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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g May 16. 2018

29. 안녕, 분유

이렇게 아기에서 어린이가 되어가는 걸까

미드미의 첫 분유는 조리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조리원에서는 N모사의 분유를 먹였는데, 조리원을 나와 집에서 미드미를 키우며 두 달쯤 지났을 때 그 분유가 리뉴얼되어 새롭게 출시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시 나는 모유와 관련된 모든 방법을 다 썼음에도 불구하고 모유량이 늘지 않아 완분의 길을 걷고 있던 차였고, 미드미는 쑥쑥 커가느라 400g의 분유 한통을 먹는데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던 터였다.


나는 N사에 대한 막연한 불신이 있었다. 그래서 리뉴얼이 되어 어차피 분유를 바꿔야 한다, 기존에 먹이던 분유는 소화가 안 되는 것 같다, 새벽마다 배앓이가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변이 좀 안 좋은 것 같다, 는 핑계반 현실반의 논리로 스스로를 다독이며 새로운 분유를 찾아댔다. 그리고 황금변을 보는 데는 이만한 분유가 없다는 H분유를 선택했다. 모유를 못 먹여서 미안했던 마음에 직구를 통해서라도 꼭 좋은 분유를 먹이리라 다짐하며.


다행히 미드미는 H분유를 잘 먹어줬다. 생후 두 달째부터 13개월까지 쭉. 모든 아기들이 그렇듯 중간에 한 번씩은 분유를 먹지 않아서 속을 끓였던 적도 있지만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다만 H분유의 특성상 알루미늄 캔이 아닌 시리얼 봉지(?)에 담겨있다는 매우 불편한 부분이 있었고, 덕분에 매번 분유통을 닦고 말리는 일을 반복해야 했다. 게다가 해외배송을 해야만 했던 탓에 분유가 떨어지기 전에 주문해야 하는 타이밍의 문제도 있었다. 호기롭게 시작한 H분유와의 만남은 사실 나로선 불편함이 더 많았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적당한 국내 분유를 선택해 먹여도 된다고 나 자신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하하)

분유와는 정말이지 애증의 관계였다. 새벽마다 분유 수유를 할 때면 몰려오는 잠과 씨름하며 비몽사몽 분유를 탔다. 찬물이 담긴 분유병에 뜨거운 물을 붓다 실수해서 내 다리에 부은 적도 있고, 분유를 넣은 병 입구를 젖꼭지로 잘 못 막은 탓에 쉐이킹과 동시에 주방 바닥을 분유 바다로 만든 적도 있었다. 한 번은 분유병 대신 분유를 담아둔 통에 뜨거운 물을 부어버린 적도 있었다. 신생아 땐 하루에 열두 번 수유를 했는데, 젖병은 4개여서 하루 세 번 열탕 소독을 했고, 나도 참 피곤한 내 성격 때문에 분유를 끊는 그 전날까지도 열탕 소독은 계속됐다. 단계마다 젖꼭지를 바꿔주는 일과, 젖병을 교체하는 일도 잊어선 안 되는 일 중 하나였다. 물을 끓이는 포트는 일주일에 한 번씩은 구연산과 식초로 세척해야만 했다. 어디 그뿐이랴. 어딜 한번 나가려고 하면 큰 백팩 양 옆에 뜨거운 물을 담은 보온병과 찬물을 담은 물병, 그리고 분유병과 소분한 분유 등등을 다 챙겨야만 했는데, 그게 또 보통일이 아니었다. 하, 생각만 해도 내가 대견스러운 지난 13개월의 나날들이다.


그랬던 분유와의 13개월의 만남을 뒤로하던 날. 아쉬움과 시원함이 겹쳤다. 분유를 먹일 때 미드미를 비스듬히 눕혀 왼쪽 팔 위에 머리를 두고 눈을 맞춘 뒤 먹였는데, 그 얼굴이 너무 예뻤다. 분유를 먹을 때 오물오물하던 그 입도, 숨 쉬던 코도, 누워있을 때 약간 퍼져 보이던 그 얼굴도 너무 그리워질 것 같았다. 다 먹고 나서 쉬잉쉬잉 바람이 빨리는 소리가 들리면 배시시 웃던 그 모습도 잊히질 않았다. 무엇보다 폭 안겨 모든 걸 맡기고 누운 아가의 따뜻함이 가장 아쉬웠다.  


며칠 전, 미드미의 물건들을 정리하다 젖병을 마주했다. 작은 160ml 젖병부터 230ml 젖병까지 모아 버리려다 아쉬운 마음이 들어 두 개를 남겼다. 나와 미드미의 시간들이 응축된 것 같은 그 젖병에서 괜히 미드미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아마 당분간은, 그 두 개의 젖병은 버리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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