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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의 방주 May 22. 2018

슬픔의 값을 치루는 댓가, 해외취업

나이지리아에서 나에게 쓰는 편지.

싱가폴 느낌이 듬뿍 났던 레스토랑

나이지리아에서는 취업비자를 받더라도 3개월비자를 받고 들어온다. 그리고 들어와서 얼마나 더 일할지를 판단하고 비자연장서류를 또 신청한다. 이때 이 서류는 짧으면 한 달에서 길면 두 달이 걸리기에 보통 들어와서 한 달 안에 비자연장서류를 신청하게 된다. (내 취업비자와 입국비자를 받는데도 2달이나 걸렸다) 

내가 지원하고 있는 분들은 총 90명. 나와 함께 일하는 과장님까지 92명의 서류를 제출하고 비자연장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던 어느날 갑자기 대리님이 물었다.
“우리 상을 당하거나 했을 경우 한국에 다녀올 수 있어요?”

응 이게 무슨 소리지? 
당황한 마음을 뒤로 한 채 바로 대답했다.
“인사팀에 한 번 여쭤본 뒤 알려드릴께요”
“그래요 부탁 좀 할게요”

불안해 보이는 눈빛인 대리님의 대답을 듣고 나서 순간 ‘혹시 누군가가 상을 당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니나다를까, 불안한 생각은 바로 적중했다. 대리님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던 상황. 하지만 지금 당장 여권 자체가 없었기 떄문에 장례식 안에 한국에 돌아갈 방법이 없었다. 

이 상황이 너무 안타까워서 함께 슬퍼하고 있는 나에게 대리님의 대답은 더 충격적이었다.

“어머니 돌아가신 분도 있어요. 나는 할머니니까 직계는 아니잖아요, 근데 어머님이 돌아가신 분이 있더라고. 나한테 말도 안해주대, 나도 다른 사람한테 들은기라. 아마 여권을 제출해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나봐요. 그냥 같은 팀 내에서 조금씩 조의금이라도 모아줬나봐. 여하튼 이럴 경우 한국으로 가야되잖아.  무급이든 유급이든. 갈 수 있냐는 거지”

충격이었다. 다른 종류의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해본적 있어도 나 역시 엄마나 아빠가 돌아가신다는 것은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런데 여기 근로자분들은 아니었다. 내 아버지 또래와 비슷한 연배를 가지신 분들도 있었기에 현실적인 문제였다.

충격도 충격이었지만 슬픈 사실이 나를 더 짓누르기 시작했었는데,. 

우리가 이걸 알고만 있었다면 분명 ‘장례식이라도 다녀오실 수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

어떤 마음으로 말씀을 안하셨는지 모르겠다. 가장으로써 가족을 위해 일해야 하는데 이미 늦어지고 짧아진 계약기간으로 금액적인 부분이 부담되셨을 수도 있고, 우리가 여권을 이미 다 모아서 제출했고 아직 돌려받지 못했기에 어차피 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셨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전자의 경우라면 가장으로써 무게감을 느낀 순간이겠지만 후자의 경우라 생각하니 마음이 미친듯이 아팠다. 대략적인 시간을 계산해보니 우리가 여권을 다 모으긴 하였으나 아직 서류를 제출하기 전이었던 시기였던 것 같은데, 분명 늦게라도 한국에 가실 수 있었던 타이밍이었을텐데… 인생이 어찌 그리 얄궂은지…

그렇다. 시차만 8시간, 아무리 빨리 간다고 해도 비행시간만 꼬박 하루가 넘는 길을 가야하는 여정이기에 가장 빠른 비행기를 탄다는 가정을 하더라도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딱 이틀이 걸린다. 장례식이 끝날 때쯤 되어서야 간신히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은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냈음에도 그 이별을 내 자신의 손으로 준비할 수조차 없는 시간이다. 남들에게 온전히 내어줄 수 밖에 없는 그 시간에 가족을 잃은 당사자는 어떤 생각을 할까.

이 곳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물론 이제 딱 2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것보다 더 전에) 가깝게 일하시는 분들 중 일주일 텀으로 두 분이나 상을 당해 한국에 다녀오셨다. 한 분은 길게, 한 분은 짧게 휴가를 쓰고 다녀오셔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평소와 같이 일을 하셨다. 길게 휴가를 가신 분은 8시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일들이 있어 끊임없이 전화하고 회의하며 보내셨고, 짧게 휴가를 다녀오신 분은 왕복 50시간이 넘는 일정에도 불구하고 1주일의 짧은 휴가를 보내신 후 회사로 복귀하여 일을 하셨다.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어때야 한다는 정답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혈육으로 맺어진 정이 끊어지는 아픔을 겪어내고 나서(혹은 애초에 슬퍼할 겨를도 없이…) 무심한듯 일상으로 돌아와 일상을 살아내는 분들의 모습이 너무 슬펐다. 회사원으로써, 조직의 구성원으로써 혹은 계약의 당사자로써 우리는 당연히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 사람으로써 내가 사랑했던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써 그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한국에서 나의 사람들과 함께 이겨내는 것이 아닌 낯선 타국에서 홀로 슬픔을 삼키고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이겨내야 한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조금 낯설고 차갑게 느껴졌다.

나는 이 곳에 온 이유를 분명히 알고 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나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나는 무엇을 위하여 이 곳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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