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위대한 생각에 관해
약 10여 년 전에 이 영상을 보고 감동에 벅차
창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남들과 같은 틀에 박힌 마라톤을 뛰지는 않겠다고,
나만의 마라톤을 찾아 떠나겠다고
(지금보다는) 젊은 시절 호연지기를 품고 도전해서
구멍가게 스케일이었지만
나름의 흥망성쇠도 경험했다.
즐거운 인생이었다.
이번주로 정확히 10년 되었다.
법인은 조만간 폐업 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다.
4~5년 정도 전부터 운영은 사실상 중단했다.
진즉에 폐업하고 정리했어야 하는데, 미루고 미루다 이제 실행한다.
마지막으로 함께했던 팀원에게 내용을 알렸고, 절차에 들어가기로 했다.
회사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사실 하고싶은 말은,
장렬한 폐업 얘기는 아니고,
지난 10년간 변해온 자신에 관한 것이다.
시작한다.
창업!
요즘은 많이 시시해진 단어지만,
그 시절엔 나름 가슴 뛰는 단어였고, 그 가슴 뜀을 가지고 시작했었다.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겠다.
세상 필요한 무언가를 만들고,
나의 족적을 남겨서,
자신을 증명하겠다!
라는 생각이었다.
그때는 그랬다.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 봐도
그때는 그랬다.
실제로는 그 생각의 순서가 반대로였다는 것은 빼고.
이제 보니 생각의 시작은 '자신을 증명하겠다'부터였다.
젊은 시절이었다.
스스로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었다.
그 이전까지의 삶에서 세상이 제시하는 기준들 대부분을 꽤 우수한 성적으로 충족하며 살아왔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해오던 그대로 앞으로도 거침없이 달려갈 테다.
젊은 시절이었다.
시간이 흘러 오늘에 이르렀다.
요즘 나는 많이 차분하다.
그렇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여전히 혼란스럽다.
불안과 혼란의 뿌리가 어디일까,
생각을 파고 파서 내려가다 보니
다시 같은 문장이 나왔다.
'자신을 증명하겠다'
조금 안타깝지만,
이 문장에 대한 강박이 오늘까지의 나를 끌고 왔다.
나의 능력, 나의 통찰, 나의 노력
나의 무엇무엇, 그리고 또 무엇무엇.
그걸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왜 그런 욕망이 있었는지 이제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자신을 증명하겠다'
얘가 날 끌고 온 게 아니라,
내가 끌려온 거였다.
다른 사람들만큼(또는 보다) 뛰어나야 한다.
다른 사람들만큼(또는 보다) 잘 살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만큼(또는 보다) 인정받아야 한다.
누가 한 말인지도 기억이 안나는 이 이야기들에
목줄이 메인 채 끌려온 것이다.
문득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창한 우주도 아니고, 그 안에 먼지 같은 지구 안에서,
한국이라는 나라 안에서, 어느 도시에서,
반경 30km나 될까 말까 하는 생활권 내에서,
많아 봤자 100명 정도나 될 듯한 준거집단 안에서,
저런 생각을 하고 산다는 것이 우스웠다.
이 와중에 더 웃픈 건
내 목에 목줄을 멘 것도 나 자신이었다는 것.
'자신을 증명하겠다'
대체 왜 무엇을 누구에게 증명하겠다는 것인지...ㅋㅋ
강박, 안타까운 강박.
그의 첫 창작물(?)이었던 회사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지난 시간 함께 동고동락했던 이 강박이라는 친구도 같이 떠나보내려고 한다.
그러나 쉽게 떠날지는 모르겠는 것.
알겠는 것도 있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에 대해 증명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
다만 스스로에게 증명해야 할 뿐.
삶의 의미란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라나…
여기저기서 맨날 들었지만, 이해되지 않았던 말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세상에 다른 뛰어넘을 것은 없다.
나 자신만 뛰어넘으면 된다.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다.
이걸 깨닫는데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