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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g Oct 24. 2018

37. 맹모삼천지교

그래도 맹모는 이사를 갈 수라도 있었지

H와 나는 주거지에 대한 불만이 없었다. 아니 없었다고 단정 짓긴 뭐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대한 불만이 크지 않았다. 지하철 역과 가까운 데다 시장과 마트가 인근에 있는 편리한 위치, 겨울에는 따듯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냉난방이 가능한 시설, 둘이 살기에는 넉넉한 크기까지. 사실 하루의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내고 저녁에 잠을 자는, 그리고 주말에 잠깐 쉬는 공간이었던 집이었기에 크게 불만도, 만족도 없었다.


2015년에 한 번 이사가 너무 가고 싶었다.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직장이 이전한 것도 아니었는데 문득 이사가 가고 싶었다. 지금 있는 보금자리를 바꿔보고 싶은 그런 심정이랄까. 하지만 막상 이사를 계획하자니 현재 가진 자금을 다 쓰고도 꽤 많은 돈을 빌려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렇게 이사는 무산되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처음엔 거의 집 안에서만 생활했기 때문에 주변 환경에 대한 파악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미드미가 점점 자라 걷고 뛰는 시기가 되자 집안에 있는걸 꽤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차고 넘치는 에너지를 다 쓰고자 하는 쌩쌩한 아이와, 그런 아이의 에너지를 발산시켜주는 역할을 담당하는 나 역시 매일 바깥놀이를 고민했다.


처음엔 수유실이 잘 갖춰진 소위 몰(mall)을 많이 찾았다. 하지만 미드미는 활동이 수월해지기 시작하면서부턴 몰을 싫어했다. 쇼핑몰에 들어서면 일이십 분 잠깐 재밌어하다 이내 나가자고 했다. (몰이 얼마나 재미있는 곳인데!!!!) 결국 매일 공원, 수족관, 어린이박물관, 최근엔 식물원까지 아주 다채로운 활동들을 해야만 했다. 덕분에 나는 새카맣게 탔고 여름 내내 2kg이 빠졌으며 도시락 싸는 솜씨가 엄청나게 늘었다.


놀이터가 절실했다. 하지만 우리 집은 단지가 아니었고, 자연히 놀이터가 없었다. 집 주변에 놀이터가 있긴 했지만 언제나 그네는 큰 언니 오빠들 차지였고, 미끄럼틀은 너무 높았으며, 비록 소형이지만 암벽 타기는 더더욱 하지 못했다. 작은 놀이터는 언제나 시설 대비 인구밀도가 너무 높아 경쟁이 치열했다. 아이가 생기니 처음으로 '집'에 대한 구체적인 니즈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저녁, 미드미를 재우고 H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던 중 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H도 같은 생각으로 여러 날을 고민하던 차였고 우리의 니즈를 합해보자면 다음과 같았다.

 '단지가 있을 것, 직장과 멀지 않을 것, 안전한 시설이 많을 것, 학교가 근처에 있을 것, 해가 잘 드는 집일 것'

그리고 그날 저녁, 부동산 앱을 통해 알아본 우리의 이상적인 집은 현재 '10억'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의 고민은 끝나지 않았고, 우리의 이사 계획도 우습게도 아직 진행 중이다. 서울시내 집값이 너무나(라는 단어로 표현되지 못할 만큼) 비싼 관계로 아마 꽤 오랜 시간 진행 중일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2015년 이사를 가려고 계획했던 그 아파트는 그때 당시 부족했던 금액의 딱 두배가 더 부족해졌고 우리는 그 아파트를 지나갈 때마다  암묵적으로 킥킥대곤 한다. 그때 결단하지 못했던 건 '네 탓'이라고 하지만 사실 '내 탓'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 시민으로 자란 35년의 세월이 엄청나게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걸 새삼 느낀다. 앞으로 미드미가 살아갈 세상은 어떤 곳일까. 다만 '집'이 너무 큰 짐이 되지만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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