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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별 Sep 11. 2023

난 말이야, 나 때문에 힘들어

누가 내 말을 이해해 줄 수 있을까

 사실 나는 나 때문에 힘들다.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는가? 생각해 보면 나는 나 때문에 힘이 든다. 나를 다스리는 일, 그러니까 나를 데리고 사는 일이 너무 어려워서 실은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나를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이다. 나 같은 마음이 드는 사람이 있거든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이라는 책을 추천한다. 혹은 ≪유별난 게 아니라 예민하고 섬세한 겁니다≫. 이 책들을 읽고 거의 오열하다 시피했고, 나를 알게 되어서 기뻤다. 이 책들을 알게 된 것은 놀랍게도 나의 가장 오래된 친구가 나와 똑같은 ENFJ인데 ≪센서티브≫라는 책을 나에게 빌려준 적이 있어서다. 센서티브라는 책에서 HSP(자극에 예민한 사람)라는 말을 처음 접하고 나 또한 그런 유형의 사람임을 알게 됐기 때문에 찾아서 읽을 수 있었다. 빌려달라고 말하지 않았는데 친구가 빌려주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친구를 내 인생의 귀인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라는 사람은 참으로 자극에 예민하다. 지하철 끼익 하는 소리, 서울 시내 공사로 인한 드릴 소리, 붐비는 출퇴근 지하철과 버스, 각종 냄새로 인한 자극, 누군가 언성을 높이며 내는 소리, 너무 높은 온도, 너무 높은 습도 같은 것들, 자동차가 클락션 울리고 지나가는 소리, 늦은 밤 자동차가 갑자기 엄청나게 발광하며 라이트를 빛내는 것들 등.


 그래서 나는 경쟁이 매우 치열한 대한민국, 서울에서 살아가는 것이 무척이나 힘이 든다. 매일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 도전이다. '이불 밖은 위험해!' 같은 것이다. 밖으로 나가면 외부 자극이 너무 많아서 지친다. 보통은 이런 자극에 취약한 체질이면 성격이 내향적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나는 내면은 매우 복잡하지만 동시에 또 외향적인 매우 특이하고 흔치는 않은 사람이다. 


 집에서 누워 있는 것도 물론 좋지만, 새로운 정보를 찾아서 탐구하는 일 또한 좋아한다. 밖에서 혼자 마트라도 구경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타입이다. 외부 자극 때문에 지치긴 하는데 아예 자극이 없으면 괴롭다. 그래서 나는 나 때문에 힘들다. 어떻게 보면 모순일 수도 있는 이 차이를 줄여주기 위해서 정말 많은 기술들을 가지고 있다. 밖에 나갈 때 보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건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너무 습도가 높으면 낮춰야 하니까 미니 선풍기, 너무 에어컨이 추우면 안 되니까 카디건, 갑자기 뭔가 흘릴 수도 있으니 휴지, 누가 소리 지르거나 크게 말하거나 심지어는 화낼 수도 있으니까 이어폰(헤드폰이면 더 좋음), 사람들이 많은 지하철과 버스는 어떻게 해서든 그 시간을 피한다. 아침에 아주 일찍 일어나서 가거나 늦게 가거나 어쨌든 붐비는 시간대는 무조건 피한다. 붐비는 시간대에 타야 하면 카페라도 가서 사람이 빠지길 기다렸다가 가야 한다. 안 그러면 너무 힘들어서 내가 어떻게 될지 나조차도 알 수 없다. 


 재미있는 사실은 보통 나처럼 자극에 예민하면 불면증이 따라온다. 자다가 자꾸 깨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잠은 잘 자는 편이다. 간혹 불면증이 나타나는데 대부분은 뇌가 해야 할 일이 많아서 힘들거나 자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신호다. 자극이 많아서 일어나는 일로 뇌가 할 일을 줄여주고 자극을 줄여주면 잘 잔다. 카페인을 끊거나 물소리 ASMR을 듣거나 오늘 무엇을 이미 다 했고 내일은 뭐를 할 거니까 오늘 할 일은 다 했다고 나에게 알려주는 일도 도움이 된다. 목표 달성을 못했더라도 오늘 너의 뇌 에너지는 다 썼으니까 얼른 자라고 말해주기도 한다. 꽤 잠을 잘 자서 자극에 예민한 걸 장점으로 발휘할 수도 있는데, 잠을 잘 못 자면 예민함을 극도로 혐오하는 자기혐오로 빠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나와 비슷하게 예민한 사람을 보면 도와주고 싶어 하는 편임인 동시에 공감받기 어렵다는 마음을 안고 있다. 나는 설명이 참 어려운 정말로 신기한 유형의 인간이다. 하지만 나처럼 잠을 잘은 자기는 하지만 감각이 매우 예민한 사람을 딱 한 명 알고 있기 때문에 분명히 모집단을 한국을 포함해 세계로 넓히면 더 있을 것이다. (웃음)


