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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정 Jun 02. 2020

지금은 이야기를 다시 써야 할 때

제현주의 《일하는 마음》을 읽고


과거에는 그럴 법했던 이야기가 더는 통하지 않는 그 순간, 우리에게는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왕이면 더 좋은 이야기가. 이야기를 계속 고쳐 쓸 수만 있다면,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내게는 지난 몇 년에 걸쳐 수없이 고쳐 쓴 이야기가 있다. 첫 직장에서 선배들과의 사이에서 겪은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 처음에 그것은 신뢰하던 사람들에게 뒤통수를 맞은 이야기가 되었다가 그 다음엔 교묘한 통치술을 사용하는 관리자에게 전략이랄 것도 없이 그냥 머리를 들이박다가 실패한 말단 직원의 이야기가 되었다.


가장 마지막으로 고쳐 쓴 버전은 이러했다. 내가 첫 직장 선배들에게 그토록 분노한 건 그들이 한 잘못 때문도 있지만 제대로 준비해 싸우지는 않으면서 내 이십대 후반을 그곳에서 시시하게 버티는 걸로 보낸 스스로에 대한 분노 탓이 큰 것 같다고. 이야기는 미숙하고 나약하고 게을렀던 스스로를 반성하며 갑자기 성장 드라마로 방향을 틀었다. 나는 마지막 버전에서 다시 이야기를 고쳐 쓸 일은 없으리라고 지금까지 생각해 왔다.


심리 상담을 받은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선생님은 첫 직장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좀 더 다뤄 보면 좋겠다고 제안하셨다. 앞선 회기들에서 나는 그때의 경험을 잠깐씩 언급할 때마다 이제는 내게 그 일들이 다 지나간 이야기로 느껴진다는 말을 몇 차례 했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다시 해야 한다니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지겨워졌다. 나는 그에 대해서 이제 별로 할 말이 없는데?


그러나 어제 나는 선생님 앞에서 3, 4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열을 내며 첫 직장에서 겪었던 일들을 토해 냈다. 그러면서 어떤 마음을 다시 겪었다. 회사에서 내가 겪은 일의 부당함을 알리려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때면 상대가 내 편에 서 줄지 불안하고 외롭던 마음, 내가 언론이나 책에서 보아 온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모두 성실하고 나무랄 데 없어 보이는 사람들 같았는데 나는 나무랄 데가 너무 많은 사람이라 상대가 너에겐 회사에 문제를 제기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진 않을지 작아지던 마음을. 그러면서 깨달았다. 내가 자꾸 곱씹는 기억들은 거의 그 시절로부터 시작된 것들이고, 내가 자꾸 되고자 애쓰는 모습들은 거의가 그 시절의 나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것들이라는 것을. 나는 여전히 그 시간에 묶여 있었다.


내가 상담을 시작한 건 스스로가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아서였다. 나는 첫 직장을 퇴사하고 언제부턴가 실수를 하지 않으려, 누구에게도 빚지지 않으려, 꿀릴 거 없는 사람이 되려고 애썼다. 내가 실수하고 폐 끼치고 허점 많은 사람이라 첫 직장에서 당당하게 싸우지 못했고 스스로를 곤궁에 빠트렸다는 자책이 커서였다. 내가 마지막으로 쓴 버전에 따르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애를 쓰면서 두 번째 직장에서 나는 첫 직장에서와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요약하자면 별로 나무랄 데 없는 직원. 나는 변한 내가 편하진 않았지만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예전의 허술한 내가 그리웠다.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 되고자 끊임없이 스스로를 검열하고 종종대다 보니 어느 순간 내 삶에 틈이라는 게 보이지 않았다. 농담이 점점 사라졌다. 재밌는 일이 잘 일어나지 않았다. 별로 할 이야기가 없어 친구들을 만나는 일이 부담스러워졌다.


제현주의 《일하는 마음》을 읽다가 “과거에는 그럴 법했던 이야기가 더는 통하지 않는 그 순간, 우리에게는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문장에 잠시 멈춰 섰다. 두 번째 직장에서는 이전 같은 과오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던 내겐, 이제는 과거의 상처에 매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던 내겐 마지막 버전 같은 이야기가 필요했을지 모른다. 그 이야기를 딛고 내가 걸어 나갈 수 있었던 시간들이 분명 있다. 그러나 지금은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한 순간이다.


선생님은 너무 많은 감정들이 얽혀 있는 사건이다 보니 내가 감당하기가 버거워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것으로 빨리 결론을 낸 것 같다고도 하셨다. 그런 것 같다. 나는 내가 받은 상처들을 들여다보려다가도 항상 ‘너만 선의의 피해자인 양 구네? 너무 자기 연민에 빠져 있는 거 아니야? 너는 마치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인 듯 말한다?’ 자기 검열을 하며 곧잘 멈추곤 했다. 물론 그런 물음과 성찰도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의 나에게 화를 내는 이야기가 아니라 과거의 나를 새롭게 만나는 이야기가, 다시 나를 믿을 수 있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어떤 이야기가 될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번엔 천천히 써 보려 한다. 언제든 또다시 새로 이야기를 써야 할 때가 올 수도 있음을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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