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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츤츤 Sep 18. 2022

못다 한 이야기

나주에서의 현장실습을 마치며

현장농가 실습을 하며 느낀 점이 참 많다.

오늘은 조금 더 솔직한 소회를 적어보려 한다.




어떤 농부가 될 것인가


내가 실습을 했던 동화농원은 정말 우직하게 열심히 노력하는 농부님들이었다. 추석 시즌에만 성장촉진제(지베렐린)를 사용한 배를 팔고, 나머지 시간에는 성장촉진제를 바르지 않은 자연스럽게 기른 배를 팔고 있었다. 그리고 최대한 나무에서 익혀서 따기 때문에 제품 자체의 맛이 아주 좋다. 대신 농부가 해야 하는 노동시간은 계속 늘어난다. 맛이 든 배만을 골라서 따야 하고, 맛이 들 때까지 여러 번에 걸쳐 확인하고 수확을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직접 판로를 개척해서 주문을 받고 상품을 택배로 보낸다. 그만큼 수익을 더 가져간다.


반면, 어떤 농부는 단 하루 만에 배를 모조리 수확한다고 한다. 모든 배에 성장촉진제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 한 번에 수확하면서도 잘 익게 만들기 위해 추가로 호르몬제를 사용한다고 한다. 농약도 많이 쓴다고 들었다. 하루 만에 다 수확을 하기 위해 일꾼들의 노동력을 쥐어짜면서 일을 시키고 배를 따는 것도 다소 거칠게 하는 편이라고 한다. 대신 대량의 물량을 공판장에 납품하고 일을 마무리한다. 여유시간을 얻는 것이다.


올바른 방법이 무엇인지 가치 혼란이 오기도 하지만, 나는 다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되도록 자연스러운 방법을 사용해야겠지만 그 모든 것을 하는 이유는 나도 행복하기 위함이다. 끊임없는 노력과 연구, 실험이 필요하겠지만 나는 나에게 맞는, 더 나은 방법을 찾아보고 싶다.




일일일


농사는 정말 일이 많다. 많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일이라는 것의 특성상 정기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있고 비정기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있고 특별히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일도 있다. 그런데 이것들이 기본적으로 양이 아주 많고 휘몰아친다. 매일매일. 봄에는 꽃에 수분해야지, 수분이 끝나면 꽃눈 전정을 해서 솎아줘야지, 봉지 씌워야지, 가지가 휘거나 떨어진 게 있으면 묶어줘야지, 병이나 충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고 생겼으면 농약 살포해야지, 비료도 줘야 한다. 겨울에도 나뭇가지들을 관리해 줘야 한다고 한다. 1년 내내 할 일이 있는데 휴식은 내가 알아서 찾아야 한다. 농한기가 있는 농작물도 있겠지만 그것도 수익이 잘나서 쉴 수 있겠구나 싶을 때 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직장에서 일을 해도 휴가는 내가 알아서 찾아먹어야 하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기상상황에 따라(땅덩어리가 좁아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정말 실시간 중계가 따로 없다.) 쳐내야 하는 일들이 많다. 이번 주에 어떤 작업을 하려고 했는데 비가 온다? 그러면 작업이 밀리게 된다. 그런데 갑자기 또 비가 안 온다? 그러면 하러 가야 한다. 물론, 올해 더욱 그렇게 바빴던 이유는 농부님이 몸이 좋지 못해 작년부터 일이 밀려서 그렇다고 하신 부분도 있다고 한다.


일의 절대적인 양이 많다는 것은 몸으로 아주 잘 느꼈다. 하지만 못 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만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힘든 부분이 많았다. 변수가 많기는 하지만 농부는 내가 재배하는 작물에 대한 환경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측정이 가능하고 예상이 가능하고 쪼갤 수 있는 일들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막연히 불안해하고 과하게 일을 하는 것보다 계산을 하고 정리를 해서 일을 나눠서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일손부족과 인건비 증가


