운동을 꼭 해야겠다는 생존에 원칙이 생겨났다. 몸이 건강하지 않으면 마음도 쉽게 병들고, 반대로 마음이 병들어도 몸이 아프다. ‘신체형 장애’는 매우 다양한 증상으로 나타나는데, 내 경우는 청력 상실로 이어졌고, 이후엔 감각을 더 잃을 수 없다는 벼랑 끝에 선 마음만 남았다. 절박한 마음을 부여잡고 아프기 싫어서 시작한 운동이 주 2회가 되고, 주 3회에서 주 5회로, 주 8회까지 늘어나 버렸다.
어떤 식으로든 아프지 않게 살아보겠다고 하게 된 운동이 생활에 너무 많은 시간을 차지하면서 다른 고민이 등장한 건 올해 초 스피닝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순차적으로 기억을 더듬어 본다.
2022년 1월부터 6월까지 주민센터 줌바 수업을 벗어나 집 앞에 있는 지하 태권도장에서 파워 에어로빅 댄스를 접하게 되었다. 줌바 선생님을 편의상 A라고 칭하겠다. A선생님은 대놓고 엇박자로 춤을 추셨는데, 나르시시즘이 너무 강해서 수강생들에게 끊임없이 자기 자랑을 하고 칭찬받기를 원했다. 3개월에 수강료 10만원도 안되는 수업에 만족보다는 수강료에 맞춘 체념으로 다니다, 파워로빅 오전 9시 담당 선생님 B를 만나게 되었는데 이것은 빅뱅에 버금가는 놀라움이었다. 주민센터에 비하면 아주 조금 비쌌지만 주 5회에 6 만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B 선생님의 수업은 파워 그 자체였던 것이다. 앞줄 언니들에 탄탄한 안무, 구령이 더해지면서 이것이 참 운동이다! 나는 그동안 갇힌 세상에 있던 것이라는 깨달음! OH My GOODNESS! 그렇게 조금 현대화된 에어로빅 안무에 빠져들면서 주 5회 운동을 기본값으로 둔 생활이 되어버렸다. 매일매일 열심히 적응하다 보니 선생님과 회원들의 관심을 받게 되고, 그게 조금은 부담스러웠지만 은근히 즐거웠다. B 선생님은 사람을 끄는 능력이 확실히 있고, 움직임을 가르치는 방식도 탁월했다. 그러나 수업 중에 각종 음담패설, 원치 않는 스킨쉽, 선을 넘는 방식으로 다가오는 것 등등 여러 가지 요소가 겹쳐지면서 수업에서 오는 기쁨이 불쾌함을 넘어서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가장 참기 힘들었던 건 B 선생님의 음악 선곡이었다. 이건 정말 중요한 문제다. B 선생님은 굉장한 주당인데, 운동 음악조차도 술에 치중한 선곡으로 이어져서 내가 운동을 하는지 음악으로 술을 마시는 건지 헷갈릴 경지에 이르렀던 거다. B 선생님의 허튼짓과 알콜의 향기가 더해진 선곡이 더해지며 2022년 겨울 즈음에는 다른 선생님을 찾기로 했다.
그렇게 바꾸게 된 것이 B 선생님 다음 시간으로 이어서 진행되는 10시 담당 C 선생님의 수업이다. C 선생님은 진짜로 흥미로운 사람이다. 정말로 웃기고 재밌는 사람. 수줍어하는데 돌아이 같고, 못하는 것 같으면서도 잘하고, 얼마나 성실한 지 매주 최신곡으로 안무를 들고 왔다. 술이 들어간 노래에 지친 나에게 C 선생님에 다양한 선곡은 2차 빅뱅을 일으키며 다른 몰입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장점과 단점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양면과 같은 것이다. 선생님에 못하는 것 같으면서도 잘하는 장점은 결국은 못하는 건 못한다는 거고, 지치지 않는 최신곡 안무는 배우는 것에 피곤함과 어려움으로 이어져 의지를 꺾고야 말았다.