 나는 자극에 대한 역치는 낮은데, 새로운 것을 탐구하는 일을 무지 좋아하는 모순 때문에 늘 괴로웠다. 이 모순을 극복하고 나를 설명하기 위해 혹은 나를 알고 다스리기 위해서 참 많은 책을 읽었다. 다행인 건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 나는 신기하게도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되었고 그 사람들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 그 사람들이 나에게 딱히 어떤 말을 해주지 않아도 존재 자체 만으로도, 그냥 그런 사람이 있다는 말 자체가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MBTI 유행이 시작되고 비슷한 부류의 사람 모두 가운데 글자가 NF였으므로 MBTI는 과학이라는 유사과학의 맹신론자가 되었다가 최근에는 좀 더 객관적인 TCI 검사와 MMPI-2 검사를 추천하고 있다. 


 나는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 기본적인 성향으로 탑재가 되어 있는 사람이자 감사합니다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는 이유는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하다. 문제는 자극에 예민한 성향을 가지고 있으면서 "감사합니다" 페르소나를 유지하는 일이 결코 쉽지가 않다는 점. 그래서 나에게는 나의 욕구와 타인의 욕구를 중재하는 일이 늘 어렵고 숙제와도 같다. 실은 그다지 감사하지 않아도 말을 예쁘게 하지 않으면 먼 훗날 자책하고 후회하기에 예쁘게 말할 때도 있다. 말을 예쁘게 하는 이유는 기왕 말하는 것 예쁘게 말해서 나쁠 것이 없고 (돈이나 비용이 들지 않음), 상대방도 나도 기분 좋으니까.


 때로는 '그냥 그때 별로였다고, 아니라고 말을 제대로 할걸!'이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내가 화를 잘 내지 않는 이유는 바로 누군가가 화내는 행위 자체에서 상대가 받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목소리 크게 언성 높이는 일 자체가 나에게 주는 스트레스가 엄청나다는 걸 알기에, 타인에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화가 났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건강한 방법을 나름 생각해 보고 실천하는 중이다. 보통 나는 그것이 눈물 혹은 엄청나게 긴 글로 발현된다. 화가 나면 눈물부터 나는 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럴 때 사람들 없는 곳에 가서 실컷 울게 나를 달래주고 뭐 때문에 화났는지 물어보고 답하면 내 안에 어떤 상처나 트라우마를 마주할 수 있고 목소리 내어 말하면 다음부터 비슷한 일로 눈물을 흘리는 횟수가 줄어든다. 그러니까 눈물이 날 땐 참지 않고 잠시 울어도 되는 곳에 가서 울기를 바란다. 울어도 괜찮다. 사회에서 눈물을 흘리면 약한 사람인 것처럼, 약점을 잡아도 되는 것처럼 잘못 가르쳤다고 생각한다. 눈물은 몸의 반응이다. 