농촌 일손의 대부분은 노인층이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고령층의 사망이 가속화되면서 그나마 있던 일할 노인의 수도 줄어들었다. 거기에 노인 공공 근로 일자리로 인해 힘든 일을 안 하는 노인층도 증가했다. 노인층이 사라진 인력시장을 베트남 분들이 채우고 있지만 언어소통이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앱을 통한 번역도 잘 안 되는 경우가 있었다. 오죽하면 베트남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코로나 유행이 심했던 시절에는 베트남에 돌아갔다가 한국으로 오지 못해 일꾼들이 부족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인력이 귀하다 보니 좋은 일꾼을 구하는 경쟁이 치열해졌고 임금도 천정부지로 솟았다. 베트남 사람들도 대우를 제대로 해주지 않는 집에서는 일을 하러 갔다가 일을 안 하겠다고 바로 도망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다 이유가 있었을 것이지만 언어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것이 정말 큰 문제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오히려 일꾼들의 콧대가 높은 아이러니한 상황도 생긴다. 친분이 있다고, 일을 좀 더 안다고 아는 척을 하고 주인보다 주인인 척을 하고 일을 지시하는 일꾼도 있다. 일이 많지 않으니 오늘은 오지 말라고 했는데도 밥을 해놨으니 가져와서 품삯을 받아 가기도 했다. 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그만 쓰면 그만이기는 하지만 동네 특성상 척을 지고 살기 뭐해서 그냥 넘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일꾼들은 직원이 아니다. 필요할 때 불러서 쓰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잘 아는 사람들도 있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 각자 일하는 능력치도 다르고 성격도 제각각이다. 책임감은 기대할 수 없다. 그저 잘 일해주면 감사한 거고 일을 못하면 속이 타는 것이다. 바로잡지 못한 관리자의 탓도 어느 정도 있을 수 있겠지만 구조적으로 개선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을 시작할 때 제대로 가이드를 주고, 규칙을 주고, 업장에 규칙을 명시하고 규정대로 일을 진행한다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비록 일당제이고 팀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하루 종일 함께 일을 하려면 서로 도와야 하는 것은 인지상정, 그렇다면 좋든 싫든 팀이 되어서 일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서로에게 최선이 될 수 있으면 좋은 거 아닐까.




왼쪽이 정리를 하기 위해 짐을 꺼냈을 때 고 오른쪽은 할 수 있는 한 정리를 한 상태다. 그래도 더 할 것들이 많았다.


관리와 효율성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처음 동화농원 판매장에 갔을 때 느낀 것은 뭔가 정리가 되어있지 않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자주 사용하지 않는 도구는 어디에 있는지 한참을 찾아야 했다. 언제 사용할지 모르는 것들은 정리가 되지 않은 채 구석에 모여있는 식이었다. 일이 바쁘다 보니 정리가 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정리가 되지 않으니 일이 더 바빠질 수밖에 없는 것 같기도 했다.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밭이 바로 옆에 붙어있는 게 아니고 세 곳이나 있는데 판매장으로부터 다 떨어진 곳에 있다 보니(특히 1곳은 꽤 멀리 있다.) 이동시간도 그렇고 운반 차나 기구들을 이동하는 시간도 많이 발생하다 보니 효율성이 떨어졌다. 이 부분은 농부님도 안타까운 부분이고 추후 개선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계신 부분이었지만 빠른 시일 내에 개선되기는 어려운 부분이었다. 자연스럽게 일이 늘어나고 비용도 늘어나고 관리가 제대로 되지 못하는 부분이 생긴 것으로 보였다.


문제는 해결해야 하는 때가 분명 존재한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지고 만다.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자체적인 규칙과 시스템을 정립하고, 효율적으로 바꿀 수 있는 구조가 어떤 게 있는지 고민하지 않고 기존 방식이 편하다고 유지한다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피로도는 오롯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반복, 가중된다.





어느 곳에나 문제는 다양하다. 그렇지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은 드물다. 왜냐하면 문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고 해결하는 데에는 그만큼 많은 힘과 신경을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아무도 해결하지 않으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면 더 큰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고 그 문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다소 피곤하긴 하지만 나는 문제를 해결해나가려 한다. 농부가 된다면, 농촌에서 일을 하게 된다면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개선해나가보려 한다. 내가 편하고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도 편하기 위해.


p.s 그나저나 나주 땅값이 너무 비싸다. 평당 백만 원이 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전국적으로도 농지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한다. 부동산 투자가 시원찮으니 땅 투기로 이어지는 건 아닌지 싶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여파로 원자재 가격도 다 올랐다. 귀농할 수 있을까 현실적인 고민이 많아지는 때다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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