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자작나무가 고르게 흩어진 숲 속에서
연고 없는 어떤 나무를 지표 삼고
포슬하고 축축한 이끼 위에 앉아
이고 있던 무게를 금방 쏟아 낸다
등을 맞댄 곳은 거치른 나무의 표면.
몸을 받치는 것은 그의 고귀한 줄기.
지난, 그리고 지날 날들을
등허리에 얹어 짊어지고 왔기에
여기 앉아 하늘을 바라보는 행위가
마침내 온전해진다
오, 하늘이여!
내심 반가운 마음이 드는 것을
괜스레 수줍어하며
맞잡은 두 손을 풀어헤치고
무한의 공간을 끌어 안아
배가 가득 찰 때까지 들이킨다
털썩 주저앉아
의지 없는 생명 중 하나가 되는 것,
또 다른 자작나무가, 이끼가, 어떤 나무가 되기에
이곳이 적당하다는 것은
흰색의 적막으로 쉽게 알 수 있다
미끄러지듯 몸을 눕히니
수천 개의 나뭇잎들이 움직이며
한낮의 하늘을
별처럼 반짝이게 한다
한낮의 별들이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이끼가 낀 미소가 입가를 축축이 적신다
흰 자작나무들이 조곤히 자장가를 부른다
나는 새하얀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