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 다녀왔다.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프로그램을 보고, 보고싶은 작품들을 골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3편의 영화를 보았다.
무더위 속에 극장을 오가며 영화와 영화제를 만끽하면서 보낸 하루였다.
영화제에는 목에 뱃지를 걸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난 2010년, 처음 부산영화제 뱃지를 받아 걸고 영화제에 간 뒤로
매년 영화제마다 당연하게 뱃지를 걸고 다녔다.
뱃지를 받으면 영화제마다 주는 가방과 굿즈를 받고 티켓도 무료로 예매할 수 있다.
몇년 후엔 이 특권에 감사한 것도 잊고 살았던 것 같다.
뱃지를 신청해놓고 못 가는 경우도 생겼고, 영화는 한 편도 못 보고 미팅을 하거나 술이나 먹고 돌아오곤 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서, 영화계 어딘가에 속한 사람이 되면서 영화제는 두근거림보다 '출장'으로 바뀌었고
영화도 가장 좋아하는 존재에서 '의무' 같은 게 되어 버린 것 같다.
지난 학기 수업 시간, 왜 영화를 직업으로 선택하게 되었냐는 교수님의 질문에
습관처럼 저장된 인생의 장면들을 추려 답했지만 이후 며칠간 서글픔이 덮쳐왔다.
영화를 직업으로 선택한 뒤에 영화를 이전만큼 사랑하게 되지 못하게 되어버린, 이상하게 뒤틀려버린 감정을 마주하게 되었다.
분명 영화를 소명처럼 여기고, 평생을 이어갈 업으로 여겼던 순간이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의무감에 영화를 보고, 복잡하고 긴 영화는 피하게 되고, 어떤 때는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어서 영화를 보지 않고, 영화를 생각하지 않는 게 날 위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부천 영화제에서 본 마지막 영화였던 외계인 아티스트는 참 이상한 영화였다.
사실 이 영화의 내용이 무엇이었다고 설명하기도 어렵다.
추천할 만한 영화라 말하지도 못하겠다.
이해하며 보는 영화라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좇아가느라 바쁘다가
나중에 그게 뭐였지? 그게 대체 뭐였지? 생각하게 되는 영화였다.
난 끝나고 나서 자꾸 생각하게 하는 영화를 퍽 좋아한다.
사실 영화의 내용보다는 이어진 GV에서 들었던 이 영화를 만든 과정이 더 흥미로웠다.
이상하고, 괴상한 생각을 어떻게든 영화로 만들어낸 스물세 살 감독과 스태프들에게서 어떤 감동을 받았다고 해야 하나.
4천만 원 정도의 예산으로 90분 분량의 영화를 만들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종교학을 전공한다는 청년 감독은 자신의 상상과 생각을 어떻게든 영화로 만들어냈고
화면 뒤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 청년의 상상을 이해하고 함께 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새삼 영화란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수공예품에 가깝고, 난 그런 영화의 본질을 좋아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되돌아왔다.
영화란 손쉽게 예산으로, 관객 수로, 매출액으로 환산되고 평면 위에 흘러가는 그림들의 모음들 같지만
그 장면을 만드는 과정이 언제나 영화의 본질이었다.
누군가의 아이디어가 영상이라는 것으로 표현되는 과정,
그것이 이야기가 되고, 관객들과 만나는 과정까지의 모든 것.
뱃지 없이 아무것도 아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1’ 이 되어영화를 만나게 되자 10여 년 전의 그 열정과 애정이 불쑥 - 우연히 만난 첫사랑처럼- 나타났다.
좋아하는 것을 일로 한다고 하면 많은 이들이 부럽다고 말한다.
헌데 솔직히 말하면, 이 선택을 누군가에게 추천하지는 못하겠다.
좋아하는 것을 잃어버리게, 잊게 되어버리기도 하니까.
내가 좋아했던 것의 여러 가지 속성에서 내가 진짜로, 가장 좋아했던 점이 무엇인지, 계속 질문하고 발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꽤 오랜 시간 잊고 있었다.
내가 왜 영화를 좋아했는지, 영화를 업으로 선택한 나는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것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질문하지 않는 게 편해서 외면했고, 직장인으로, 영화가 어딘가 찍힌 명함을 가진 사람으로 지냈다.
이 괴상한 날 것의 영화 덕분에 내 선택을 다시 꺼내볼 수 있었다.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영화를 만드는 게 좋아서, 영화로 하고 싶은 말이 잔뜩 있어서 영화를 만들지 않고는 못 견디겠다는 느낌으로 만들어진, 우울한 표정으로 정성을 다해 만든 괴팍한 영화 한 편이 갑작스러운 깨달음으로 남았다.
내가 사랑했던 영화의 모든 것이 이 영화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