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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희 Feb 14. 2023

개 키우지 마세요 했던 1년 전 사람

5개월 된 이탈리안그레이하운드 종인 대추를 데려온 게 재작년 추석이니 벌써 1년 반이 지났다.

데려온 지 오래 지나지 않아 대추는 우리 가족생활의 중심이 됐다. 그도 그럴 것이 혼자 두기가 무서울 정도로 집 안의 크고 작은 물건, 가구, 음식, 벽지 등을 물어뜯고 맛보았다.

기존에 있던 모든 물건들을 대추 발이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전부 숨기거나 올려놓아야 했다.  

그럼에도 하루가 다르게 커 가 어떻게 이걸 꺼냈지? 이걸 먹었다고? 하며 놀란 마음을 쓸어내리기를 거의 매일 반복했다.

오후에 한 번이라도 들를 수 있는 가족(주로 나)이 낮에 들러 대추의 무료함과 호기심을 산책으로 대신하려 노력했지만 1년이 되기까진 대중없이 집 안을 쑤셔놓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가장 먼저 퇴근하는 사람이 그날 뒷감당의 당번이 됐다. 주로 정시 퇴근하는 아빠였고 아빠는 '데려가라' '같이 못 살겠다'라고 힘듦을 토로했다.

아빠가 겪는 중년의 적적함과 쓸쓸함을 채워주려 데려온 강아지는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한 아빠에게 꼬리를 흔들며 매일의 사고현장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똥오줌과 벽지가 함께 나뒹구는 끔찍한 현장이었다.


뭔가 조치를 취해도 취해야 했기에 4주 훈련을 받기에 이르렀다. 헛 참. 기가 찰 노릇이었다.

우리 집은 평생 개를 키워왔고 특히 아빠는 도베르만, 로트바일러부터 작은 소형견까지 웬만한 개는 전부 섭렵한,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개를 좋아하고 능숙하게 다루는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고 훈련소를 알아보라 하기에 이른 거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 대추를 태우고 가서 함께 산책 훈련, 기다리는 훈련, 주인과 눈을 맞추는 훈련 등을 통해 대추를 포함한 우리 가족 모두의 삶의 질이 나아지길 바랐다. 다음 일주일까지 훈련사님이 내 준 과제를 집에서 다른 가족들에게 알려주며 대추와 함께 해 나갔고 동영상을 찍고 훈련사님께 보내 체크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한 살을 기점으로 대추는 갑자기 의젓해졌다. 의아할 정도로.

백 프로 훈련 때문이었다기보단 서로가 서로를 견뎌야 하는 시기가 있고 그 시기가 지나니 이갈이도 끝났고 밥 먹는 속도, 집 밖으로 나갔을 때 튀어나가는 속도, 걸음 걸이 등 모든 것에서 여유가 생겼다.


땅에 코를 박고 걸으며 뭔가가 보이면 입에 넣기부터 하는 개였는데 이젠 적어도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정도는 구분하는 것 같았다.


이 즈음 아무도 찾지 않는 내 유튜브에 이제까지 찍은 대추 영상들을 편집해서 올렸다. 순식간에 만든, 나를 위한 3분짜리 대추 영상 모음집이었다.  

제목은 <이탈리안그레이하운드 입양부터 10개월, 강아지 키우고 싶은 사람 다시 생각해 봤으면 하는 영상>이었다. 진심이었다.


대추의 난동이 가장 심했을 시기의 누가 봐도 뜨악할 영상, 함께 해 온 행복한 나날들, 지난한 과정을 거쳐 나름의 안정과 균형을 찾았으나 누군가 '이탈리안그레이하운드나 키워볼까?' 하고 호기심을 보인다면 '제 영상 한 번만 보세요, 그리고 키우지 마세요'라고 두 번, 세 번도 말해줄 수 있다.


극단모에 매우 날렵하고 마른 체형인 사냥개인 그레이하운드를 소형화시킨 (줄여서)아이쥐를 키우는 사람들 카페에 가 보면 하루에 한 번 꼴로 골절, 식분증, 사료 거부, 피부 질환 등의 글이 올라온다. 키우기 쉬운 견종은 분명히 아니다. 요즘엔 유기견보호소에서도 종종 보이는 걸 보면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비단 아이쥐뿐 아니라 다른 견종의 개들도 견생 4-9개월을 함께 보내는 게 가장 힘들고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일터, 그 시기가 지나면 강아지에서 개로 변모하는 순간을 함께 맞이할 수 있다는 것도 겪어본 사람으로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대추를 키우면서 이렇게나 매일을 계획 있게, 계절과 날씨를 오롯이 느끼며 지낸 적이 있나 싶을 정도이다. 아침에 눈 떴을 때 눈이 오면 '세상에! 대추한테 얼른 눈 보여주고 싶다' 하는 설렘을 느끼고 엘리베이터를 타든, 동네 주변을 산책하든 반대편에서 오는 이웃 누구라도 '개가 멋있네요' 하면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하며 꼭 눈 맞춤을 하게 된 것도 아주 근사한 변화이다.


순전히 나의 기쁨을 위해 만든 영상은 유튜브 채널을 방치해 두며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가 엊그제 들어가 봤는데 조회수가 무려 1만을 넘어섰다.(소리 질러!!!!!!) 우리 가족은 이제까지 여러 강아지와 함께하고 또 떠나보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던 기억을 가지고 다시금 새 가족을 맞이하는 인간형들이다. 우리 집에서 강아지는 항상 아빠가 데려왔는데 대추는 내가 데려온 첫 강아지이다 보니 시간이 지나 대추가 이런저런 변화를 겪고 끝끝내 끝이 있을 거라는 걸 상상만 해도 정말 울컥한다.


여전히 누군가 강아지를 키워볼까 한다면, 내 영상을 들이밀며 '다시 생각해 봐' 할 것임에는 변함없다.

아빠네 집은 1미터 아래로는 벽지 없이 회색 시멘트벽 그대로인지 2년이 돼 가고 그곳에 벽지 대신 페인트를 칠해야 하는 건 내 몫으로 남아있다. 가족 중 누구라도 여분의 시간이 생기면 대추를 데리고 운동장에 가는 건 기본 룰이다. 대추는 이제 낮에 집에 아무도 없으면 해가 떠 있는 내내 잠만 자는 개가 됐다. 난리를 피는 모습을 홈캠으로 실시간으로 볼 때면 가슴이 콩닥콩닥했는데 담요까지 끌고 와 덮고 자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거대로 마음이 무겁다. 너무 빨리 커 버린 건 아닌지 싶다.


최근에 처음 강아지를 키우게 된 지인과 걷고 있었다. 그러다 '아 죄송해요 제가 얘기를 놓쳤네요' 하며 우리 옆을 지나는 강아지에게 자기도 모르게 눈길이 가서 그랬다고 했다. 그러면서 '참 신기해요 이전엔 길에서 강아지 봐도 신경도 안 쓰다가 이제는 산책시키는 사람도, 저 강아지에게도 모두 마음이 쓰이는 게요' 랐다. 그런 것이다. 웰컴 반려인생 :)   


https://youtu.be/pb66E6oyTbw

화제의 그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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