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뽑았던 날들도 있었지
흰머리 한가닥을 보면 기절할 듯 놀라던 날들이 있었다.
세상에 내가 흰머리가 나다니, 빨리 없애 버려야지! 보이는 족족 뽑았다,
며칠 지나서 또 나면 또 뽑고 비슷한자리에 날때마다 중요한 미션을 치르듯 뽑아댔다,
희안하게 방송국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기분 안좋은 날이면 다음 날 꼭 더 심하게
흰머리가 자라는 것 같았다.
열심히 뽑고 또 뽑아도 나는 건 매한가지였다. 거기다 기사를 봤는데 그렇게 뽑은 흰머리는
나중에 머리숱을 없애는 원인이라 했다. 아뿔싸.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몇년만에 가장 아픈 시간을 겪었다. 인후염이 걸렸었는데 목소리가 아에 나오지 않아 방송국에
출근 자체를 못했다. 내가 무용지물로 느껴졌다. 그때 흰머리가 배로 더 난거 같다.
그 후 생각했다. 뽑는게 무슨의미가 있는가. 건강한게 중요하지.
염색으로 가려보거나, 아에 뽑거나 속알머리로 감춰보아도 이제 그아이는 나와야 할 자리에
나오는 것이다.
아무리 네가 젊어보이려 애를 써도, 그자리에 내가 나올테니 이제 차츰 노화가 오고 있음을 인정해
몸이 말해주는 것만 같다. 다르게 생각하니 마음이 달라진다
몸을 조심조심해서 쓰라는 신호 아닐까? 예전처럼 엄청나게 뜀박질을 하는 것도 무턱대고 밤을 지새는 것도이제는 무리가 될수 있으니 흰머리가 올라오는 것 처럼 네몸도 조심하라고, 하나씩 올라올때마다 너도 조금은 천천히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해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슬프기보다 예행연습같아 오히려 고맙게 느껴진다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슬프다 생각했던것도 날 위로해주는 때가 있다. 뜬금없이 나는 몇가닥의 흰머리에 이런 마음을 느꼈다. 나도 이런걸 느낄줄은 몰랐다.
아에 하얗게 머리를 하신분들을 보면 참 멋지게 나이든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다. 그렇게 일부러 하얗게 지낼수는 없겠지만, 뽑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흰머리가 보여도 놔둘수 있는 내공 정도는 생겼다. 그러면서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나이가 되어 간다. 내가 건강한게 더 중요하다, 누군가에게 보이는 것 보다 내 건강이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