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저 아이를 낳았을 뿐이고.
168cm/51kg. 나의 임신 전 몸무게였다. 나는 운동을 싫어했고 먹는 걸 좋아하는 전형적인 게으른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은 호리호리한 몸매를 지녔으니, 그것은 타고난 뼈대 때문이었다. 우리 집 대대로 내려오는 가느다란 뼈대는 두툼한 살이 얹혔어도 어지간하면 슬림해 보이는 몸매로 보이게 해주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 미드미를 갖기 전, 제시 몸매가 되어보겠다고 호기롭게 시작한 헬스장에서 나를 가르쳐주던 PT선생님은 항상 입버릇처럼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다. '회원님, 평생 부모님께 감사하며 사세요. 남들보다 뼈가 반밖에 안될 만큼 얇아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엄청 스트레스받았을 거예요'
임신하고 열 달 동안 참 신기하게도 딱히 먹고 싶은 게 없었다. 귤이 먹고 싶긴 했는데 여름에 귤은 비싸기도 비쌀뿐더러, 결정적으로 임신성 당뇨에 걸려 마음껏 먹을 수도 없었다. 남들은 임신 중에 15kg~20kg씩 찐다는데 난 고작 7kg이 쪘음에도 불구하고 가족력이 없음에도, 고위험 산모 군에 해당하지 않음에도 임당에 당첨되었고 덕분에 저염식+단백질 위주 식단과 함께 행복한 열 달을 보내야만 헸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좀 융통성 있게 먹었을 텐데, 난 아무것도 모르는 겁 많은 임산부였다. 그것도 첫 아이를 임신한.
미드미가 태어나고 처음엔 오히려 살이 급격하게 빠졌다. 58kg까지 쪘던 살은 49kg까지 빠져 누가 봐도 얼굴이 반쪽이었다. 한편으로는 다이어트로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내심 기쁘기도 했다. 하지만 웬걸, 미드미가 100일쯤 지나자 서서히 다른 변화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며 두 끼도 간신히 먹었는데 살이 마구 찌기 시작했다. 이미 미드미는 나온 지 백일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배는 그대로였다. 청바지를 입으면 허리 위로 두툼한 살들이 만져지기 시작했다. 등에 살이 도톰하게 올라 누울 때면 푹신하기까지 했다. 턱이 통통한 게 슬램덩크 감독님 같다는 친구들의 일침도 있었다. ㅋㅋ
억울했지만 사실 이유 없는 살은 아니었다. 하루 두 끼를 먹었지만 두 끼 중 한 끼는 폭식이었다. 간단하게 집어먹을 수 있는 빵, 과자, 초콜릿(대체 단 음식은 왜 이렇게 당기는 건지)은 매일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었다. 집안일로 바쁘고 아이를 뒤따라 다니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내가 쓰기 편한 근육만 움직이고 있었다. 한 달에 두어 번 스트레스를 풀고자 H와 먹었던 치킨, 피자, 떡볶이 역시 살에 대한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미드미가 남긴 우유는 고스란히 내 라떼가 되었고, 유통기한이 하루 이틀 지난 미드미의 간식들은 내가 처리하곤 했다.
배, 배, 배. 정말이지 배가 가장 문제였다. 가느다란 팔다리는 어느 정도 회복했지만, 배는 들어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운동과 식이요법이 필수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고 저녁이 되면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그저 누워 웹툰이나 보며 쉬고 싶었다. 직장에 다닐 땐 피로의 강도가 정신:육신=7:3 정도였다면, 지금은 2:8 정도였다. 아이 고고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리고 내 배도 함께 나와갔다.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매일 배를 보며 스트레스를 받느니 그 편이 편하겠다 싶었다. 아끼던 치마 몇 벌을 친구들에게 나눠주며 더 이상 미룰 때가 아니라며 스스로를 재촉했다. 탄수화물을 줄이고 쓰지 않는 배 근육을 쓰는 방식으로 저녁 한 끼를 볶은 귀리와 우유 한잔으로 대신하고, 미드미를 재우고 거실에서 홀로 홈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글의 끝맺음에 '그래서 현재 배가 2인치가 줄어들었고, 체지방이 감소했으며...'와 같은 기분 좋은 팩트를 쓰고 싶었지만 이제 시작인 관계로 굳은 결심만 있을 뿐이다. 하하.
당분간은 맛있는 인생이 없어 좀 재미는 없겠지만, 이제 나는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는 엄마니까. 으랏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