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이야기 책

백설공주

2012. 4. 30. 논제 - 현대판 백설공주

by 자리톡 CEO 박병종

동화는 아름답지 않다. 아름다운 것은 공주 한명이다. 그렇기에 동화는 아름답지 않다.


나는 왕비다. 사람들은 나를 왕비라고 쓰고 왕비호라 읽는다. 거울이 그녀를 비춘 순간 아름다움의 기준은 '눈처럼 새하얀'으로 바뀌었다. 나는 누구보다도 의붓딸인 그녀에게 다정했지만 그녀가 아름다움을 독점한 순간부터 그럴 수가 없었다. 아름다움은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어서 그녀가 아름다움의 기준이 되면 검은 피부를 가진 나는 비호감이 된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어차피 아름다움을 두고 서로 쟁투하는 것이 우리 여자들의 속성이 아니던가. 오늘도 나는 TV에 나온 백설공주의 모습을 동경하는 동시에 인터넷 게시판엔 독사과같은 독설들을 내뱉는다. 그렇다. 독설공주. 나도 공주라는 것을 잊지 말라.


나는 난쟁이다. 키가 180이 되지 않는 루저다. 어렸을 때 그 동화를 읽고부터는 키 큰 여자는 무조건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사실 나도 그녀들의 늘씬한 모습을 동경하지만 언제 버려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내 무의식을 점령한지 오래다. 트라우마. 여자를 사귈 때도 키 큰 여자는 배제한다. 그것은 내가 그녀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그녀가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과 어장관리에 대한 피해의식 때문이다. 어차피 그녀는 내게 작은 관심의 떡밥을 던지다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면 반짝이는 백마 뒷좌석에 탑승할 것이므로.


나는 왕자다. 백설공주는 백마에 환장한다. 가난한 왕자이기에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백마를 렌트했다. 이마저도 내겐 부담스럽지만 신용카드는 내게 용기를 준다. 사실 그녀의 사랑을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백마를 끌고 나타나 누워있는 백설공주에게 키스만 하면 그녀는 내게 넘어온다. 대게 공주들은 다 그렇다. 이미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그랬고 인어공주도 사실 해변가에서 백마를 타고 있는 나의 모습에 반한 것이었다. 평민인 신데렐라는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다만 달콤한 키스와 뜨거운 사랑 뒤에 내게 남는 것은 카드 돌려막기와 신용불량자라는 딱지다. 백마 없는 나의 진심은 공주는 커녕 평민도 받아주지 않는다.


나는 사냥꾼이다. 나는 죽여야 할 백설공주를 풀어줌으로써 제 2의 인생을 살게 됐다. 동물 가죽 벗기던 나의 칼솜씨는 성형술로 발전했고 거울과의 동업은 우리 둘 모두에게 득이 됐다. 수많은 왕비들은 거울에 비친 백설공주의 모습을 보고 내게 찾아와 백설공주처럼 만들어 달라고 한다. 이제 와 고백컨데 사실 백설공주는 내 처녀작이다. 어렸을 때는 단지 얼굴이 희다 했을 뿐인데 그녀가 왜 갑자기 예뻐졌겠는가. 내가 만들고 거울이 그 이미지를 아름다움의 표준으로 끊임없이 재생산 하면 돈 굴러들어오는 건 시간문제다.


나는 백설공주다. 동화는 아름답지 않다. 아름다운 것은 한명의 공주다. 오늘도 나는 이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보톡스라는 독사과를 맞는다. 그렇기에 동화는 아름답지 않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있는 음식의 역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