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정부투자 확대로 일자리 창출
기술발전에 따른 일자리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기본소득이 논의되고 있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방법이다. 기본소득이 의미가 있으려면 인당 월 80만원은 지급해야 하는데 필요재원만 500조다. 대규모 증세 없이는 불가능 하다. 사람은 공짜로 받는 기쁨보다 증세로 인한 상실의 고통을 더 크게 느낀다. 기본소득이 말하는 소비 진작을 통한 경제 성장은 정작 일하는 사람들의 동기 저하로 무너지게 된다.
인플레이션도 문제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덩어리 돈이 한꺼번에 풀리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본원통화량의 변동 없이 화폐의 회전속도 증가만으로도 총 통화량은 증가한다. 이는 코로나 재난지원금이 풀렸을 때 삼겹살, 소고기 가격이 급등했던 경험 등을 통해서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돈을 받아봐야 인플레이션으로 실질 가처분 소득이 줄어 재분배 효과가 떨어진다. 모두에게 명품백을 나눠주면 모두가 돋보이는 것이 아니라 받은 명품의 가치만 사라지는 것과 비슷하다. 애초에 보편적 분배는 선별적 분배에 비해 효율이 떨어지는데 인플레이션은 그걸 더 악화 시킨다.
자동화 기술 도입으로 기성 기업은 고용을 축소할 것이다. 기업의 생산성을 고려하면 고용을 강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해결책은 정부 투자에 기반한 창업 인해전술이다. 초기 창업기업(스타트업) 투자의 허들을 대폭 낮춰 최대한 많은 창업가와 소속 임직원에게 도전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나는 이를 기본소득에 대립시켜 ‘기본투자’로 부른다. 물론 아무리 투자 허들이 낮아도 탈락하는 창업가는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투자 받은 스타트업에서 역량을 쌓은 뒤 다시 도전하면 된다. 투자 활성화로 늘어난 일자리에서조차 배제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고용보험과 재교육 프로그램, 각종 복지 시스템은 이들을 위해 존재한다.
기본투자의 재원은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을 조정하면 확보할 수 있다. 올해 한국의 국가 R&D 예산은 29조원으로 GDP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문제는 R&D 성공률이 무려 98%에 달하지만 사업화 비율은 20%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영국(70.7%), 미국(69.3%)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연구 성공에 대한 인센티브는 없고 실패 시 다음 연구 지원을 받지 못하는 패널티만 있어 정작 필요한 어려운 연구는 회피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대학과 국책 연구소에 자회사 방식의 창업을 독려하고 기초과학 연구를 제외한 국가 R&D 예산을 해당 창업 기업에 투자하자. 연구자는 성공에 대한 인센티브가 생기니 시장이 원하는 분야를 찾고 더욱 열심히 연구할 것이다. 정부는 창업 기업 투자 재원을 마련해 일자리 창출 기회를 얻고 국가 R&D의 옥석도 가릴 수 있다.
95%의 스타트업이 망한다며 정부의 투자 확대가 세금 낭비라는 지적도 있다. 벤처캐피탈(VC)을 활용한 전문적인 심사와 모태펀드의 지분투자 방식으로 재정 낭비는 최소화할 수 있다. 기본투자는 망한 회사 임직원을 보호하는 사회안전망 역할도 수행한다. 기본투자를 발판으로 재창업에 도전할 수도 있고 늘어난 일자리 덕에 재취업도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 성공한 5% 기업의 투자 회수금은 실패한 95% 기업의 투자 손실액을 만회하고도 남는다. 정부는 성공 투자 회수금으로 다른 혁신 기업에 재투자 할 수도 있다. 성공한 스타트업은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막대한 세금을 내며 국가의 성장을 견인한다.
그럼 실패한 95% 기업은 아무런 의미도 없을까? 보통 창업가의 성공은 수많은 실패 경험을 쌓은 뒤에야 찾아온다. 실패 경험이 성공의 원재료인 셈이다. 실패 기업에 투자된 재원을 손실이 아니라 다음 라운드 혁신 성공을 위한 사회자본 투자로 볼 수 있는 이유다. 해당 기업에서 일했던 임직원들이 실전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과 통찰은 그 사회에 지적자본으로 축적된다. 이는 국가 R&D의 목표와 일치하며 미래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
아무리 실패한 스타트업도 일자리 창출에는 성공한다. 기본투자가 탁월한 일자리 정책 수단이 될 수 있는 이유다. 정부가 의도적으로 투자 허들을 낮춘다면 투자 손실액은 커지겠지만 일자리를 더 늘릴 수 있다. 민간에서는 손해보는 투자는 하지 않겠지만 정부는 일정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일자리를 늘리려 할 수 있다. 마치 중앙은행이 통화량으로 물가와 실업률을 조절하듯 정부는 스타트업 투자 손실액과 일자리 창출규모의 트레이드오프 관계를 조절하며 정책 목표를 달성하려 할 것이다. 결국 기본투자는 정부지출 최적화를 통한 성장 및 일자리 창출 전략이다.
기본투자도 결국 기본소득처럼 세금으로 할일 없는 사람 먹여 살리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둘은 매우 다르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반면 국가 발전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면 기본투자는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도 혁신 성장과 일자리 창출, 사회자본 축적이라는 3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기본소득이 불편한 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을 기술발전 과정에서 탈락할 잉여인간으로 상정한다는 것이다. 난 그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일자리가 필요할 뿐이다. 새로운 일자리는 성공한 기업의 생산직이 아니라 실패할 기업의 연구직에 가깝다. 한 회사에서의 안정이 아니라 여러 회사에서의 도전일 것이다. 일자리는 포기할 것이 아니라 만들어야 한다. 우리에겐 더 많은 창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