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아영 Apr 26. 2017

'엄마 정치' 왜 엄마들은 만나서 울었을까

“저는 72년생이에요.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저보다 10년 후배들이 겪는 상황이 저하고 똑같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정말 끔찍했어요. 이제 저희 큰딸이 대학생이에요. 4년 뒤에 겪을 일인데 저때랑 상황은 변한 게 없고 오히려 나빠졌어요. 일자리가 없어지기까지 했으니. 마음이 급해졌어요. 그래서 이 자리에 나오게 됐습니다.”


엄마들이 만났다. 지난주 토요일 ‘엄마 정치’ 첫 모임이 있었다. 한겨레신문 토요판에 ‘엄마 정치’를 연재하는 장하나 전 국회의원이 제안해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만나기 시작한 엄마들이 드디어 오프라인에서 만난 것이다.


많이 올까, 어떤 사람들이 올까 궁금해 하며 참석했다. 30여명의 엄마들이 참석했고 둥글게 앉아 자기소개만 했는데 거의 3시간이 걸렸다. 초반에 자기소개를 해서 남은 시간은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지만 지루한지 몰랐다. 어쩜 이렇게 다들 비슷한지. “어른하고 이야기하고 싶어서 왔어요. 아이들 행동은 이해가 안 되잖아요. 얘는 ‘왜 울지’ 하게 되고.” ‘오 나랑 똑같아’ 하는 부분에서는 다들 웃고 박수치고 또 웃었다.


그런데 웃는 것만큼 우는 엄마들이 많았다.


“시어머니가 ‘네가 그만둬야 하지 않겠냐’ 당연한 말투신 거예요. 저는 여자니까 급여가 적고 또 여자니까 제가 그만두는 게 당연하다는 말투. 저도 제가 하고 싶은 일 있지만 다 접어야했어요.”


“육아의 즐거움은 모르고 살았어요. 남편은 새벽 6시에 나가서 애들 자면 들어오고 주말에도 일하고. 경력 단절에 대한 상실감이 커서 내 인생이 없어지는 기분이었어요. 저 자신이 없어지는 기분요. 전 빚을 져서라도 일을 그만두지 말라고 후배들에게 이야기해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내 잘못이 아니다. 작은 힘이라도 연대하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생각만으로 바뀌지 않잖아요.”


“남편에 대한 원망? 배신감도 있어요. 10년 이상 경계에 머물러 있다는 자괴감 같은 것.”


“임신한 사실을 계속 회사에 알리지 않았어요. 어느 날 딱 알리려고 마음먹고 있는데 상사가 그러는 거예요. ‘일을 잘하던 직원들도 애 낳으면 별 볼일 없더라고.’ 말을 못했어요.”


엄마들은 자기 이야기를 하다가도 울컥하고 다른 엄마들의 이야기를 듣다가도 눈물을 훔쳤다. ‘경단녀’가 되고 만 현실과 육아를 엄마에게 떠넘긴 사회에 대한 분노, 나를 잃어버린 것 같은 상실감, 임신 사실조차 말하기 힘든 조직 분위기, 워킹맘에게 강요되는 슈퍼우먼 콤플렉스까지.



‘엄마들은 왜 만나서 울었을까.’


다들 외롭고 힘들었는데 말할 데가 없었구나. 이제서야 이렇게 마음 놓고 울면서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적인 장소를 만났구나 싶었다. 짠했다. 


첫째를 낳고 나도 많이 외로웠다. 산후우울증도 가볍게 왔었고 매순간이 '멘붕'이었다. 6개월쯤 됐을 때였나. 여름이었다. 남편이 퇴근할 시간에 맞춰 매일 버스 정류장에 나가 남편을 기다렸다. 하루 중 제일 행복한 시간. 밖에 나가 누군가와 함께 집에 돌아오는 시간. 혼자가 아니었던 시간. 하루종일 말 못하는 아이와 단둘이 있는 것은 너무 외로웠다. 그냥 ‘말’이 하고 싶었다. 친정엄마가 우리 집에 와주시면 그저 좋았다. 혼자가 아닌 것 같아서. 지금은 여유가 좀 생겼지만 첫째를 키울 때는 정말 힘들었다. 모든 게 처음이었다. 아이도 세상이 처음이었지만 나도 엄마가 된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서툴렀다. 예민한 첫째가 잠을 못 자고 울면 외로웠다. 아이를 안고 길거리에 혼자 서 있는데 아무도 돌아봐주지 않는 기분. 괴로웠다. 아이가 우는 이유를 제대로 알 수 없어서, 우는 소리를 계속 듣기 힘들어서, 잠을 못 자서, 그저 엄마 노릇이 힘들어서. 엄마 노릇은 너무 힘들었다. 아 근데 왜 이렇게 힘든지 아무도 안 알려줬냐고요.


다들 고통스러웠는데 그동안 공적으로 이야기할 통로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봇물 터지듯이 나오는 엄마들의 비명. 그동안 친구들과 하소연은 나눴겠지만 허망했을 것이다. 나아지는 것이 없으니. 나를 괴롭히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어차피 말로 끝난다는 것을 아니까.


