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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희 Jul 21. 2022

요즘은 도자기 작가입니다

노스탤지어

-고향을 몹시 그리워하는 마음. 또는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움.





작년 가을, 대추를 데려왔을 무렵부터 도자기 공방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초반에 대추 밥그릇, 물그릇 등 대추와 관련한 걸 만들고 생활 자기 등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도 전기물레를 쓰지 않고 오로지 도구와 손만으로 작업하는 핸드 코일링 기법만으로 도자기를 만들고 있다.

초반에 만든 몇몇 화병, 그릇 등은 초벌도 하기 전에 금이 가거나 가마에 굽고 나서 보니 금이 가 있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시간으로만 따지면 너 다섯 시 간은 기본으로, 한 줄 한 줄 쌓아 올린 작업들인데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이내 그게 도자기의 매력인 것을 깨달았다. 도자기를 만든다는 건 시간을 쌓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분 단위의 시간을 살아가며 스킵(skip) 이 일상인 현대 사회에서

십 키로 짜리 덩어리 흙을 일부 떼어내 밀고 펼치고 적당한 두께로 만들어 한 줄 쌓고 붙이고 틈을 메우고 그 위에 다시 쌓고를 내가 원하는 높이까지 반복하는 이 행위는 그 어떤 빨리 감기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금이 가고 깨진 결과물들 앞에서 절망했다기보다 그 작업을 할 당시에 꼼수를 부렸던, 겉으론 그럴싸해 보였지만 나의 조급함과 대충대충이 가감 없이 드러나는 이런 점이 오히려 신선했던 것 같다. 이토록 정직한 작업이라니!


그리고 작년 겨울,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선생님이 k핸드메이드 페어에 초청받아 나갈 때 영광스럽게 선생님의 도자기 옆 한 켠에 작은 트리를 사서 내가 만든 오너먼트와 종 등을 달아 전시했었다. 그때가 공방에서 혼자 꼼지락꼼지락 한 작업들을 처음 다른 사람들에게 선보인 자리였다. 판매까진 큰 기대 안 했는데 나의 지인과 어떤 이십 대 여성분이 작업을 마음에 들어 해서 구매해 갔다. 소중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봄이 끝나갈 무렵, 개인전을 했던 갤러리 대표님께서 나의 흙 작업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며 도자기-식물 전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해주셨다.

도자기 위주로 선보이는 건 처음이라 얼떨떨하고 우려도 됐지만 너무 감사한 제안이라 네 해볼게요! 하고 냉큼 제안을 받아들였다.

나의 도자기 작업이 더 이상 취미가 아닌 나의 일이자 창작 작업으로 공인되는 순간이었다. 이쯤부터였다.

사람들이 ‘요즘 뭐하고 지내요?’ 하면 ‘도자기 해요’라는 대답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8월 중순 전시여도 가마를 떼고 굽는 시간을 고려하면 늦어도 7월 중순까지 작업이 마무리돼야 했다. 그 전엔 보통 주에 한 번, 좀 게으름 피우면 격주에 한 번 가던 공방을 주에 2번, 많으면 3번도 갔고 오전에 가서 점심을 먹고 오후까지 하다 왔다.


내 선생님은 ‘제자가 전시도 하게 됐다’며 나만큼 기뻐해 주시고 응원해 주셨다. 공방 문을 닫은 주말에 내가 어디 다녀올 계획이라고 하면 ‘그런 데 놀러 다닐 시간이 있나 봐요? 얼른 나와서 열심히 하세욧’ 이라고 채찍질해주셔서 그게 또 그렇게 웃기고 감사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정말 전시 전 마지막 작업을 할 수 있는 주간이 다가왔다. 이제까지 한 작업들은 전부 구워져 나왔고 이번 주말에 사진 찍는 친구에게 부탁해 공방에서 간단히 캡션 사진도 찍게 됐다. 고심해서 전시 제목도 정했다.


요즘 다시 프랑스 라디오를 듣는데 ‘여름을 살아가는 몸’에 대한 흥미로운 주제를 접했다. 바캉스=여름=일광욕 이 한 세트인 나라이고 일상의 모든 주제로도 철학적이고 심오한 토론이 가능한 사람들이 프랑스인이다.

아무것도 가릴 것이 없는 해변에 가서 비치타월로 나만의 자리를 만들고 공공연하게 대중에게 나의 몸을 노출하는 행위, 자유 그 자체. 그러한 행위가 유일하게 허용이 되는 시간과 장소와 계절.

tatouler le soleil 태양을 몸에 새긴다는 이 표현력에 새삼 감탄스러웠다. 실제로 바캉스 시즌이 되면 다들 어디를 갈 거냐, 어딜 다녀왔냐 얘기로 설레 하고 피부 톤이 21호에서 30호 정도로 바뀌어 온다. 여전히 피부톤이 원래대로인 사람들을 보면 '휴가도 못 다녀왔나 봐' 안됐네, 그럴 여유조차 없는 사람으로 여기기도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나는 프랑스에서 십여 년을 살며 이러한 해변 문화에 대해, 휴가란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떠나는 것이고 가족, 친구, 연인과 그저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식사를 하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라고 몸으로 체득했다. 사계절 중 여름은 특히 몸과 관련된 계절임은 분명하다.

여름이 되면 작열하는 태양 아래 자주 언급하는 단어가


coup de soleil(꾸 드 쏠레이) 작열하는 태양, 내리쬐는 태양, 햇빛으로 인한 화상

-coup 부딪침, 치기, 충격, 공격, 자연현상의 발생, 작용, 술.음료 한 잔,

-soleil 태양


이다. 이 라디오를 들으며 문득 도자기, 흙 작업의 성질과도 유사하다는 생각이 번뜩 스쳤다. 말랑하거나 단단한 흙을 먼저 손의 압력과 손의 온기로 변형을 줘서 무의 형태였던 덩어리에서 어떤 구체적인 형태를 찾아 나가고 그 후 1000도씨가 넘는 고온의 가마에서 두 번을 구우면 더 이상의 성형이 가능하지 않은, 아주 단단한 성질로 변하게 된다. 이 열을 견디는 과정에서 갈라지거나 터지기도 한다. 아주 강렬한 빛과 온도를 접하고 장시간 노출되고 색과 성질이 변한다는 점에서 여름 햇빛 아래 몸을 태우는 vacancier 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리고 나의 또 다른 정체성인 식물과 꽃도 함께 전시될 거기에 한글 제목은 '정원에서 일광욕'이라고 정했다. 요즘은 꼭 외국어 제목을 직역해서 번역하지 않기도 하고.


전시를 위한 도자기 작업이 일단락되어가는 지금에서야 흙 작업에 대해 돌아보고 하나하나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됐다. 모든 건 정말 때가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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