 나는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는 말, 부담을 주는 말 하기를 무척 어려워한다. 왜냐면 내가 그렇게 말을 들으면 힘들어하는 사람이라서 상대방에게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했다면 참다가 폭발한 것이어서 나중에 자책을 하게 된다. 분명히 사과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힘들어도 어떻게든 참기 때문에 정작 내가 힘들 때 '나 힘들어'라고 말을 잘 못할 때가 있다. 내가 혹여 힘들다고 말하면 오래 생각하고 참다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알아차려주면 참으로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안 그래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자극에 대한 역치가 낮기 때문에 같은 강도로 말해도 더 큰 스트레스로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타인에게 피해를 덜 주고 싶어서 1인 기업으로 일하는 것도 있다. 내가 일반적인 사람과 다르니까 나와 함께 일한다는 이유로 누군가 피해를 보는 일이 싫다고나 할까. 어떻게 보면 일하는 환경을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어야 자극을 줄일 수 있고, 주변 환경에 대한 스트레스를 덜 받고, 행복한 마음으로 좋아하는 일을 할 수가 있다. 그래서 1인 기업으로 일하는 것이다. 대단한 비전이 있다기보다는 그저 나를 위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뭔가를 주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만 같은 독특한 성향도 함께 가지고 있다. 그걸 무어라 표현하면 좋을지 아직 못 찾았다. 누군가는 Giver라고 부르기도 하던데 그렇게까지 또 좋은 사람으로 몰아가는 건 싫다. 솔직히 말해서 주는 건 내가 좋아서 주는 것으로, 타인이 아닌 나를 위한 행위다. 다만 나를 위한 행위인데 타인에게도 도움이 되니까 좋아하는 형태인 것은 맞다. 내가 앞서 말을 했듯이, 주지를 못하면 큰일이 날 것만 같은 타고난 기질이다. 뭔가를 주어야 마음이 편하며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타고난 것, 그러니까 정말 Born to be인 건데 나를 특별한 사람 취급하지 않고 그냥 그런 사람으로 생각하면 좋겠다. 나도 주기 싫을 때가 있고 항상 주는 것도 아니다. 맡겨놓은 것처럼 취급하거나 당연히 내가 그래야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우에는 안 주게 된다. 그렇지만 계산하고 주는 것이 아닌 것은 맞다. 내가 좋아서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준다. 


 나는 동족을 만나면 알아보는 것이 전부인데, 여하튼 그런 나의 특성을 활용해서 일을 한다. 그러니까 1인 기업으로 일을 하지만, 타인을 위한 일을 하며, 타인과 어떠한 형태로는 협업한다. 결국 혼자 사는 세상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는 말이다. 


 과거의 나는 싫다는 말을 하고 싶어도 잘 못해서 거절하는 일이 늘 어려웠다. 하지만 거절하는 일은 나를 지키기 위한 일이기도 하고, 타인을 지키기 위한 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거절하는 연습을 잘 배우려고 했다. 누군가 "괜찮아?" 물었을 때 안 괜찮으면 안 괜찮다고 해도 된다. 예민하다고 뭐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나만큼은 '아, 너는 다르구나!'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맨 위에 언급한 ≪센서티브≫라는 책을 빌려준 친구가 그렇게 해준 거나 진배없거든. 그런데 친구가 그러더라. 내가 그런 말 했는지 나도 잊었는데 "너는 나한테 소중한 친구야"라고 말을 해준 것이 친구에게 큰 힘이 됐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말을 할 때는 예쁘게 하자고, 그렇게 나는 말을 하게 된다. 


 이 친구를 포함한 나 자신과 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아끼고 싶은 사람들을 지키려면 거절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걸 알고 열심히 내 식대로 거절하고 있다. 나의 거절은 보통 구차할 정도로 긴 글이다. 내 입장에서는 매우 용기를 내는 행동인데 거절을 잘해야, 선을 잘 그어야 거기까지가 자기 방어라고 생각한다. 


  이런 형태로 살아가는 나를 조절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건 뇌과학과 유전학적 지식이다. 다만 나는 왜 이런 성격일까? 타고난 것일까? 기질일까? 또 그런 부분에 대한 탐구는 심리학으로 채울 수 있다. 궁금한 걸 참지 못해서 각종 심리 검사와 뇌과학 책을 섭렵했던 시기가 있었다. MBTI 검사, TCI 검사, MMPI-2 검사를 모두 받아보았고 나와 똑같은 ENFJ 친구가 뱅크샐러드 유전자 검사를 적극 추천하기에 그도 받아보았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이라는 책을 읽고 미생물 검사도 받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심리학 책 중에서는 ≪홀로서기 심리학≫같은 것이 도움이 됐다. 


 그리고 이런 나를 데리고, 어떻게 살 것인가? 는 철학 책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책만 도움을 준 것은 아니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를 도와준 모든 사람이 가르쳐준 것들을 바탕으로 산다. 혼자 사는 사람은 없다. 이렇게 나처럼 특이한 사람까지도. 


이런 사람은 어떻게 먹고 사냐고? (웃음) 1인 기업을 차려서 개성을 살려서 잘 살고 있다. 이런 나도 먹고살 수 있으니까 그래도 참 좋은 시대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있는데, 타인에게 피해는 주지 않고 책임과 책무는 다 하니까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니까. 이 모든 일에 감사하다. 물론 나에게 감사하고 나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에게도 사랑을 줄 수 있거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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