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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안 Feb 13. 2020

우리의 질문은 불안함의 다른 표현이다

현직자 붙잡고 멍청한 질문만 한 후기

취업준비는 매일이 불안하다. 특히 나는 처음으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서 더 그렇다. 내가 어느 정도의 위치인지 가늠도 안 되니 목표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실무경험도 없으니 내게 직장은 그저 별세계 같다. 그러니 막연한 짐작만 남았다.


그런 상황에서 현직자 선배를 만났다.

본래는 그 기업에 관심이 있는 구직자 A 자아를 극대화한 채 만나려고 했었다. 그러나 선배는 나를 처음 보자마자

"이것저것 다 떼고 편하게 질문하세요!"라고 하셨다.


순식간에 기업 실무면접에 임하는 마음가짐으로 앉아 있던 나는 그저 학교 선배를 앞에 두고 막막한 앞날을 토로하는 어린 스물여섯 쨜이 되어버렸다.

아니, 저는 그냥 제가 일할 만한 사람인가 궁금해서 찾아온 건데요, 이렇게 편한 자리가 될 줄 알았으면(사실 선배님은 편하게 오라고 하셨지만 내가 끝까지 어려워했다) 다른 질문을 미리 준비했겠죠...


아, 그러니까 뭘 물어봐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라는 거구나?


네 정확합니다. 유감스럽게도요. 제가 그렇다고 탱자탱자 놀면서 살아온 건 아닌데요, 지금 상황만 놓고 보자면 그렇네요.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쨌든 도움을 얻은 시간이었고, 다음 기회도 있다.


하지만 더 영민하게 굴지 못해서 후회가 된다. 그 자리에서 내가 떠올렸던, 하지만 결국 하지 못했던 질문들은 유형도 다양했다.


1. 제가 사실은요... 이런 일을 했구... 이런 일들을 했는데... 어디로 방향 잡구 일해야 할지도 모르겠구...

차마 회사 경영진 위치에 계신 분을 붙잡고 취업상담센터에서나 진행할 진로 상담을 할 수는 없었다.


2. 제가 경영 전공도 아니고 학회 경험도 없어서 마케팅은 잘 모르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도 답을 알고 있었다. 책 많이 읽고, 스스로 공부해서 채워나가야 하는 영역임을. 그러니 저 질문은 정말 의미가 없는 셈이다. "경영 전공이 아니어도 괜찮아요!"라는 말을 들은들 뭐가 달라지겠나. 내가 공부해서 채워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3. 지금이라도 다른 활동을 해서 스펙을 더 쌓아야 할까요?

내가 떠올려놓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YES라고 대답 들으면 어쩔 거야, 졸업 미루고 대외활동 갑자기 찾을 것도 아니고. 지금은 있는 자산이나마 긁어모아서 대충 예쁘게 꾸며놓을 때라고 생각했다. 성과를 내는 걸 병행한다면야 당연히 좋겠지만...


4. 제가 일반 업무 역량은 마케팅 특화 역량은 없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좋죠?

어떻게 하긴요, 어떻게든 찾아서 벼려야지.


5. 관련 산업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아야 할까요?

다다익선 인마 다다익선


이런 생각이 들다 보니 머릿속에서는 질문이 막 오가는데 터져 나오는 말은 없어서 그저 침묵만 길어졌다 하더라. 그건 분명 질문의 탈을 쓴 불안함이었다. 부족한 나라도 괜찮다는, 할 수 있다는 위안을 얻고 싶었나 보다. 혹은, 먹이를 기다리는 아기새처럼 나는 그저 선배가 내게 필요한 정보를 A to Z로 다 주입해주시기를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전혀 없을 텐데.

약간의 오만함도 있지 않았나 싶다. 솔직한 내 모습은 이렇게 보잘것없지만 그 와중에 빛나는 한 줄기 역량을 알아서 찾아 주세요. 그리고 내게 희망과 기회를 주세요.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역시, 아무도 없다. 우리 엄마 아빠도 내 전부를 사랑하지 못하는데 타인이 무슨 수로.


그 짧은 대화 후 나는 어딘가 홀린 듯 동네로 돌아와 삼겹살 3인분을 혼자 구워 먹었다. 여유 있게 혼밥을 하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기를 바랐는데 개뿔이, 혼자 고기를 구워 먹으려면 고기를 태워먹으려는 불과 끊임없이 사투를 벌여야 했다.

얼마 간 머리가 멍하고 복잡했다. 그 와중에 조금씩 가닥이 잡히기 시작했다. 내가 어떤 태도로 이 만남을 가치 있게 이어나갈지, 나는 무엇을 물어봐야 하는지.

다시 연락을 드렸다. 나는 이 기회를 잡을 테다. 평범한 실패담 3을 적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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