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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빛의 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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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 Oct 20. 2023

기억을 소모하는 방법





아니어도 잡아둔 것들이

손아귀에서 팔딱거린다

죽은 생선의 뿌연 눈깔을 하고서

물기 없이 해진 비늘을 달고서

피부에 베어버린 비린내를 품고서

그렇게 소용없는 손목에 힘을 단단히 주어가며

움직임을 죽여내고 있다




그 움직임을 멈추는 일은

아직 우러나지 않아 싱거운 차를 들이켜는 것처럼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

시간을 흡수해 쌉쌀해진 차의 뒷맛을 들이켜는 것이

내가 기억을 소모해 내는 방식과

얼추 비슷하다 할 수 있겠다





더 이상의 움직임이 없어질 때 즈음이면

나는 혼자 중얼거린다

아쉬운 것들이 더 이상은 아쉽지가 않다고

그러니 나는 얼마간의 자유를 얻었다고





베여버린 비린내가 아직도 가시지 않았지

손아귀는 많이 느슨해져

아무렇게나 휘날리고 있다

이제 찻잔 바닥에 남겨진 차 찌꺼기를 보듯

비늘 조각들을 바라본다

충분히 쓸모없어진 아우성이

에코가 되어 근처를 맴돈다




그러니 나는 아쉽지가 않은 거다

오히려 소모된 것들을 훌훌 털어 버릴 수 있는 거다

그렇게 오래된 것들과 공존할 수 있는 거다

움직임이 서둘러 잦아든 그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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