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별 May 12. 2023

내면을 보는 눈을 잃지 않기를

 대학을 졸업할 때, 내가 가장 좋아하던 동아리 선배 언니로부터 작은 메시지 카드를 받았다. 메시지 카드에는 '사람들의 내면을 보는 눈을 잃지 않기를 바랄게'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언니를 너무 좋아해서(물론 지금도 좋아하지만) 언니와 동기인 선배 언니가 "넌 갹갹이만 좋아하니?"라며 질투를 할 정도였다. 그건 아마도 언니와 나는 비슷한 사람이라는 걸 단숨에 알아차렸기 때문일 것이다. 언니도 사람을 볼 때 외면보다는 내면을 보려고 하고, 내면의 성숙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라는 걸. 


 내가 사람들을 사회가 정한 틀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꽤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무거운 이야기를 내 앞에서 술술 말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사람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내가 아닌 그저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상대방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동시에 나는 누구에게 내 마음을 말하고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고.


 나는 내 일기장에 내 마음을 가장 많이 말한다. 내 마음이 어느 쪽에 가까운지 잘 모를 때가 많아서, 사람들에게 말하면서 정리하는 방식을 자주 취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상대방이 내 이야기 들어주는 것도 에너지 소모가 심하다는 생각이 드니까. 뭔가 정리되지 않은 날 것의 생각을 그다지 말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다. 사람의 마음은 늘 바뀌기 마련이어서.


 사람들의 내면을 보려고 그렇게 애를 썼는데 상대방이 열등감을 갖고 있으면 나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는 걸 안 이후로는 내가 내면을 보는 사람이라는 걸 굳이 강조하려 하지 않는다. 결국 상대방은 본인이 경험으로 아는 만큼 나를 보게 된다는 걸 아니까. 사실 나와 잘 지내면 이득이고 멀어지면 손해일 가능성이 높다. 나와 아주 안 맞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베푸는 일을 좋아하는 성격의 사람이기 때문에 나와 같이 있으면 뭐라도 콩고물이 떨어진다. 마음씨가 착하지 않아도 잔머리라도 잘 굴리는 성격이라면, 나와 친하게 지내는 게 본인에게 이득이라는 걸 알 것이다. 


 상대방이 외적인 것들을 (출신 대학, 보유 차량, 회사 규모, 연봉, 직업 등) 많이 보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내가 먼저 거리를 두려고 한다. 가끔 그런 것을 나에게 자랑하며 나를 내리 깎는 발언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럴 때 쓸 수 있는 몇 가지 대화의 카드를 가지고 있다. 그 사람의 세상에서는 외적인 것들이 사람을 보는 판단 기준인 것이다. 나의 세상에서는 외적인 것들과 내적인 것들이 다채롭게 섞여있지만. 그렇게 살면 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지라 그렇게 살면 인생이 지루하고 재미가 없을 것 같다. 내면의 풍요가 어느 정도 갖춰진 다음에 외적인 것들 중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취하고 싶다. 


 내가 베푸는 성격이라는 걸 알고 맡겨 놓았다는 듯이 내놓으라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결단코 내주지 않는다. 나는 인정받고 싶어서 베푸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준다. 나에게 일방적으로 의지하는 관계는 건강한 관계가 아니다. 나를 잃어가면서 뭔가를 내주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는 천사도 아니고 착한 사람도 아니다. 가끔 베푸는 행위만 보고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다고 한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은 아니다. 


 사람들의 내면을 볼 줄 아는 능력과 베푸는 일에 보람을 느끼는 성격, 궁극적으로는 사람들의 자립을 바라는 마음 때문에 심리상담을 업으로 삼고 싶은 마음이 한편에 여전히 남아있다. 과연 내가 그걸 업으로 삼아도 되는 것인가,라는 고민을 내려놓지 못해서 아직은 다른 일을 하고 있다. 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나도 아직 모르는 일이 많은데, 내가 누군가의 힘듦을 나누고 자립할 수 있게 도와줄 자격이 있을까 싶은. 그래도 언젠가는 하게 될 것이다. 이 정도의 마음의 무게를 내가 갖고 있다면. 


 외적인 가치가 훨씬 중요한 사람들이 나를 보며 미련하다고 할까 혹은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삶을 산다고 말할까 조금 신경이 쓰일 때도 있다. 보통 외적인 것들을 갖춘 사람들이 권력도 가지고 있으니까. 그들의 눈치를 보는 건 오직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는데 걸림돌이 될까 그뿐이다. 그들을 존경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두려움이 아니다. 존경하는 마음은 상대방이 나를 존중해 준다는 느낌을 받을 때나 드는 마음이어서. 


 인생은 오직 한 번 뿐이라, 어떻게 살고 무슨 일을 하든 내가 행복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땐, 외적인 가치를 중요시하는 미디어와 사회적 영향을 받아서 그런 사람만이 행복한 삶을 사는 건 줄 알았다. 대기업에서 연봉 많이 받는 사무직의 삶과 남들이 알아주는 직업을 가진 사람만 행복한 삶인 줄 안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삶을 산다고 반드시 행복한 것도 아니고, 또 반대로 내적인 가치를 추구하며 조금 어려운 형편에 사는 사람이 반드시 행복한 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인지 알고,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 건지를 알아차리고 그에 맞춰서 삶을 꾸리는 것이었다. 나에게 맞는 옷을 입어야 행복하다는 걸 깨달은 뒤로는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지 않게 되었다. 선택에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걸 아니까. 그러니 나의 삶에 대해서도 함부로 말하지 않았으면 하는. 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삶을 존중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목표는 아니어서 그 사람의 틀에 맞춰서 내 인생에 대해서 말을 하면 어쩐지 와닿지가 않는다. 


 어린 시절의 눈으로 보았을 때는 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아이돌이 제일 행복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인디 뮤지션이 훨씬 더 행복한 사람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하는 조언을 말 그대로 조언으로만 받아들인다. 상대방의 가치관과 관점에서 해주는 이야기니까. 나의 가치관은 다를 수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말하는 걸 그대로 따르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을 내리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게 훨씬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내가 이런 생각을 혼자서 너무 많이 해봤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꽤나 쉽게 꺼내는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얼마든지, 이야기는 들어줄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어떻게 나이들 것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