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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g Jun 26. 2018

31. 걷기

나는 사실 굉장히 초조했던 것 같다.

뒤집기, 배밀이, 기기, 앉기.. 꽤 많은 과정을 수월하게 넘긴 미드미는 마지막 단계(?)인 걷기를 앞두고 있었다. 진작부터 잡고 서기 시작한 미드미를 보며 곧 걷겠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그러나 돌 때쯤엔 아장아장 걸어 다니며 놀이터 산책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기대와 달리 미드미는 좀처럼 걸을 생각이 없었다.


두 번째 영유아 건강검진을 받으러 간 날, 여러 발달 항목 중 대근육과 관련된 부분이 미흡하다는 소견이 있었다. 나의 걱정 어린 표정을 본 의사 선생님은 꽤 쿨하게 '17개월까지만 걸으면 되니 걱정 마세요'라고 말씀하셨지만.. 내심 초조했다. 집에 돌아와 이 신발 저 신발 물려받은 신발들을 꺼내서 신겨보기도 하고 집안에서 기기보다 걸었으면 하는 마음에 집안에서 아예 신발을 신겨놓기도 했다.


어느 화창한 봄날, 바람도 쏘일 겸 H의 퇴근시간에 맞춰 미드미와 회사 앞으로 갔다.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삼십 분이나 일찍 도착한 바람에 시원한 공원에 앉아 미드미와 봄날을 만끽하다 문득 미드미를 걷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주섬주섬 신발을 신겼다. 넓은 공원에서의 걷기 연습은 처음이라 잔뜩 긴장한 미드미는 내 손을 꼭 잡고 서서 한 발짝 한 발짝 조심스럽게 떼기 시작했다. 넘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걷기 연습을 몇 번 하다 보니 기분이 좋아졌는지 까르르 소리 내며 웃는 미드미가 참 예뻤다. 그때 옆 벤치에 앉은 한 분이 말을 걸었다.

"아기가 몇 개월이에요?"

아기가 걷는 게 재밌어서 그러시는구나, 싶어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 15개월 돼가요"

"15개월이요? 아니 근데 왜 아직도 걷지를 못해? 보통 돌 때 뛰어다니던데"

순간 훈훈했던 마음이 묵직해지기 시작했다. 내심 아기가 걸음마 연습을 열심히 한다고 칭찬이라도 해주길 바랬던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고 괜히 화가 나기도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미드미는 그저 그 순간에도 날 보며 배시시 웃고 있었다. 서둘러 미드미를 유모차에 앉히고 '17개월까지는 괜찮다고 하던대요..'라는 변명 아닌 변명을 남기고 서둘러 자리를 옮겼다. 초조함과 동시에 속상한 감정이 밀려왔다.



이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드미는 16개월을 꽉 채운 어느 날 걷기 시작했다. 늦게 시작한 걸음마라서 그런지 한두 발자국이 아닌 꽤 많은 발걸음을 떼기도 했다. 이게 뭐라고 그리 초조했던지..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괜한 자격지심에 초조함을 떨치지 못한 시간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리저리 넘어지느라 군데군데 멍이 든 미드미를 보며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운 마음이 교차했다.


사실 2차 영유아 검진이 있던 날, 미드미는 신체영역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서는 꽤 높은 발달을 보였다. 잘하는 부분에 대해서 감사하고 칭찬해주기보다 미흡한 부분에 대해서만 너무 신경 쓰고 있진 않았나 싶은 마음이 들어 미드미에게 미안했다. 육아 선배들이 '걸음은 늦게 걸을수록 좋은 거야. 평생 걸을 건데 좀 늦게 걸으면 어때'라고 조언할 때마다 좀 더 새겨듣고 편안한 마음을 유지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조심성 많고 겁도 많은 미드미의 기질을 이해해주는 엄마가 되길 바라본다. 미드미가 어렵게 신체적으로 한 단계 도약하는 '걷기'를 시작하는 순간, 나도 육아의 길을 한 단계 더 걸었다. 아직 둘 다 아장아장 걷고 있지만 언젠가 뛰어다닐 그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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