C 선생님 수업에 주인공은 바로 선생님보다 더 맑게 미쳐있는 다른 회원들이었는데, 회원들 면면이 맑고 따듯하고 솔직하고 명확한 개성이 있는 인물들이라 안무가 틀리든 말든 우리가 즐거우면 그만이라는 당당한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 맑게 미쳐있는 에너지를 흡수하며 6개월을 열심히 다녔다. 적확한 언어일 지 모르겠지만, 규율 없이 해방되고 모든 걸 놓아버리는 모양새였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타고난 ESTJ. F와P의 경계를 자주 오갈 수 있고 어려움을 느끼지 않지만, 본체는 T+J인 사람이라 목표와 성과를 아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반년 열심히 놀다 보니까 좋은 사람들은 주변에 남았지만, 만족하는 성취를 느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기본적으로 이 파워로빅, 에어로빅에는 받아들이기 힘든 문화도 몇 가지 있는데, 이를테면 여름휴가/ 추석/ 설날/ 스승의 날/ 선생님 생일에는 회원들이 1-2만원 씩 각출해서 용돈을 드리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아무리 많이 마시고 먹어도 선생님들은 회식에서 돈을 내지 않는다. 나는 스승의 날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날들에 비용을 부담하는 것에 매우 동의하기 힘들다. 기본적으로 고용주가 해야 할 일을 왜 수강생들이 하는 것일까? 성의 표시라면 단체에서 강요된 방식이 아니라 개인이 자발적으로 해야 마땅한 일이다. 그리고 주 5회가 기본이고 주 3회가 최소치인 프로그램이라 운동 안 가는 날에는 사람들에 걱정하는 연락을 자주 받았으며 일거수일투족을 이야기하는 상황이 예기치 않게 생겨났다. 나라는 개인이 이렇게 드러나는 게 불편한 상황인 걸 어떤 시점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지 문득문득 고민했다. ‘그냥’ 말하고 싶지 않은 날도 있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게 맞다. 그런데 분위기라는 게, 관계라는 게 명확한 의견을 전달하기 어려운 경계선에 상황을 자주 만들어내서 애매한 불편함들이 미세한 틈을 채웠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가 될 수 없는데 하나로 만들려는 노력이 풍전등화 같이 보이기도 했다. 우리는 모이면 즐겁고, 너무 행복하다고 확인하는 작업이 반복될수록 질문이 늘었다. 저게 진짜일까? 아니면 그래야만 하는 걸까? 너무 좋다고 느끼는 감정들은 늘 배신한다. 어떤 것도 너무 좋기만 하기도, 너무 나쁘지만도 않다. 외부의 자극으로 인해 덤덤함을 찾기 어려워지는 게 내심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렇게 시나브로 의문점도 쌓여가고, 환기가 필요한 시점에 스며든 것이 ‘스피닝’ 이다.
무릎이 혹여나 박살날까봐 걱정하면서 참여한 첫 수업에서 D 선생님에 화려한 팔 근육을 보면서 깨달았다. 역시, 여자라면 모름지기 근육이 필요하구나. 그렇게 D 선생님에 근육과 화려한 퍼포먼스, 스피닝에 확실한 운동 효과를 느끼면서 1월부터 7월까지 스피닝 횟수를 늘리기에 이른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파워로빅과 스피닝을 2023년 상반기에 병행했다는 것. 대회 나갈 것도 아니고, 바프 찍을 것도 아닌데 운동을 열심히 하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복근이 미세하게 보이니까 정말 신이 났다. 6월 26일 건강검진 기준으로 몸통 근육이 표준에 113%, 다리 양쪽도 100%에 가깝다. 팔 근육이 85-87인데, 하반기 목표는 팔 근육 93% 이상 만들기다. 3월부터는 SNPE 수업도 주 2회 같이 했는데, 확실히 자세가 곧아지고 스피닝과 댄스에서 안 쓰는 부위를 풀어줘서 꾸준히 할 예정이다. 공교롭게도 SNPE 선생님 이름이 남편 이름과 같아서 몇 배는 더 친하게 느껴진다.
이 글을 쓰는 중간에 건강검진 결과를 확인했는데, 이렇게 열심히 운동해도 각종 부위에 낭종, 물혹, 미세한 세포 이상, 염증 따위가 생겨나 있었다. 긍정 회로를 돌리면 운동이라도 해서 이 정도라고 위로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또 다시금 지겹다. 이제 인생에 남은 건 노화일 뿐이고, 나의 노력은 노화를 최대한 받아들이면서 유연하게 거스르는 일이 될 것이다. 건강염려증으로 인해 급히 맞고 온 가다실9 1차 주사로 인해 왼팔이 뻐근하다. 내일 스피닝 가고 싶은데, 쉬어야 할 것 같아서 벌써 아쉽다. 아픈 건 지겹고, 운동은 즐거우니 이 균형에 감사해야 하겠지? 역시나 내 안에 충돌하는 자아들과 어울려 사는 건 고된 일이야. 인생, 태생적으로 고단하다. 어느 나이를 막론하고 너무 거칠고 험난해. 유리알 같은 몸으로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가 애잔하고도 대견하다. 그리고 어김없이 서로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낮과 밤, 밤과 낮에 존재를 골똘히 들여다 보고싶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