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이 좋은 미드미와 집안이 좋은 엄마
내 기질은 '누워서 뒹굴뒹굴'이다. 사실 부지런하게 하루를 살려고 노력하고 또 그렇게 살곤 하지만 내 천성은 게으름에 더 가깝다. 스트레스가 극도에 달하거나 심신이 지친 날이면 H는 밖으로 나가 차라도 한잔 마시던지 혹은 영화라도 한편 보던지 해야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했지만 난 반대였다. 푹신한 침대에 누워 귤이나 까먹으며 밀린 드라마를 열 편이고 스무 편이고 주구장창 보는 게 훨씬 좋았다. 나름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성격 탓에 쨍쨍하고 화창한 날이면 나도 날씨를 만끽하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들었던지라, 스트레스가 극대화 되는 날이면 차라리 비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비가 오면 신발도 젖고 머리도 부스스한데, 나가기보다 집이 더 낫잖아!라는 나름의 합리화가 통한다고나 할까.
하지만 나의 좋은 시절도 근 삼십사 년 만에 끝이 나고야 말았다. 아장아장 걷는 게 이미 익숙해져 우다다다 달려가는 직립보행을 만끽하는 개월 수가 된 미드미는 급기야 나가자 병에 걸렸다. 하기사 내가 봐도 나가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런 날씨이기는 했다. 하늘은 더없이 높았고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은 청명했다. 빼곡히 들어선 아파트 사이로 아주 조금 보이는 북한산은 그날의 공기를 책정하는데 어플보다 유용한 상대였는데, 북한산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면 미세먼지가 좋음, 혹은 형체를 알 수 없을 만큼 뿌옇다면 미세먼지가 나쁨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했다. 그리고 근 한 달간 북한산의 모습은 선명했고 미세먼지는 연신 좋음을 기록하고 있었다.
미드미는 아침을 먹자마자 신발장에 걸터앉기 시작했다. 한참을 신발장에서 기다려도 내가 오지 않으면 신발을 가지고 집안으로 들어와 내 손가락을 잡고 '나가'와 '같이 가'를 무한 반복하며 졸졸 따라다녔다. 안경 콤플렉스가 있어 근 십사 년을 렌즈와 함께 살아왔건만.. 요새는 렌즈는커녕 선크림도 바르지 못하고 하루가 시작됐다. (그것도 뚜벅이로!!)
미드미와 가장 많이 간 곳은 집에서 가깝고, 대중교통으로 가기 편리한 여의도였다. 일할 때는 보지 못했던 무수히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이와 함께 갈 수 있는 식당이나 수유실, 공원 등등... 특히나 여의도에는 미드미가 좋아하는 것들이 몰려있었는데, 여의도공원과 63 아쿠아리움이 대표적이었다. 사실 아쿠아리움중 가장 오래되고, 작은 곳이라 선호하지 않는 가장 인지도 낮은 장소인데도 미드미는 그곳에 가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엄마 다음으로 물고기를 찾았으니. 덕분에 아쿠아리움 연간회원권 사용자가 되었고, 누구보다 그곳을 사랑하는 애용자가 되었다.
날씨를 보아하니 이제 가을이 가려나보다. 지독했던 여름만큼 가을도 좀 지독하게 길어줬으면 좋겠건만- 참을성 없는 겨울 때문에 착한 가을이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날이 추워지면 미드미도 나도 집에 있는 시간이 더 길어지겠지. 아니지, 어쩌면 따듯한 아쿠아리움을 더 애용하게 되어 덕분에 물고기 박사가 될지도 모르겠다.
여담이지만, 요새 우리의 총애를 받고있는 최애(?)물고기를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