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문이 잘못됐다
정당방위를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을 죽였더라도 그것이 정당방위라면 처벌을 받지 않는다. 이는 무엇에 근거하나. 형법이다. 형법 제21조가 정당방위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다음과 같다.
그런데 정당방위와 좀 다르면서도 처벌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같은 게 있다. 긴급피난이다. 긴급피난은 다음과 같이 형법에 규정되어 있다.
여기서 제2항이 문제다. 제2항을 살펴보자. '위난을 피하지 못할 책임이 있는 자'라는 표현이 있다. 여러분은 어떤가. '위난을 피하지 못할 책임'이 금세 이해되는가. 아마 백이면 백 아리송하다고 느낄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인가 하고 골똘히 생각하게 될 것이다. 도대체 어떤 책임이 있는 자는 제1항과 달리 '처벌한다'는 뜻인가.
①항은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①항의 의미는 무엇인가. 일테면 어떤 맹견이 나를 공격하려고 달려든다. 그것은 나에게 위난이다. 이 위난을 피하기 위해 맹견에게 몽둥이를 휘두르는 내 행위는 긴급피난이므로 처벌하지 않는다.
그런데 만일 맹견에게 몽둥이를 휘두르려는 내 모습을 보고 맹견 주인이 자기 개를 보호하기 위해 나를 밀쳤고 그 결과 내가 맹견에게 물려서 중상을 입었다면 맹견 주인의 행위는 처벌받을까 받지 않을까. 처벌받는다. ②항 때문이다. ②항에 따르면 맹견 주인은 내가 위난을 피하지 못하게 만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위난을 피하지 못할 책임'이 말이 되는가이다. 형법 제22조 제2항 "위난을 피하지 못할 책임이 있는 자에 대하여는 전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가 무슨 뜻인지 금세 이해가 되지 않아 골똘히 생각하게 되는 이유가 있다. 표현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위난을 피하지 못하게 만든 책임이 있는 자에 대하여는 전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또는 "위난을 피하지 못하도록 한 책임이 있는 자에 대하여는 전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이었더라면 무슨 뜻인지 몰라 골똘하게 생각해야 했을까. 아닐 것이다. 법조문의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요컨대 형법 제22조 제2항 "위난을 피하지 못할 책임이 있는 자에 대하여는 전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는 틀린 문장이다. '위난을 피하지 못할 책임'이 잘못됐다. '위난을 피하지 못하게 한 책임', '위난을 피하지 못하게 만든 책임', '위난을 피하지 못하도록 한 책임' 등 여러 바른 표현을 놓아두고 1950년대 우리 법률가들은 아주 고약한 표현을 법조문에 넣었다.
거기까지는 좋다. 6.25 직후 혼란스럽던 시기에 바르지 않은 표현이 법에 들어갔을 수는 있다. 그런데 그 후 70년이 넘는 세월 이런 잘못된 표현을 고치지 않고 그냥 두는 바람에 이 조문을 처음 접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곤란에 빠뜨렸고 지금도 빠뜨리고 있다.
난해한 법조문은 법조인들이 밥 벌어먹고 살기 위해 그렇게 만든 것이라는 세간에서 흔히 하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일부러 그렇게 했겠나. 법을 처음 만들 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잘못된 문장이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조문을 여태껏 바로잡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법조인 아니면 이런 괴상한 표현을 이해하지 못한다.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법조문이 아리송하고 알쏭달쏭하다면 그것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국민 탓이 아니다. 법조문이 잘못된 것이다. 많은 경우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