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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별 Mar 08. 2023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순간

내려놓으면 보이는 다정함과 친절함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순간이 있다. 마치 눈이 나빠서 앞이 뿌옇게 잘 보이질 않다가 안경을 끼면서 세상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순간은 사실 깨달음과 사랑을 느끼는 순간이다. 내가 매번 만들던 양식에 오타나 오류가 있었다는 걸 발견하게 되면 즉각 수정하는데, '그동안 모르고 있었구나...! 사람들이 왜 말해주지 않았지? 이 정도는 넘어가자고 생각했으려나?' 등의 생각이 든다. 사실 댓글 대부분은 감사합니다 혹은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자신의 사정을 호소하는 사람 둘 중의 하나다. 이용자의 대부분은 아무런 말을 남기지 않고 나를 그저 기억한다. 나를 기억해 준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하게 여기고 있는데, 실수를 발견하면 미안함이 찾아온다. 

 실수를 늦게 발견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1인 기업의 어려움도 느끼지만 나의 서투름에도 불구하고 받아주는 너그러움을 생각해 보게 된다. 무료로 배포하는 콘텐츠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용하는 데 불편함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스스로에게 '내가 나를 먹여 살릴 수 있을까?'라는 확신을 줄 수 없어서 늘 '먹고사는 일'에 신경을 쓰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데 집을 사는 걸 조금 나중으로 미루더라도 투자라고 생각하고 책도 읽고 배울 게 있으면 배움에 투자하고 여행도 다니고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니 수익 창출에 대한 부담감이 덜어졌다. 그러고 나니 내가 해야 할 일이 명확해졌다. 늘 하던 일에서 어떻게 하면 향상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이다. 적은 돈을 받더라도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웬만하면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부담감을 덜어내니 도리어 해결책이 보였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일이 아닌 다른 영역에서도 다시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났는데 나를 많이 투영하지 않으면서 그 사람으로 볼 수 있었다. 신기했다. 늘 젊은 감각의 30대로만 느껴졌던 외삼촌이 50대 꼰대 아저씨가 되어 있었다. 우리 엄마는 60대가 되었고, 우리 이모는 내가 온다고 딸기를 잔뜩 사다 놓았다. 다들 여전히 명랑하지만 흰머리와 주름이 늘었다. 어렸을 땐 어른들이 좋아하는 건 촌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한 사람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내가 요즘 빠져있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점이 좋았고, 어떤 점이 재미있었다와 같은 이야기로. 


 '수익 창출'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처음에 이 일을 시작할 때 가졌던 열정이 어디론가 사라진 느낌이 들었는데, 오랜만에 스타벅스에서 친절한 경험을 하면서 일에 대한 열정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요즘엔 사이렌 오더라는 게 있으니 거의 대화할 일이 없고 '감사합니다'가 끝이다. 짧은 순간이지만 친절한 파트너 분들은 기억에 남기 마련이다. 가끔 기억에 남을 정도로 친절하게 느껴지면 꼭 칭찬 글을 남긴다. 각자의 업무 처리 방식이라는 게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실 그렇게까지 친절하게 대해주지 않아도 서운하거나 아쉽지는 않지만, 친절하게 대해주려고 최선을 다하는 분을 만났을 때는 본인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이 있는 분이시라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몇 번 갔었는데 왜 몰랐지?라는 생각과 함께. 장인을 몰라보고 지나쳤구나! 같은 느낌이랄까. 


 챗GPT 같은 첨단 기술이 등장하고 점점 내가 있을 자리가 사라지는 기분이 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수익 창출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해내고 내 소명이 다하면 다른 일을 찾아서 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내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일하는지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걸 알지만 내가 알고 있으니 괜찮다. 이 정도로 인정받았으면 됐지 뭐, 같은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다는 건 책을 읽으면서 늘 하는 생각이다. 인기를 더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 수익을 더 내고 싶으면 콘텐츠를 'PPT 이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내 말을 들으세요' 같은 문법으로 만들면 될 것이다. 종종 어떤 PPT 콘텐츠 제작자들의 경우 '이렇게 하면 안 된다'의 기준이 콘텐츠 제작자 본인의 스타일을 남에게 강요하는 느낌이 들고 본인이 정답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런데 나는 PPT에 정답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그렇게 알려줄 수가 없다. 그렇게 말하는 화법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PPT는 초등학교에서도 쓰고 대학에서도 쓰고 병원에서도 쓰고 회사에서도 쓰고 교회에서도 쓰고 광고 대행사에서도 쓰는데 어찌 정답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렇게 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는 건 '내 관점에서 PPT를 만들지 말라'는 말 뿐이다. PPT는 볼 사람을 생각해서 만들어야 된다는 것이 내가 가르칠 수 있는 것의 전부이다. 거짓을 말하면서 돈을 벌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내가 수익을 많이 내지 못하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신념을 버리면서 일하고 싶지는 않다. 


 가지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지 않고 내가 갖고 있는 것에 감사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속상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그것이 내 운명이라면 할 수 없다. 대신 나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하면서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삶을 살고 있으니까. 아무런 기대가 없는 내게 종종 사람들이 이유 없이 베푸는 친절함과 다정함이라는 두드림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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