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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뱅 Jul 25. 2021

에디터와 꽃 _ 기본부터 차근차근

글쓰는 에디터의 꽃 배우는 이야기

고혹적인 색감의 내추럴 센터피스


지난 2월 4주 과정의 초급반을 듣고, 한 달 정도 쉰 다음 11주 정도의 중급반 과정을 듣는 중이다. 

약 9주 가까이 토요일 하루종일 두 작품을 만들고 수업을 들으면서 꽃에 관련된 글을 써야 겠다는 생각을 안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꽃은 내 적성에 잘 맞고, 무엇보다 재미있고 즐겁다.


글쓰는 에디터, 꽃을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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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 정도까지 중간에 점심시간이 30-40분 있지만 하루종일, 풀로 꽃을 만드는 하루는 생각보다 짧다. 선생님의 짧은 이론 수업 다음, 꽃을 정리하고 그날 만들 작품에 몰두하는 과정이다. '꽃'하면 생각나는 꽃다발부터 꽃바구니, 작은 화기에 플로럴 폼을 고정시켜서 만드는 장식용 센터피스, 식물 가드닝 등 매주 색다른 작품을 만들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다. 더군다나 매주 내가 사용할 꽃이 달라져 오늘은 어떤 꽃을 쓸지 기대가 된다.


친구들에게 꽃 배우는 토요일을 설명하면서 늘 덧붙이는 나의 의견은 "꽃 너무 잘맞아, 글쓰는 거랑 비슷한 거 같아서 내 적성에 딱인것 같아"다. 오늘 수업을 들었던 내추럴 센터피스를 설명하자면 완성을 위해서는 기본부터 탄탄하게 다져놔야 한다. 초록색의 풀, 그린 소재들을 먼저 화기에 꽂아서 꼭지점과 높이, 라인의 길이감을 미리 형성해주고 나중에 꽃을 꽂아도 비어보이지 않도록 작고, 낮게 초록색 소재를 잔뜩 넣어줘야 완성도가 높아보인다. 

그 다음은 가장 핵심이 되는 얼굴이 큰 소재를 넣어준다. 오늘 같은 경우 짙은 자주빛의 다알리아와 옅은 브라운 색을 띄는 카푸치노 장미가 메인. 덩어리 감이 커서 시선을 확 사로 잡기 때문에 균형감 있게 넣어줘야 하는 아주 중요한 과정이다. 이어서 포인트가 되어줄 백일홍, 살랑 거리는 라인이 예쁜 옥스포드 스카비오사, 식용은 아닌 산딸기, 여름 느낌 나는 싱그러운 유니폴라와 잎안개 같은 필러 소재를 넣어주면 완성. 모든 과정을 거친 작품은 기초부터 탄탄히 다져왔기에 어느 하나 빈 곳 없이, 균형감 있는 자태로 뿌듯하게 사진을 찍어달라 기다린다.


하나의 완성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준비 50, 취재 및 과정 40, 글쓰기 10 정도가 적당한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쓰기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것 같지만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기본 지식을 얻기 위한 준비 과정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 지난 달 마감에서 맡았던 외국 여행 기사를 떠올려보자면,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여행이 주제였다. 아르헨티나는 고사하고 남미 대륙에도 가보지 못했던 내가 파타고니아 여행 기사를 써야 한다. 일단 도서관에 가서 남미여행 가이드북을 2권 빌렸다. 파타고니아는 칠레와 아르헨티나 남쪽 지역을 가리키는 곳인데 런던, 파리처럼 도시 관광보다는 자연 대탐험을 떠나는 여행객들이 찾는 곳 같았다. 가이드북에서 어떤 장소를 소개했는지 보면 여행객들이 가는 코스는 대부분 비슷하다. 책을 봐도 그 곳에 다녀온 것처럼 쓰기는 참 어렵다. 이럴땐 유튜브를 보거나 영상을 찾아본다. 마침 JTBC에서 방영한 '트래블러3' 에서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여행을 다녀왔다는 생각이 났고, 찾아봤더니 파타고니아 부분은 약 5-6회 정도 된다. 정주행을 했다. 영상을 보면서 포인트라고 생각되는 점을 필기했고, 글을 쓸 때 써먹었다. 최종화까지 다 본 다음에야 글을 쓰기 시작했다. 방송은 퇴근하고 매일 1편씩 보느라 4-5일이 걸렸는데, 글은 하루 만에 다 썼다.


하나의 완성작을 위해 기본부터 차근차근 쌓아가야 한다는 진리를 눈에 보이는 꽃으로 경험했을 때 이해가 훨씬 빠르다. 귀찮다고 대충 기초 공사를 다지지 않고, 예쁜 다알리아를 빨리 꽂아보고 싶어 넘어갔다가는 허허벌판에 핀 외로운 다알리아를 마주하게 될 수도 있다. 다알리아든, 백일홍이든, 카푸치노 장미든 제일 예쁜 꽃은 이들을 받쳐주는 그린 소재와 필러 소재 같은 주연 혹은 준비 과정이 있기에 더 빛난다.



글이든, 꽃이든 내 손길이 거쳐서 쌓여가는 결과물을 볼 때의 찌릿함은 이것들을 꾸준히 내 손에서 놓지 않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누군가 매번 칭찬하고 인정해주지 않는 나의 노력과 시간의 대가가 고스란히 보이는 이 솔직하고도 냉정한 작업을 오래도록 좋아할 예정이다.


기초부터 차근차근 쌓여서 만들어진 내추럴 센터피스


*내추럴 센터피스

장식용 작품으로 화기에 폼을 고정, 꽃을 꽂아 만든 작품. 높낮이가 많은 자연스러운 스타일에 '내추럴'이라는 말이 붙고, 테이블이나 진열대 등 어느 공간의 중간에 놓는다고 해서 '센터피스'라는 단어가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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