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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안 Feb 06. 2020

기반 다지기: 경험 정리

월요일부터 스스로 약속을 정했다. 22시까지는 취업준비에 올인할 것.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면 취업의 ㅊ자도 돌아보지 않기. 주말은 나를 위한 시간으로 남겨두기. 하여, 그 시간에 취준 공부를 더 하더라도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되도록.

내가 지치지 않고 감당 가능한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 이 스케줄로 일주일 동안 테스트를 해보기로 했다.


2월 3일 월요일

의욕이 넘쳤다. 다시 기반부터 다져나가자는 생각으로 2월 한 달간은 취업준비의 준비에 매진하기로 했다. 해서 범용 자소서/이력서를 만들고 2월 말에는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뿌릴 계획이었다.


갈 길을 정했다. 콘텐츠 마케팅을 노린다. 나는 글 쓰는 일을 해왔으니 '콘텐츠'를 강점으로 두어야 했다. 하지만 마케팅이라는 단어를 쓰기로 했으니 마케팅을 알아야 했다. 온라인에서 유명한 책을 찾아 대출 신청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책 찾아가라고 알림이 왔다.


예전에 취업특강에서 얻었던 역량 사전 자료를 다운받아서 그 역량에 대응할 수 있을만한 내 경험 키워드를 덧붙였다. 더 나아가면 그 경험의 어떤 에피소드가 역량에 대응되는지도 볼 수 있었겠지만 그것까진 체력이 부족했다.


그리고 자기소개서 스터디도 구했다! 정기적이거나 강제력 있는 모임은 부담스러웠다. 그러던 찰나 그냥 시간 같이 정해서 자기소개서 써주고 서로 봐주자는 모임이 생겨서 신청도 했다. 뭔가 한걸음 나간 기분이다. 뿌듯하다.


22시 전까지 휴식은 산타토익 혹은 독서였다. 속으로 열 시 알람이 울리기만을 기다렸다. 열 시가 지나고 열람실을 가로질러 나오며 나는 해방감을 만끽했다. 시발, 집에 가서 난 존나 놀 거야.


2월 4일 화요일

온몸이 피곤하다. 왜 아직 화요일밖에 되지 않았지? 이날도 여전히 22시까지 올인이라는 목표는 유효했다. 물론 22시까지 전부 집중하지는 못했다. 밥 먹는 동안 쉬었고, 근로장학을 하는 동안엔 내 공부보다 일이 우선일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는 눈감아주기로 한다.

콘텐츠 에디터로 근무하셨던 분과 나누었던 쪽지를 다시 보았다. 그리고 다시 깨닫는다. 나는 콘텐츠 에디터를 1순위로 두고 싶어 한다고. 아무리 마케팅 업무까지 아울러 갈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내 중심은 콘텐츠에 있어야 한다고.


인스타그램을 하나 새로 팠다. 추천받은 계정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계정을 팔로우했다. 새로운 시작 같다.


나한테 모자란 부분은 직무경험이었다. 그래서 일단 어디서든 경험을 쌓고 싶은 마음에 로켓펀치를 들어가 보았다. 스타트업은 상대적으로 내가 더 쉽게 기회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지원은 2월 말 데이터베이스가 생기면 하고 싶다. 적어도 오늘은 사이트에 들어가 봤다는 것으로 의의를 두고 싶었다. 원래 나는 입시생일 때도 입학처 홈페이지에 접속하는 일 자체를 힘들어하던 개복치였다.


내친김에 인성검사도 해봤다. 잘 봐야 할 부담감이 없으니 솔직하게 대답했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대충 사회생활하는 데 지장은 없는 애처럼 보일 수 있겠지.


집에 와서는 하드 정리를 시작했다. 경험 정리를 하기 위해, 그리고 내 과거를 극복하기 위해.


2월 5일 수요일

출근하자마자 퇴근하는 순간까지 계속 전화벨이 울렸다. 비슷한 문의 내용에 같은 대답을 반복하던 순간 이 업무가 사람의 얼굴이 안 보인다뿐 내 사교성을 갉아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급격하게 피로해졌다.


빈 시간이 생기면 어제 대충 외장하드에 긁어모은 지난 자료들을 다시 분류했다. 그리고 내 오랜 숙제였던 학생회장 시절 자료를 긁어모았다. 나는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데 집착하는 성격이다. 자료의 모든 수정과정을 개별 파일로 가지고 있어야 안심할 정도다. 그런데 학생회장 당시의 자료가 내 하드에 없는 거다. 다행히 카페에 올려둔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내가 그럴 리가 없다.


경험 정리를 미뤘던 이유는 이 시기의 자료를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나는 학과 학생회장을 지내면서 가장 빠르게 소진되었다. 그 이력이 없었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의욕적인 사람으로 일찍 구직활동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늘 이 시기를 떠올리기 힘들어한다. 짧은 생을 스쳐 지나간 암흑기였다. 하지만 경험으로 써먹어야 했다. 그러고 싶었다. 내가 마주하고 넘어서야 할 과제이기도 했다.


자료를 다운받고 정리하면서 잊고 있던 기억들도 생각이 나고, 조금은 객관화가 가능해졌다. 내 기억 속 당시의 나는 매사 지쳐 최대한 피하고자 했던 무기력한 대표였는데, 학기 초에는 이런저런 사업도 많이 벌이면서 꽤 괜찮은 정치를 했던 것 같다. 이런 부분을 부각하면 되겠지. 면접관이 내가 일 년 동안 꾸준히 일을 잘했는지를 제일 궁금해하는 사람은 아닐 테다.


작심삼일의 여파일까, 앞선 이틀보다는 좀 더 자주 딴짓을 하고 흘려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래도 마지막 자존심으로 덕질에 시간을 5분 이상 투자하지는 않으려고 했다.


집에 오니까 너무 피곤해서 그냥 침대에 누워있었다. 정말 진이 다 빠지는 기분이었다. 전화와 서류와 싸우고 내 과거와 맞서는 기나긴 시간이었다. 20분만 자자며 알람을 맞추고 잠에 들었다. 낮잠 한 번 제대로 못 자는 사람이 꿈까지 꿔가며 잘 잤다.


자고 일어나선 NCS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문화콘텐츠, 마케팅 직무기술서를 읽고 필요역량을 정리하는 중이다. 무턱대고 경험 정리를 하는 것보다 어필할 수 있을 역량을 먼저 정의한 뒤 그에 맞춰 경험 정리를 하는 게 좋겠지? 조금은 느리고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답을 찾아가는 기분이지만, 이번만큼은 이렇게 해보고 싶었다.

고집 센 에이안.


진짜 피곤하다. 지금도 눈 감으면 꿀잠 잘 수 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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