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을 주는 친구이자 스승
저는 (제 개인적인 기준에서) '평범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 가는 것이 당연했고, 스트레스를 푸는 것은 친구들과 피씨방에 가는 것이 유일했죠 (나중엔 만화책과 판타지소설도 섭렵했지만요). 교육에 투자하는데 아끼지 않으셨던 부모님 덕분에 중학교 첫 시험은 꽤 나쁘지 않게 봤던 것 같은데 점점 떨어지더니 반에서 딱 중간정도의 성적으로 중학교를 마무리했습니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어요. 학교에서는 점심시간에 축구하는 것과 쉬는시간마다 보는 만화책과 판타지소설이 유일한 휴식이었고 학교 학원 집을 반복했죠. 브런치나 블로그에서 만날 수 있는 정말 멋지고 훌륭하신 분들은 참 각자의 삶에서 '치열하게' 노력을 하셨더라고요. 저는 그런 '치열한' 삶과는 좀 먼 친구였습니다. 아 남들과 조금 다른 점은, 고등학교 시절 연애를 했다는 것과 남들에게 있어보이려고 밴드부를 했다는 점이 조금 달랐겠네요. (뭐 이 둘 다 망했습니다 ㅎㅎ)
서울의 여느 인문계 학생들이 그렇듯, 자신만의 소신이 있는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대학에 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어요. 저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고, 막연히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야겠거니 생각을 하고 있었죠. 다만 행정학과나 경영학과를 쓰라는 선생님과 부모님의 바람은 무시한 채 괜히 있어 보이고 싶었던 저는 수능 점수를 딱 맞춰 서울에 있는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합니다. '다'군에서 7차 추가합격으로 문 닫고 들어간 것은 안자랑 ㅎㅎ
20살의 저에게 대학이란 곳은 엄청난 곳이었어요. 사실 저는 처음 입학했을 때는 친구가 한 명도 없었는데 이유인 즉슨,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금토일'로 한다고 하더라고요. 엄마 뱃 속부터 단 한번도 교회를 빠진적이 없었던 저는(믿어지십니까? 21살 군대에서 훈련때문에 교회를 가지 못한 날 전까지 단 한 번도 빠진적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저희 엄마가 이 글을 볼지도 모르니... 쉿)
'아니 어떻게 기독교 학교에서 오리엔테이션을 일요일을 껴서 가지? 난 안가!'
라는 패기를 부리게 됩니다. 학교 커뮤니티 페이지가 활성화 되지 않았기에 디씨에서 명지대갤러리를 기웃거리며 수강신청 하는 법을 배우고 필수 교양과 필수 전공들에 대한 정보를 얻었었죠. 컴퓨터를 게임하는 용도로 썼던 제가 정보검색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기도 했죠
여튼 매주 1회 '정치학개론' 수업을 듣는 것을 제외하고는 친구 없이 홀로 학교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 친구들과도 어느정도 친해진 것은 한, 두 달이 지난 후였고, 친해졌다 한들 수업 시간이 전부 다르니 20살의 대학생활은 사실상 혼자만의 시간이었죠.
아니 믿어지십니까! 20살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가 ! 혼자서 학식 먹고 ! 혼자 강의 듣고! 혼자 학교 앞 맛집 다니고...
흑흑흑
네 그렇게 보냈습니다. 물론 저 나름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개강총회에 참석하고, 과에서 하는 행사들에 참석하면서 친구들도 만나고 나름 친해지긴 했지만 카카오톡이 없었고 술을 마시지 않았던 저는 과의 온갖 행사들과 멀어졌고 자연스레 무언가 집중할 거리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도서관이었습니다!
짠 에쁘죠?!
사실 이 도서관들은 제가 전역하고 복학한 뒤 부터 사용한 건물이고 제가 20살이었던 2009년에는 본관 낡은 건물만 딱 있었어요. 여튼 그 도서관에 머물면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제 나이 또래 친구들은 알꺼에요. 우리 엄마 아빠들이 우리 초등학교때 세계문고전집, 세계위인전집 이런거 사잖아요. 저도 그 수혜를 받은 사람 중 한 사람이었죠. 그리고 중학교 입학하기 전까지는 책을 굉장히 많이 읽었었어요. 그리고 너무 좋아했구요. 초등학교때는 운동도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토실토실한 몸을 유지한채 귤까먹으면서 책 보는게 너무 좋았었어요. 그래서 책에 대한 거부감이 별로 없었죠. 하지만 중고등학교때는 책과 친해지기 쉽지 않았었는데 대학이라는 곳에 오고나서야 비로소 옛 친구를 다시 만난 것이죠.
