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낳고 종종 삶을 다시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아기가 겪고 있는 무수한 처음들을 함께 겪으면서다. 지난주에는 아기가 제 발로 처음 바깥 땅을 밟아 보았다. 겁을 먹어 약간 얼어 있으면서도 아기는 자길 둘러싼 낯선 세상이 신기한지 주변의 온갖 것들을 가리키며 소릴 질렀다. 덩달아 나도 신이 났다. 평소라면 무심히 지나쳤을 것들을 보며 “우와”거렸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두 살이었다.
사노 요코의 그림책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 에서 씩씩한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는 아흔아홉 살 할머니는 우연한 기회로 다섯 살이 된다. 다름이 아니라 고양이가 할머니 생일 케이크에 꽂을 초를 다섯 개만 들고 나타난 탓이다. “하지만 난 할머니인 걸”이란 말로 스스로가 만든 작은 울타리 안에서만 살던 할머니는 몸은 그대로이지만 이제 다섯 살이라 뭐든 할 수 있다. 낚시를 하고, 들판을 뛰고, 냇물에 첨벙 뛰어든다. 자신이 가닿을 수 없다 생각한 아주 먼 곳으로 가는 사람이 된다.
“야옹아, 내가 왜 이제야 5살이 되었나 모르겠구나.” 할머니는 고양이에게 말한다. 여기서 다섯 살은 내게 어떤 삶의 태도를 말하는 것으로 읽혔다. 주저하고 망설이느라 삶을 흘려보내기보다 첨벙 뛰어들어 보는 태도, 삶이 내게 좋은 것을 주리란 기대를 여전히 생생히 품고 있는 마음, 그러니까 내가 날마다 아기를 통해 보고 있는 것들 말이다. 그리고 그건 아주 생경한 게 아니라 할머니도, 나도 언젠가 가졌을 모습이다.
내가 지금 “하지만 하지만” 뒤에 붙이는 말들을 떠올려 본다. 그것이 내 삶에 얼마나 좁은 울타리를 쳐 놓았는지도. 나는 오랫동안 내가 운동신경이 떨어지고 겁이 많기 때문에 어떤 일들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해 왔다. 그중에 자전거 타기와 수영이 있다. 그런데 올해는 이 둘을 정말로 배우고 싶다. “하지만 하지만” 하는 목소리가 습관처럼 나오겠지만 케이크에 초를 다섯 개만 꽂은 사람의 마음으로 시도해 보고 싶다. 자전거를 타고 강변을 달리고 마침내 물속에서 헤엄 비슷한 거라도 할 수 있게 되면 그때 나도 그림책 속 할머니처럼 신이 나 말하게 될까. 내가 왜 이제야 다섯 살이 되었나 모르겠구나,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