“친정엄마가 손녀 때문에 경단녀가 됐어요. 딸이 2015년생인데 바뀌지 않겠구나. 이렇게 해결을 각자 해야 하는 상황이 납득되지 않아요. 흩어져 있는 것들을 한 목소리로 모으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요." 


첫째 휴직 뒤 복직했을 때 제일 체력이 달렸다. 첫째가 잠을 제대로 못 자 늘 수면부족인 상태로 회사를 다녔고 일에도, 육아에도 한쪽 다리만 걸쳐있는 기분, 그러다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은 기분. 그때 머릿속에 달고 다녔던 질문은 하나였다. ‘이 일상이 지속가능한가.’


답은 하나였다. ‘지속가능하지 않다.’ 그렇다면 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답은 나오지 않았다. 화가 났고 화가 나서 우울했다.


그러다 깨달았다. 아무도 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대통령이 바뀌어도, 국회의원들이 바뀌어도 내 문제는 후순위라는 것. 다들 저출산을 걱정하는 척 하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 아이들에 대한 투자는 늘 후순위라는 것.


그래서 ‘그렇다면 내가 바꿔야지’ 싶었다. 교육 담당으로 취재하면서 누리과정 예산 문제에 대해 기사를 쓸 때 지켜봤다. 이익단체들이 힘을 합쳐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관철시키는 모습을. 그렇다면 부모들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누리과정 예산을 가지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갈등할 때 부모들은 어떤 목소리를 냈나. 이익단체들은 국회의원을 찾아가고 시의원들을 찾아가고 집회를 열었다. 아이들을 가진 부모들은 어떻게 했나.


그러다 둘째를 임신했고 다시 육아휴직에 들어왔다. 국정농단으로 촛불시위가 계속되고 대통령이 탄핵되는 모습을 지켜본 2016년과 2017년. '촛불혁명'은 멋졌지만 그때 나온 목소리들이 실현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아주 오랜 시간. 다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지만 대통령이 바뀐다고 해서 세상이 확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내 문제에 대해 내가 해결할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아무도 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걸 이제 안다. 그래서 올해 초 유치원 운영위원에 지원했고 운영위원이 됐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엄마 정치’ 모임도 그래서 참여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아서. 나는 엄마고 무엇이 문제인지 아니까.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금방 큰다. 중앙 정치가 해결해줄 거라고 기다리고 있기엔 당장 아이들에게 닥친 문제들이 너무 많다. 


독일에 출장갔을 때 정말 놀랐다. 오후 5시 지역 개발 관련 공청회에 500명이 넘는 주민이 모여 있었다. 그 이른(?) 시간에 주민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자기 문제는 스스로 논의해서 결정한다는 게 정녕 멋지고 부러웠다.  게다가 세입자협회가 있었다! 세입자들의 협회가 있다니. 2년에 한번씩 임대료율을 재조정하는데 지방정부-임대인협회-세입자협회 3자가 테이블에 앉아서 결정한다고 했다. 정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세입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단체가 있으면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엄마들을 대변하는 단체가 있으면 달라지지 않을까. 늘 후순위로 밀리는 아이들 문제가 조금 빨리 해결되지 않을까.


육아 문제는 엄마가 전문가다. 한 참석자가 말했다. “육아에는 주거, 사교육 모든 문제가 겹쳐져 있어요.” 육아에는 모든 문제가 겹쳐져 있다. 부모가 일찍 퇴근하지 못해서 아이들을 학원을 전전하게 되는 것에서 사교육 문제가 나오고 집값과 아이들 교육 문제는 떼놓을 수도 없다. 그중 핵심은 장시간 노동 문제다. 일하는 사람들이 저녁이 없는 삶을 사니 (거의 대부분 엄마가) 독박육아를 하게 되고 ‘독박’이다보니 엄마가 체력이 달리고 힘들어 아이에게 화내게 된다.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안 좋은 환경 ‘독박육아.’


우리는 이 ‘독박육아’를 어떻게 ‘평등육아’로 바꿀 수 있을까. 아이들을 키우는 행복을 엄마와 아빠가 함께, 사회가 함께 나눌 수 있을까. 결국 정치로 풀어야 하는 문제다. 장하나 전 의원은 말했다. “육아에 관해선 무정부 상태죠. 임계점에 달한 것 같아요. 엄마들의 문제를 정치가 모르는 게 아니에요. 19대 빼고 17대, 18대, 20대 국회에 모두 저출산특위가 있었어요. 압력 행사를 안 하니까 후순위로 밀리는 거죠. ”


외롭고 힘들었던 엄마들이 만나서 마음을 나누기 시작했다. 엄마들의 첫 만남은 눈물범벅이었지만 만남이 지속될수록 울 일은 줄어들고 함께 웃게 될 것이다. 이제 시작이니까. 모임 후 이름을 다시 정했다. ‘정치하는 엄마들 준비위(가칭).’


“‘엄마 정치’가 시작됐다!”

p.s. 함께 하고 싶은 분들은 언제든지 https://www.facebook.com/political.mamas

문을 두드리시길. 문은 활짝 열려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좋은 엄마가 될 줄 알았는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