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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정 Apr 18. 2020

부모는 딸에게 가장 안전한 사람일까

딸의 첫 번째 생일을 맞이하며


아기의 성별을 묻는 질문에 딸이라 대답하고 나면 사람들은 대부분 축하를 건넨다. 그러고는 말한다. 첫째가 딸이면 부모 대신 동생들을 돌봐 줘서 수월하다거나, 늙어서 아프면 딸밖에 없다거나, 딸은 나중에 커서 친구가 되어 준다거나. 요약하자면 딸의 ‘효용’에 관한 말들. 아직 자기 자신으로도 살아 보지 못한 딸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동생의 양육자로, 부모의 간병인이자 정서적 지지자로 먼저 호출되는 광경을 보다 보면 의문이 인다. 바야흐로 딸바보의 시대라는데, 과연 지금 이 사회는 정말 딸들에게 살 만한 곳일까.


바깥만을 향했던 질문을 내게로 돌리기


이 사회가 딸들에게 살 만한 곳인지를 묻는 일은 이 사회가 여성들에게,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살 만한 곳인지를 묻는 일과도 겹친다.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지정하는 ‘여성친화도시’와 ‘아동친화도시’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사는 공간이 그다지 여성 친화적이지도, 아동 친화적이지도 않다는 걸 말해 준다. 그런 사회에서 여성 대상 범죄가 기사에 오를 때마다 불안에 시달리던 나는 딸이 태어난 뒤로 걱정도, 분노도 배로 늘었다. 범죄자가 됐든, 이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폭력이 됐든, ‘외부의 적’들로부터 어떻게 딸을 지킬 것인지 명쾌한 해결책이 없는 물음을 가지고 고민했다. 그러다 보니 놓쳤다. 이 집은 딸에게 안전한 공간이고, 나는 딸에게 안전한 사람인가 하는 물음을.


물리적인 폭력만이 한 인간의 삶을 위협하진 않는다. “너 살쪘니?” 묻는 질문, “어른한테 말대꾸 하는 거 아니야” 하는 정색도 한 인간의 삶을 위협할 수 있다. 특히나 부모와 어린 자식처럼 힘의 기울기가 존재하는 관계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위협이라는 건 다른 게 아니다. 상대로 하여금 자기 눈치를 보며 스스로의 말과 태도와 행동을 단속하게끔 하는 일, 그가 꿈꾸고 누릴 수 있는 세상을 좁히는 일이 바로 위협이다. 부모가 좋은 거든 나쁜 거든 외모에 대한 평가를 입에 달고 산다면 딸은 자신의 몸이 할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보다 거울 앞의 몸매에만 신경 쓰게 될 가능성이 높다. 친구와는 싸워서 안 되고 선생님 말씀은 그저 잘 들어야 하는 게 된다면 갈등을 건강하게 해결하는 일을 배우지 못하거나 자기를 지켜야 할 순간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사회생활은 다 그런 거라며 궂은일도 참고 견뎌야 한다고 부모가 말한다면 자식은 회사에서 겪은 부당한 일에 대해 항의하길 주저할 수도 있다.


물론 자식은 부모가 그리는 대로 그려지는 하얀 도화지가 아니고, 자식의 삶에 영향을 주는 존재는 부모 말고도 많으므로, 부모가 어찌 생각하는지와 상관없이 어떤 이들은 자기 몸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버릇없다는 말 따위에 지지 않고 자신을 억누르는 부당한 상황과 싸울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부모와는 나누지 않을 것이다. 부모가 내 행동에 대해 “남들은 그냥 잘 적응해서 사는데 넌 왜 이렇게 민감하니”라고 말할 것 같다면, 부모가 내 편이 되어 줄 거라 믿을 수 없다면 말이다.


내 안의 욕망, 불안, 모순과 마주하며


늘 그런 부모는 나와 먼 일인 양 자만해 왔는데 요즘 나는 자신이 없다. 내가 딸의 삶에 기대하고 바라는 것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다 나는 여성학자 정희진이 록산 게이의 《헝거》에 쓴 추천사를 떠올렸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직면했다. 내가 가부장제 사회에서 수용되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 찬 여자라는 사실을.” 나도 딸의 삶을 앞에 두고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닌 척하면서도 이 사회의 ‘정상’이나 ‘주류’의 범주에 들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 찬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 범주 밖의 삶을 사실 몹시 두려워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나는 여전히 내 몸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지 못하고 이 사회가 이상적이라 말하는 어떤 몸들을 동경한다. 여성이나 어린 사람에게 애교를 요구하는 사회를 욕하면서도 싹싹한 여성이 되려 애쓰고, 과로사회를 바꿔야 한다면서도 인정받으려 부러 야근을 자처하며 열심히 일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나의 모순과 비겁함, 용기 없음은 내 삶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딸의 작은 몸을 보며 나는 딸이 내가 아닌 팔다리가 길고 얇은 남편을 닮았으면 좋겠다고 바라곤 하고, 딸이 낯을 별로 가리지 않고 처음 보는 어른에게 잘 안기는 걸 보면서 뿌듯해하며(어른들은 낯가리지 않는 아기를 좋아한다), 위험과 불이익을 감수하고도 옳은 길을 가는 사람들을 보며 나중에 내 딸이 그러면 나는 말리지 않을 수 있을까 갈등한다. 그런 것들이 성찰되지 않은 채로 딸과 함께 자라날 때, 그건 언제든 딸의 외모와 성격을 지적하는 말로, 딸의 싸움을 지지하기보단 비난하고 훼방 놓는 말로 딸을 위협할 것이다.

