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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별 Nov 14. 2022

이도 저도 아닌 마음의 실체 밝히기

약간의 우울함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브런치에 일정 시간 글을 쓰지 않으면 '꾸준함'이 재능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알림이 온다. 꾸준함이 재능으로 이어질 수 있겠지만, 재능이 업이 될 수 있는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업이 되지 않는다면 의미가 있을까? 부업으로 생각하면 꾸준히 글쓰기가 좀 더 수월할 수도 있겠다. 


 나는 내 마음이 내키지 않을 때는 글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 내 마음이 내키지 않을 때는 사람도 가급적 만나지 않는다. 사회적 페르소나는 잘 써서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은 만날 수 있는데 되려 친한 사람에겐 나중에 보자고 말하게 된다. 그건 내가 그들을 볼 때 늘 좋은 에너지를 주고 싶기 때문이겠지. 요즘 나의 모습은 동굴 모드라도 불러도 어색하지 않다. 동굴 모드가 나쁘다는 것은 아닌데, 어째서 동굴 모드일까? 에 대한 답은 좀 더 탐색이 필요하다. 


 요즘의 나는 사람들에 관해서나 미래에 관해서 크게 기대하는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뉴스를 보고 다소 우울해지는 경향이 있는 듯. 그렇다고 뉴스를 안 보고 다른 콘텐츠만 소비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닌지라 부정적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미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좀 더 필요한 상황이라 보고 있다. 


 평소에 잘 보지 않던 웹툰을 보거나 게임을 하며 마음에 약간의 도피처를 만들어주고 있다. 일종의 회피 행동으로 방어 기제가 작동하고 있다. 내가 놓인 상황에 상처받지 않으려고 나를 지키기 위해 최대한 몸을 웅크리는.


 나의 운이 아니구나, 싶은 일들에 대해 어느 정도 도전을 했기 때문에 미련이 많이 남은 것은 아니지만 석연치 않게 느끼는 부분이 있는 듯하다. 이런 건 지적 탐구로 해소하는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하기에 같은 일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책들을 찾아서 읽기로 했다. 사회 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고, 운의 작용도 크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이라서 이 일들을 한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마음의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예전엔 나도 취업이라는 걸 하고 결혼이라는 걸 하게 되는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나는 계속해서 다른 길을 걷고 있다. 평범하게 살고 싶었으나 전혀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내 삶이 마음에 들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다. 되려 내 인생이 워낙 재미있는 사건들이 많았던 터라 평범한 요즘을 지나치게 재미없는 일상으로 치부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다른 친구들이 걷는 길을 너도 걷고 싶냐고 나 자신에게 물으면 그럴 자신도 없고 도전한다고 그렇게 된다는 보장이 없으니 가능성이 낮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부러워하는 것은 친구들의 삶에서 느껴지는 '안정성' 아닐까? 싶다. 하지만 막상 내가 친구들의 입장이 되면 '안정'적이지 않은 부분에 대해 느끼게 될 것이다. 사실, 다른 사람들의 삶이 안정적으로 보이는 것은 내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주변 사람들을 평소와 다른 감정으로 느끼게 될 때 내 마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시간을 쓴다. 단순히 우울하다고 치부하고 끝나지는 않는다. 그렇게 했다가는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풀거나 게임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등 비생산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 내가 느끼는 부러움의 실체는 내가 요즘 안고 있는 불안의 그림자 같은 것이기 때문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의 창작 행위를 통해 감정의 실체를 파악한다.


 아무래도 요즘 약간의 우울함을 느끼는 것은 불경기에 느끼는 무력감과 정치인들에 대한 분노가 아닐까 싶다. 힘이 없는 청년들이 일자리도 구하기 어려운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에 크게 실망한 듯하다. 그러면서 출산율 떨어져서 걱정이라는 식으로 말하면 우리에게 어떻게 가르쳤고, 어떤 미래를 약속했는지는 알고 있냐고 되묻고 싶은 마음이라고나 할까. 무늬만 어른인 사람들의 모습이 별로 보고 싶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분노라는 것이 꼭 큰 목소리로 화를 내는 형태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님을 인지하고 있다. 오래도록 기억하며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겠다는 일종의 다짐이 내 안에 깊이 새겨졌다는 생각이 든다. 


 불경기 시대에 미래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생각 정리가 덜 끝나서 쉽게 말하고 싶지 않아서 글을 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경제적 어려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준 떨어지는 행동과 발언들이 연일 쏟아지는 가운데 염증과 싫증을 느끼는 것도 당연. 마음이 편안해지는 콘텐츠를 찾는 것도 자연스러운 행동일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무관심으로 반응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다 일본처럼 될라. 무관심은 그들이 가장 바라는 바일 테니 (무관심하면 자기들끼리 북 치고 장구치고 다 할 수 있으니), 어떻게 하는지 지켜는 볼 것이다. 정말 목소리가 필요할 때 목소리를 더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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