정말 책을 미친듯이 읽었어요. 공강시간은 물론 수업이 다 끝나고 책을 읽기도 했고, 모자르면 책을 빌려가서 매일 2시간씩 타는 지하철에서 읽었죠. 그래서 1학년1학기때는 긴 통학거리가 그렇게 싫지 않았어요. 또 대학교라는 곳은 책을 한 번에 2주나, 그리고 7권씩이나 빌릴 수 있었기 때문에 가방 가득히 책을 넣고 다니면서 주구장창 읽었습니다. 물론 종교나 정치, 역사 등 제 배경에 편향된 책들을 주로 읽긴 했지만 일반 소설과 인문학 서적 과학 서적들까지 한 번씩 읽을 때마다 재밌게 읽었어요. 평균 하루에 1권, 많으면 3권씩 읽으면서 보냈습니다. 나중에 친구들이 생겨서 남자들끼리 엠티도가고(...) 방학이 되면서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학교를 가면서(계절학기도 안듣는데 학교를 갑니다! 책빌리러!) 하루에 1권씩 매일 읽지는 못했지만, 정말 책과 친했던 기간이었어요. 그리고 제가 책을 사랑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죠.
저에게 있어서 대학교 1학년 1학기를 생각해보면 친구도 별로 없었고 취미도 없었는데 심지어 그 좋아하던 게임도 별로 하지 않았던 기간이었습니다. 물론 스마트폰도 없었죠. 그렇지만 그 때를 돌아봤을 때 가장 순수하고 행복했던 시기로 기억이 됩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거든요.
앞서 말했듯, 저는 공부를 그리 잘 하지 않았어요. 좋아하지도 않았고요. 그냥 정말 좋은 부모를 만나 교육에 많이 투자하신 덕분에 간신히 서울에 있는 학교에 갈 수 있는 정도였죠. ROI(투자 대비 효율)가 너무 별로였어요 ㅋㅋㅋ 다만, 책 하나는 정말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해외에 나와있고 재밌는 것도 너무 많아서 일주일에 1권 읽기 벅찬 삶을 살지만, 여전히 책만 보면 눈이 반짝반짝해지는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책은 언제나 저에게 영감을 주는 최고의 친구이자 스승이거든요
아직, 솔직히 말해서 제가 책을 좋아했기 때문에 무언가 이룬 것은 없습니다. 그저 책을 좋아해서 있어보인다는 '유식한 척'을 하기에 좋죠. 이전에 취준할 때 자기소개서를 쓰는데 딱히 어려움은 없었기에 글 쓰는데 도움이 좀 되었나 싶기도 하지만 떨어졌으니까 뭐...ㅋㅋ 그리고 이 것도, 진짜 책 많이 읽으시는 분들에겐 명함도 못내밉니다. 그냥 쩌리에요 쩌리 ㅠㅠ
그렇지만 언젠가 빛을 발하는 날이 오지 않겠습니까? 음... 아니, 이미 빛을 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저만의 목소리를 자신있게 내고 있으니까요. 비록 남들이 보기에 비루해보일지 모르지만! 성공한 뒤 나의 모든 경험들이 이랬다라고 쓰는 과거형의 글보다 지금 내가 느끼는 상황과 감정들을 글로 풀어내는 저를 사랑합니다 :D
그리고, 당연한 귀결일지 모르겠지만, 저는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좋습니다. 어떤 사람을 가장 좋아하냐고 물으면, 성격적인 부분은 매번 다를지 몰라도 괜시리 '느낌이 통하는 사람'들을 선호하는데 '느낌이 통하는 사람'은 대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더라고요. 마치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같은 여행가들을 좋아하듯이 저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대화를 통해 동질감을 느끼는 것 아닐까요?
여러분들은 책 좋아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