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자립을 위해 어떻게 하면 수입을 올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끝에 선택한 책이 있다. 바로 '생각하는 인문학’과 ‘리딩으로 리드하라'이다. 예전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와 같은 경제적 부를 이룬 유명인이 공통으로 하는 행위가 고전 인문학 탐독이다.
위위 두 책은 정치, 경제를 비롯한 수학, 물리, 문학, 음악, 미술 등 한 분야 내지는 여러 분야에 오리진이 된 이들의 치열한 고전 독서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문 고전은 지식인과 지배층 더 나아가서 부강한 나라들의 전형적인 자녀 교육법이다. 즉 사교육 시스템이다. 반대로 공교육은 천편일률적인 주입식 교육을 통해 생각하지 않도록 두뇌를 우둔하게 만든다. 특히 우리나라는 공교육의 온상이다. 이는 일제 강점기를 거쳐 미국의 보호 아래 이루어진 역사의 어두운 흔적이다. 일제 강점기 전 우리나라는 서당과 성균관을 통해 인문 고전을 비롯한 역사 고전과 같은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 항상 책을 가까이하며 토론하는 문화가 자연스러웠다.
일본은 지식의 힘이 무섭다는 것을 미리 알아차리고 ‘조선교육령’을 선포하고 모든 사당과 성균관을 폐쇄하여 책이란 책을 모두 불살라 버렸다.
그렇다면 옛 성인의 책에는 무엇이 담겨 있길래 왕족들과 귀족들 그리고 정치하는 사람이 그토록 위편삼절의 치열한 독서를 했던 것일까?
나는 그것이 너무도 궁금했다.
그러다 알게 된 사실이 바로 사색이다.
성인들의 책에는 지식이 아닌 지혜가 담겨 있던 것이다. 그 지혜를 알고자 발분망식하며 ‘다상량’을 했던 것이다. 독서의 끝은 사색인 것이다.
생각하는 힘이야말로 시대를 읽을 수 있는 지혜를 기를 수 있는 것이다.
제갈공명이 그랬고 조선을 세운 정도전도 와신상담의 중심엔 치열한 사색이 있었다.
나는 내친김에 공자 평전을 읽고,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라는 책을 꺼내 읽었다. 정말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분명 한글을 읽고 있는데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모국어로 읽는데도 이런데, 한문, 라틴어, 그리스어로 된 원어로 읽는 옛 성현은 얼마나 막막했을까?
그런데 “이렇게 어려운 책을 읽으면서 만약 조금이라도 그 의미를 깨닫게 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가슴이 벅차오르지 않을까?
물론 시간이 걸리고 인고의 순간을 버텨야 하지만, 그 ‘문치’를 깨닫게 되면 천재의 두뇌 시스템에 접속하게 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도 ‘책을 읽고 지식을 얻는 것은 백과사전에 불과하지만, 천재는 지혜의 영역이다.’라는 말을 했다. 지혜는 책을 읽은 후 자신과 저자에게 캐묻는 사색을 거쳐야 비로소 얻게 되는 영역이다.
순간 예전에 읽었던 ‘몰입’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사고를 통해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한 난제들을 풀며, 자신의 몰입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냈다.
책 저자는 서울대 재료공학과 황농문 교수다.
이 책에서도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연구를 하면서 내내 그 생각을 하면서 지냈다. 또는 생각하고 생각해서 아흔아홉 번째까지는 틀리고 백번 째야 해서 맞는 답을 찾아냈다고도 했다. 그 밖의 모든 천재의 습관에는 깊은 사색이 있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천재들의 사색이 바로 몰입이다.
또한 스님들이 항상 하는 화두선과 같은 것이다.
이처럼 나는 2주간 사색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몰입에 관한 책까지 섭렵했다.
그리고 지금은 몰입 훈련 중이다.
몰입의 핵심은 조바심을 버리고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 한 주제를 가지고 끝 모를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하다 졸리면 그대로 머리를 기댄 채 의자에서 선잠을 자고 또 깨어선 처음 화두에 몰입하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처음엔 10분도 못 할 정도로 힘들었다. 자꾸 잡념이 들어 온다.
목표한 주제를 생각하다가 어느새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다.
지금은 1시간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생각 근력이 생겼다. 그러나 날카로운 두뇌 시스템을 갖추려면 아직도 멀었다. 생각을 연속적으로 하다 보니 예전 조급했던 마음이 차분해진 점은 의외의 수확이다.
처음 책을 읽게 된 동기로 돌아가자.
경제적 자립을 위해 책을 들었다. 이왕 몰입하는 거 일에 대한 화두로 바꿔야겠다.
“어떻게 하면 일을 좋아할 수 있을까?” 로 주제를 잡고 명확한 아이디어가 나올 때까지 몰입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