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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희 Mar 07. 2023

치과의사 선생님이 물었다 : 힘든 일 있으세요?

베개에 머리를 대는 순간 잠드는 편인데, 그렇지 않은 아주 이례적인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대중없이 새벽 네 시나 다섯 시에 잠에서 깨기도 하는데 그러면 바로 잠들지 않고 괜히 핸드폰을 들여다보다 잠깐 눈을 붙인다. 


자도 되나? 

내가 이렇게 그냥 편하게 잠이나 자도 되나? 

하는 새로 생긴 위기의식 때문이다. 


삼십 대를 지나는 친구들과 얘기해 봐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는 얘기가 오간다. 이때까지 살아온 세월만큼 갚아나가야 하는 대출을 끼고 집을 산 친구들, 집이 없는 친구들, 직장을 다녔던 친구들, 직장을 다니는 친구들 모두 세계의 경제위기와는 또 다른 개인의 위기를 겪고 있다. 


나는 주로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했을 때, 혹은 정말 피하고 싶은 뭔가를 앞두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몸에 증상이 나타나는 편인데 손가락에 피어나는 물집들이 가장 분명한 신호이다. 이번 주 어느 요일이었던가 왼손 중지 손가락 마디에 한 덩어리의 물집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틀 전부턴 오른쪽 턱 어금니에 묵직한 통증이 느껴지더니 오른쪽으로 음식을 씹기가 불편한 지경에 이르렀다. 예삿일이 아니다 싶어 다음 날 원래 일정을 취소하고 치과에 갔다. 


거의 삼 년 만에 간 치과여서 새로 엑스레이를 찍었다. 큰 충치라도 생겼나 보다, 하고선 의사 선생님을 기다렸는데 치과 의자에 누운 나를 보더니 '무슨 힘든 일 있어요?' 라며 심리상담사나 할 법한 말을 건넸다. 


-네? 뭐.. 요새 스트레스를 좀 받긴 했어요. 

-아프다는 그 이는 신경치료 한 이에요. 엑스레이 보니 충치도 전혀 없고요. 

 

흠. 

이젠 스트레스 증상에 어금니 통증도 추가다.


프랑스에 살던 시절, 처음 이 물집들이 모습을 드러냈었다. 소아과부터 산부인과까지 전부 보는 동네 주치의 선생님이 처음으로 소견서를 적어주며 전문의를 찾아 가랬고, 특히 그 해 겨울, 발가락 사이에 난 물집들 때문에 삶의 질이 극도로 떨어졌을 때 보험도 되지 않는 비싼 병원비를 내고 피부과 의사에게 갔었다. 

그 의사는 '요즘 힘든 일 있어요?'로 말문을 뗐다. 물이라던가, 찬 바닥이라던가, 알레르기 때문이라던가 등의 분명한 원인이 있을 거라 생각한 나로선 너무 생각지 못했던 질문이었던지라 "네? 그게 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졸업 시험을 앞두고 있네요"라는 원인을 찾아냈었다. 


그 후로도 종종 삶에 피할 수 없으나 넘어서야 할 큰 이벤트들을 마주할 때마다 열심히 습진 연고를 바르며 '이 시간도 지나가리라' 하며 넘겨 왔었다.


이렇듯 몸의 신호엔 이제까지 나름의 분명한 원인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건 좀 다르다. 뚜렷한 원인 없이 그저 지금, 여기, 삼십 대를 살아가는데서 오는 답답함, 막막함, 어찌할 바 모름, 돈 많이 번다고 나아지나? 과연 그럴까? 그렇다고 원하는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건 아님에서 오는 좌절 등 아무것도 가늠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언제 끝날지 모를, 어쩌면 이제 막 시작된 고민이 원인이었다(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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