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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희 Jul 31. 2024

영업종료 D-365

처음 내 사업자등록증으로 서울 서대문구에 실물 주소를 가졌다.

당근에서 마음에 드는 테이블을 봤는데, 마침 이곳 직전에 봤던 매물인 캔들 공방에서 내놓은 거길래 모르는 척 용달만 보내 '잘 쓸게요' 하고 당근해왔다.

이케아에서 예쁜 천을 사서 테이블 위에 깔고 내가 만든 도자기 화병에 꽃을 꽂고 피자를 시키고 사람들을 초대하고 케이크를 불고 샴페인을 터뜨렸던 게 꼭 1년 전이다.


'1주년 기념'을 달기가 이렇게 버거울 줄이야.

지금 우리 사정으론 작년 이맘때처럼 사람들을 초대해 베풀거나 축하를 하기엔 빠듯해 수강생 유치를 목적으로 한 원데이 할인 이벤트로 그쳤다.


모두들 입을 모아 3개월만 지나 봐, 못해도 그 정도 수강생은 찰 거야. 했던 예언은 기어코 빗나갔고 그때까지도 우린 영문을 몰랐다.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어 생전 처음 전단지를 만들어 길에 나갔다.

학교 정문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보안관님과 눈이 마주치면 멋쩍게 미소도 지어보고 "전단지 말고 다른 건 일절 나눠주시면 안 돼요"를 증명해 보이듯 손에 든 수십 장의 전단지로 괜히 부채를 부치는 척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요즘 초등학생들의 냉정함과 침착함, "제가 이걸 왜 받아야 하는데요?" 그에 대한 대답까진 준비가 미처 안 돼있었고 "얘들아 캐릭터 도자기 만들러 와"에 대해서도 "도자기 안 좋아하는데요"라고 똑 부러지게 받아치는 아이 앞에선 전단지를 주지도 걷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사탕 하나 안 껴서 주는 전단지를 뭐 하러 받냐'가 요즘 아이들 마음이라는 것을,

다른 학원 선생님들의 "어머 전단지만 달랑 돌렸어?"로 트렌드에 뒤쳐진 걸 새삼 확인하게 됐다.


어떤 아이는 전단지에 적힌 이벤트 가격을 보고 '이거 받아서 가져가면 할인 더 해주냐'며 할인의 할인가를 흥정하기에 이르러서 '음.. 그건 좀 곤란한데..'를 내가 속으로만 생각했는지 이 아이에게도 내뱉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게 만들었다.


그다음 학교부터는 초등 저학년 아이들의 하교를 기다리는 엄마들을 집중공략하는 걸로 전략을 바꿨다.  

엄마들은 내가 다가가면 흠칫했고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부터 '도자기도 하는 미술공방인데요~'로 '저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를 시전 하면 대개는 전단지를 받았고 실제로 문의나 수업으로도 이어졌다.


그렇게 반 값 원데이를 하느라 한 달을 정신없이 보냈다. 그런데 수중에 남는 게 없더라. 원데이 체험이 정규반 등록으로 이어져야 한 달의 수고와 인건비, 운영비가 빠지는데 정규반 유입률이 현저히 낮았다. 전단지 효과를 안 본건 아니지만 이 정도론 어림도 없었고 분명 이례적으로 많은 아이들이 드나들었는데 우리에게 남겨진 건 수시로 돌봐야 할 도자기 작업들 뿐, 일에 대한 보상은 없어서 '우리 반 값 할인은 앞으로 하지 말아요'로 결론지었다.


2년 계약에서 1년이 지났고 앞으로 1년 남은 상황.

계약은 연장만 생각해 봤지 무슨 팝업스토어도 아니고 언제 접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건 애당초 처음 계획엔 없었다.


어제 둘이 머리를 맞대고 초등 저학년으로 대상을 한정해서 아이들에게 꼭 필요하고 엄마들도 만족시킬만한 기초 회화반 수업을 만들자고 회의를 했고 그 후 내가 동업자이자 동료에게 전한 소식은 부동산에서 이 동네에 카페공방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우리를 소개하고 싶다며 언제쯤 내놓을건지를 물어봐야 했다.


정해진 끝을 향해 최선을 다해 달리기.

그러니까 최선을 다하는 조건엔 'The end'는 없어야 하지 않나? 그 와중에 '근데 이거 언제까지 할 거예요?' 하면... 너무 가혹하달까.  


게임에서처럼 다섯 번의 목숨이 있어서 이미 네 번 죽었고 이제 한 번 남았는데 그마저도 죽고 나면 '게임 오버'가 뜨며 버튼 하나 누르면  프레쉬하게 '다시 시작' 할 순 없는 노릇. 현실세계는 냉정하다.

다들 어떻게 버티지? 싶었다.

 

지난밤엔 내 오랜, 든든한, 무조건 내 편인 친구들 몇몇이 사무치게 생각났다. 이 정도 신호면 내게 있어선 큰 위기다. 압박감이 상당하다는 거다. 이십 대 때 타국에 살며 세상이 끝난 거 같을 땐 길에서도 울고, 기차역을 찾아 귀가 찢어질듯한 경적 소리에 맞춰 통곡도 해 보고, 제주도 언니네 가서 피해 있기도 했다. 그때도 살아낼 방법은 있었고, 혼자 힘으로 결정을 내렸다.


내가 좋든 싫든,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카운트다운은 시작됐다. 정말 진부한 말이지만 위기를 기회로!를 주문처럼 외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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