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은비 Mar 21. 2021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


나는 원래 기록을 남기는 것에 서툰 사람이었다. 무언가를 기록으로 남겨서 나중에도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다는 것이 한없이 부끄러웠고, 나 스스로 보는 것조차도 너무 부끄러워서 제대로 못 보는 정도였다. 같은 이유로 사진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단체 사진은 그냥 안 찍을 때도 많고, 소셜 미디어도 자주 남기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런 내가 이름 까고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는 부끄러움보다 큰 두려움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 두려움은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경험이 없던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생활이 비교적 단편적이고 경험이 깊지 않았을 때는 지나간 경험일 잘 잊지 않았었다. (어쩌면 잊지 않는다고 착각했던 것일 수도 있지만...) 하지만 내 생활이나 일이 전보다 복잡해지면서, 기록되지 않는 일은 거의 없는 일과 비슷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자잘한 일들을 실제로 잘 잊어버리는 편이기도 했지만, 이 말이 꼭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일이 있었던 사실 자체는 기억하지만, 누군가 관련한 내용을 질문했을 때 정리된 답변을 하지 못하면 그 일은 없었던 일이나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예를 들면 어떤 경험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답변을 제대로 못하면 두 번째 기회는 오지 않고, 그러면 그 일의 가치가 확 떨어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경험을 경험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경험으로부터의 생각을 제대로 정리해서 간직하지 않으면 그것을 경험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으로 블로그를 시작했다.


블로그 모임을 시작한 이유


나는 양에서 질이 나온다는 말을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든 자주 무언가를 써내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그 마음이라는 것은 너무도 약해서 자주 꺾여버리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강제로 글을 쓰고 아니면 벌금을 내야 하는 블로그 모임이 있다면 어떨까!! 

딜리셔스의 아름다운 사내 모임 중에는 블로그 모임이 있었고 글을 쓰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하는 벌금제를 운영하고 있었다. 실제로 글을 쓰는 주기가 그렇게 빠듯한 것도 아니어서, 이걸 설마 못쓰겠어? 하며 시작했다. 그리고 벌금제가 글을 쓰게 만드는 효과는 매우 매우 강력했다. 그냥 벌금을 낸다는 사실 자체가 싫어서 자다가도 일어나서 글을 쓸 때도 있었다. 내가 의지가 없을 때는 제도에 의지하는 것도 큰 효과가 있다는 걸 배웠다. 그렇게 몇 분기를 유지하면서 블로그 글의 양이 좀 풍성해지는 효과를 얻었다.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와 실행 방식의 괴리


블로그를 하면서 세운 목표는 1) 책이나 아티클을 통해 피킹 한 지식을 요약하는 것과 2) 내가 일하면서 습득한 것을 정리하여 기록하는 것. 두 가지를 적절히 섞는 것을 목표로 삼았었다. 그러나 점점 두 가지를 다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피킹 한 지식을 요약하는 것에서는 이런 문제가 있었다. 책을 읽는 중에도 이 책을 블로그에 옮길 수 있을까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번 분기에도 책을 읽었지만 전체적인 블로그와 톤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어 기록하지 않은 책도 있는데, 그런 책은 책 내용이 재미있음에도 중도 포기하고 다른 책을 읽고 싶어 져 버리는 나를 보면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물론 포기하진 않았다. 동시에 읽을 뿐.... 지금 책을 동시에 세 권을 읽고 있다. 재밌어 보여서 고른 책 , 그 책이 블로그와 적합하지 않아서 고른 다른 책, 또 그 책이 블로그와 적합하지 않아서 고른 다른 책... 이건 문제가 좀 있는 것 같았다.


또 일하면서 습득한 것을 전달하는 것은 생각보다 자주 글을 쓸 수가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경험해보니 3-4개월 정도의 길고 긴 노력 이후 하나의 글 정도가 겨우 나올 뿐이었다. 물론 좀 더 잘게 쪼개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잘 되지 않았다. 나는 어느 정도의 온전한 경험을 한 뒤에야 그것을 소화해서 하나의 글을 쓸 수 있을 뿐, 그 일의 과정에서는 기록을 남길 수가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보니 좀 더 짧은 주기로 글을 써야 하는 모임의 특성과 내가 쓰려는 글의 특성이 맞지가 않았다.


해결 방법은?


지금 같은 상태라면 내가 블로그를 시작한 의미와 현재의 상황이 너무 달라져버렸다는 문제가 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 괴리를 해결하는 방식은 세 가지일 것이다.


1) 블로그를 글의 작성 방식을 바꾸는 것

2) 블로그의 게시 주기를 바꾸는 것

3) 블로그가 아닌 다른 기록 방법을 찾는 것


셋 중 어떤 걸로 답을 찾지는 못했다. 기록을 위해 글을 남기고 싶다는 계획을 세웠을 뿐인데도, 계속 목표를 위한 과정을 점검하고 수정해야 하다니 모든 것은 점검과 수정의 연속인 듯싶다. 목표가 있다면 점검과 수정은 당연한 일이겠지. 우선은 블로그 모임을 잠시 쉬면서 내 상황을 점검하려고 한다. 굳이 글로 남기는 이유는 기록은 계속하겠다는 목표가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이다. 기록이 즐거움까지는 아니어도 조금 힘들어도 나를 위해 의미 있는 행동이길, 그리고 계속되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UX디자이너가 알아두면 도움되는 행동경제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