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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별 May 02. 2023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어떻게 나이들 것인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나에게 묻는다

 나는 어린 시절 스스로에게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라고 자주 묻곤 했다.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했다는 건 어린 시절 '저런 어른이 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는 반증인 듯하다. 어린 시절에 어른들이 보여준 행동 중 일부가 못난 행동으로 여겨졌던 듯하다. 나는 못난 어른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성숙하고 멋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마 못난 모습을 보여준 어른들도 어린 시절엔 나처럼 생각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어른들에게 받았던 상처는 책을 읽으면서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맺고 유지하면서, 생산적인 활동을 하면서 많이 치유되었다. 모든 방법들이 조금씩 도움이 되었지만, 결정적으로 도움이 되었던 건 '심리 상담'이었다. 심리 상담을 받게 되기까지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지만 그만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에게 상처를 준 어른들을 계속 원망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어른들이 나에게 보여준 모습이 바람직하지는 않았지만, 계속해서 미워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운 마음을 버리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상담 선생님은 상처받은 일에 대해서 상대방에게 바라는 행동이 무엇인지를 물으셨다. 그 질문에 답을 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내 마음을 아는 일이 이토록 어려운 일이라니.


 내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일이 없었으면 가장 좋았겠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그 일에 대해서 사과를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과 한번 더 그 사건에 대해서 심도 있게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사실 사과를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과를 받았다. 나는 상대방이 지난 일에 대해서 죄책감을 계속 갖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잘한 행동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상대방이 나에게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사건에 대해서 계속 언급을 하면 나의 아픈 상처를 꺼내는 느낌이라 그 사건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 말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그렇게 그 사건에 대한 상처를 어느 정도 마무리 지을 수 있었고 지금은 어느 정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잘 지낸다.


 사실 상대방에게 상처 입은 사람들 중에서는 사과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꽤 많을 것이다. 나도 나에게 상처를 줬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자기가 상처를 주었는지 자각도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그럴 때는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쓰고 내 목소리로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나도 다른 사람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 준 경험이 있을 테니, 상대방을 너무 미워하거나 원망하지는 않기로 했다.


 또 심리 상담하면서 배운 것은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나 자신이 건강한 방법으로 대처하려고 노력한 점에 대해서 충분히 칭찬을 해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잘한 일은 잘했다고 스스로에게 칭찬을 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다른 사람도 칭찬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나 자신을 건강한 방법으로 사랑할 줄 알아야,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이 커진다.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노력한 점을 제대로 칭찬하지 않고 '당연히 그랬어야 하는 일'로 생각하고 넘기면 다른 사람이 나에게 본인의 힘듦을 이야기할 때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이렇게 어려운 일도 해냈는데, 너는 그때의 나에 비하면 별로 어려운 상황도 아닌 것 같은데 힘들다고 말해?'라는 관점에서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은 내가 어려운 일을 극복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나름의 비결이 있을까 기대하는 마음을 갖고 어떤 조언을 구하고자 힘듦을 이야기했을 수 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기에 어려움을 토로했을 것이다.


 나에 대해서 잘 알아야 나에게도 편한 사람이 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도 편한 사람이 될 수 있다. 30대 중반이 된 이후로 '어떻게 나이들 것인가?'에 대해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는데 이런 관점은 부모님 세대보다는 성숙한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있는 듯하다. 여전히 내 생각은 어린 시절에 했던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나는 나 자신이 나이에 걸맞은 지혜와 기품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질문을 바꾸기로 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로.


 이 질문이 중요한 건 내 인생의 주인은 나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한 번뿐이고,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으며 내가 언제 이 세상을 떠날지 모르기 때문에 중요한 질문이다. 나는 내가 결정한 어떤 선택에 대해서 '남 탓'을 하고 싶지는 않다. 어린 시절, 어른들이 누구 때문에 뭘 못했다고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별로 좋게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상대방 때문에 내가 뭔가를 못했을 수 있다. 나는 누구 때문에 뭔가를 하지 못했더라도 그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그렇게 오랜 시간 계속 이야기할 만큼 미련을 가지는 일이 없게끔 해보고 싶은 일이 있으면 꼭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내 인생에 주어진 여건들이 모두 내가 원해서 생긴 것들은 아니다. 난 한부모 가정의 딸로 살기를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일이 일어났다.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는 내 선택이었다. 그렇게 생각을 바꿀 수 있었던 건 우연히 숙제로 <지선아 사랑해>라는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저자의 삶에 대한 태도와 관점 덕분에 내가 처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건가를 선택할 수 있었다.


 취업의 문턱을 넘지 못해 좌절할 때, 어려움을 어떻게 풀 수 있을까? 고민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더 많은 회사에 돌리는 방법도 생각했지만 그 방법으로는 낮아진 자존감 회복이 어려울 것 같았다. 나는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역량을 발휘하는 방식을 택했다. 다행히 그 방법은 유효했고, 나는 현재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이런 고민을 하는 이유가 내 직업이 '프리랜서'라서 그렇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이 질문에 명확히 답을 한 뒤에야 그다음에 내가 취할 행동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직업과는 무관했다. 내가 만약 직장에 다녔어도 같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 전혀 생각을 하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피해를 줄 수도 있다. 난 사람들에게 도움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 폐를 끼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최인아 대표님은 세바시에서 하셨던 강연에서 고민이 될 때 다른 사람이 아닌 '나에게 묻는다'라고 하셨다.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알아차린 후에 행동을 취하면 인생에서 후회할 일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어떻게 나이들 것인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 속에는 후회가 덜한 선택을 하고 싶고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구가 반영되어 있다. 잘 살아보고 싶은 삶에 대한 의지가 담겨있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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