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0. 30.
아버지가 죽었다. 학교에서 축제가 한창이던 5월 13일 20시 11분, 그는 남아있는 마지막 숨을 힘겹게 몰아 쉬며 눈을 크게 뜨고, 그렇게 멈춰버렸다. 뭔가 다음 행동이 발생해야 할 것 같은데 필름의 컷처럼 정지된 그의 모습은 내 머리 속에 뚜렷이 박제되어 버렸다. 삶과 죽음이 서로 등을 돌리는 틈을 타 나는 그의 이마에 마지막 키스를 했다. 시퍼런 차가움이 느껴졌다. 하얀 천이 그를 덮었고 앙상한 발가락만이 흔들리는 침대 위로 덜컹거렸다. 나는 영안실로 향하는 그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죽음과 대치하고 있었지만 무기력 하지 않았다. ‘길어봐야 이틀’이라는 의사의 벽력 같은 선고 뒤에도 삶에 대한 갈망을 야수처럼 드러내었다. 거친 숨을 몰아 쉬면서도 명료한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눈을 번뜩였다. 총 맞아 죽어가는 광포한 사자처럼. 나는 그의 옆에서 며칠 동안을 지켰다.
만약 아버지를 부검했다면 그의 사인은 이렇게 나올 것이다. 희망의 끈을 놓고 무기력하게 그의 죽음을 기다린 아들의 눈빛. 죽음을 눈 앞에 두고 두려워하는 한 인간의 처절한 호소에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모든 것이 다 괜찮아 질 것이라고만 되풀이 했다.
지금 와서 고백컨데 나는 그 때 아버지를 어떻게든 살려야겠다는 생각보다 앞으로 어머니와 동생들을 내가 어떻게 먹여 살려야 하는가에 대한 차가운 걱정들이 앞섰던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상상만 해도 왈칵 쏟아지던 눈물이 어쩐 일인지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아버지 옆에 병풍처럼 위치해 있었을 뿐이었다.
아버지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시곤 했다. 인공 호흡기로 겨우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도 그의 눈은 아들의 눈동자를 향했다. 내 눈에서 어떤 의미를 찾으시는 듯 했다. 하지만 그가 내게서 찾아간 것은 ‘절망’이었다. 자신이 가장 믿던, 자신을 꼭 살려주겠다고 약속했던 큰아들의 눈 속에서 그가 본 것은 절망이었다. 그 때 아마 아버지는 길었던 싸움을 끝낼 준비를 했던 것 같다.
그의 마지막은 기도의 아멘 소리와 함께 왔다. 목사의 마지막 기도가 끝나자 아버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필사적으로 잡고 있던 숨줄을 놓았다. 친족들과 교인들이 빙 둘러싸고 있던 그 순간, 잠시간의 적막이 흐르고 내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아버지의 죽음은 이렇게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