‘다 널 위해서’라는 말은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과 질서 밖으로 나가려는 자식을 꿇어앉히려 할 때 부모들이 가장 흔히 쓰는 핑계이다. 그런 이유로 부모들은 때론 자기들이 비판했던 세상의 질서에까지 자식이 무난하게 맞춰 살아가길 기대한다.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막냇동생이 생의 굵직한 선택들을 할 때마다 내가 직면해야 했던 것도 그런 모순이었다. 동생이 연기를 하겠다며 연극영화과에 갔을 때, 그리고 그렇게 간 대학을 중도에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그때마다 내 마음속에는 동생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자 하는 의지보다 일단 말리고 싶은 충동이 먼저 일었다. 미래가 불투명한 일 말고 좀 더 평범하고 안정적인 진로를 택하면 안 될까, 그래도 사회에 차별이 존재하는데 대학 졸업장은 따면 안 될까 하는 마음이.


튀어나오려는 말들을 꾹 참고 동생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내가 하려던 ‘현실적인 조언’들이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어른들의 말이자 내가 비판했던 세계의 일부라는 걸 깨달았다. 그건 내가 지금까지 진로와 관련해서나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사람들을 향한 차별에 대해 갖고 있던 문제의식과 모두 부딪치는 생각들이었다. 사랑하는 이를 걱정한다는 핑계 아래 나는 내가 동의하지 않는 세상의 질서에 동생이 착실히 적응하길 바라며 오히려 그걸 굳건히 만드는 데 일조하려 했다. 그리고 지금 그 일이 딸을 앞에 두고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딸의 곁이 되어 주기 위해선


그때 나와 달리 엄마는 담담히 동생의 선택들을 받아들였다. 어떻게 먹고살려고 그러느냐는 그 흔한 말조차 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엄마는 우리가 자라오는 동안 대부분 그랬다. 학교에 너무 가기 싫은 날 내가 부탁을 하면 엄마는 담임 선생님에게 전화를 해 애가 아파 오늘 결석을 해야 할 것 같다고 거짓말을 해 주었다. 아파도 교실에 가서 쓰러지란 말이 비장하게 쓰이던 고등학교 시절이었지만 학교 가기 싫은 내 마음 곁에 엄마는 나란히 앉아 주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며 박봉을 받으며 일하던 시절, 만나는 사람마다 내게 언제 제대로 된 직장에 취업할 건지를 묻는 동안에도 엄마는 사람은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자기랑 맞는 데서 일을 해야 행복하다고 말해 줬다. 대체로 대세를 따르며 살아온 내 삶에 내가 원하는 곳으로 방향을 틀어 보려 한 저항의 흔적이 조금이나마 있다면 그건 엄마 덕이 클 것이다.


인권기록활동가 박희정은 동료들과 함께 쓴 《나는 숨지 않는다》에서 “누군가의 곁이 된다는 것”은 “우리에게 부여된 위치가 이동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사회가 부여한 역할과 규범 등을 재구성해야만 하는” 작업이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인다. “내 자식이 ‘착한 딸’이기를 기대할 때 부모는 학내 성폭력을 고발한 자식의 곁이 돼줄 수 없다”고. 우리 엄마에게도 잘은 모르지만 연극해 가지고 어떻게 먹고살래 하는 물음이, 학교도 못 버티면 나중에 회사는 어찌 다니려고 그러느냐는 한숨이, 누구 집 딸은 대기업 다니면서 부모 용돈 준다는데 하는 속앓이가 없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안의 무언가를 무너뜨리고 마음을 다잡으면서 엄마는 계속해서 자신이 발 딛고 선 자리를 움직였고 자식의 곁이 돼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그게 정확히 어떻게 이루어지는 일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엄마를 생각하다 보니 조금 알 것도 같다. 친구와 싸워선 안 된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잘 싸우고 잘 화해하는 법을 같이 배워 가는 것, 딸에게 너는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고만 말할 게 아니라 사실 꼭 예쁠 필요는 없다고도 말하는 것, 그리하여 나부터 내 못생긴 구석들을 숨기고자 애쓰지 않는 것, 어떤 곳에선 적응하지 못하는 게 오히려 네가 건강한 사람이라는 신호이기도 함을 알려주는 것, 그래서 나도 너무 괴로움을 오래 참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 어른이라서 공경하는 게 아니라 우리는 상대가 누구든 서로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그러므로 무엇보다 내가 딸을 그렇게 존중하는 것. 내 안에 깊이 들어와 있는 온갖 역할, 노릇, 도리, 본분, 규범, 고정관념 들을 하나씩 살피고 버리고 재조립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 지금과는 다른 자리에 가 있지 않을까.


부모는 그 자체로 자식의 안녕한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 이 집이 내 딸에게 가장 안전한 곳이고 우리가 딸에게 가장 안전한 사람일 거라는 착각이 오히려 딸들을 가장 안녕하지 못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는 N번방 사건과 관련해 낸 논평에서 ““부모님에게 알린다”는 말은 어떻게 협박이 되었을까?”라고 묻는다. 부모가 딸의 곁이 되어 주지 못한다면 그 말은 언제까지고 협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이 협박이 될 수 없는 현실 또한 우리는 만들 수 있다.


딸의 첫 번째 생일을 맞이하며 다짐해 본다. 그런 말이 협박이 될 수 없는 부모가 되고 싶다고, 그리고 더 이상 그런 말이 협박이 되지 않는 사회가 되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겠다고. 딸이 언젠가 정말 학교에 가기 싫은 날 내게 학교에 거짓말 좀 해 달라고 부탁한다면 나는 정말로 기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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