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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기자의 긁적끄적 Apr 06. 2024

여기도 MZ, 저기도 MZ…

Mㅣ ZZㅣ 겠습니다

교수는 강의마다 ‘빻은 소리(부적절한 발언)’를 한마디라도 하지 않으면 그날 밤 몸 어딘가에 뿔이 날 거라고 굳게 믿는 사람 같았다. 레퍼토리는 매번 달랐다. 왕년에 한 꼰대 짓부터 ‘요즘 애들’에 대한 개탄, 은근한 성차별 발언까지, 교수는 거의 모든 포지션이 소화 가능한 ‘올라운더’였다.


여기서 그쳤다면 그저 ‘흔한 중년 남성 교수’ 정도였을 것이다. 발언의 수위도 사실 그리 높진 않았다. 그런 그가 유독 기억에 남은 건, 피식 웃으면서 마지막에 꼭 붙이던 대사 때문이다.


“아, 요즘은 이러면 큰일나지?”


아니 그걸 알면 좀… 하나도 안 웃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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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떤 계기로 그 교수를 다시 떠올렸다. 연합뉴스의 내 또래 기자가 퇴사하며 사내 게시판에 남긴 글을 읽고 나서다. 그는 회사의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지적하면서 이렇게 썼다.


“문제를 제기한 후배 피해자들은 어느 순간 ‘무서운 요즘 MZ’가 돼 있고, 문제아로 찍혀 눈치를 봐야 한다.”


읽자마자 작게 한탄했다.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청년이라면 누구든, 저 말을 설명 없이 바로 이해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기성세대가 ‘MZ’를 말하는 속내가 결국 뭔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구분짓고, 편한 대로 해석하고, 이용해 먹으려는 꼼수’임을.


어딜 가나 ‘MZ’ 이야기다. 다들 신이 나서 ‘MZ’, ‘MZ’ 하는 모습을 보자니 신명도 이런 신명이 없다. 모든 건 MZ를 위해 만들어졌고, 모든 정치인은 MZ를 떠받드는 것 같다. 그러나 MZ들이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건 “요즘 이러면 큰일난다”며 이죽거리는 입술들이다. 참다 참다 문제 제기하면 “무서운 MZ”라며 조롱하는 얼굴들과 마주하게 된다. 더 많이 마주치는 건, 모멸감을 꾸역꾸역 씹어삼키다 목이 메어 화장실에서 몰래 끅끅 울고 있는 또래들이다. 우린 학교에서부터 ‘밀려나면 끝’이라는 한 줄만큼은 확실하게 외웠기에, 비웃고 괴롭히고 성희롱하는 당신들 밑에서 어떻게든 ‘존버’한다.


어떤 청년들은 ‘MZ의 자격’조차 얻지 못한다. 지금 한국에서는 ‘인서울’ 대학을 나오고, 수도권에 살며, 적어도 대기업이나 공기업 사무직 정도는 돼야 비로소 ‘MZ’가 된다. 최상위 극히 일부인 그들의 목소리만이 ‘MZ의 요구’로 공론화되고, 오직 그들만 정부기관이 주최하는 ‘MZ와의 대화’ 행사에 초대된다.


영화 <다음 소희>의 주인공은 전북 특성화고 출신으로 콜센터에서 착취당하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를 ‘MZ’라고 불러준 사람은 없었다. 대학 대신 간 SPL 공장에서 숨진 23세 여성 노동자를, 발전소에서 세상을 떠난 24세 비정규직 김용균을 ‘MZ’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나.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우리 세대엔 이들이 더 많을 텐데, ‘MZ’를 검색하면 깔끔한 오피스룩에 사원증을 목에 걸고 웃는 청년들의 삽화만 나온다. 휴가지에서 일하는 ‘워케이션’이 MZ에서 인기란다. 미디어도 한패다.


그러니 어차피 멋대로 ‘MZ’, ‘MZ’ 떠들 거라면 좀 안 보이는 곳에서 해줬으면 좋겠다. 현직 MZ로서 정말 24시간 ‘노이즈 캔슬링’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에어팟을 끼고 일하는 MZ 캐릭터 ‘맑은 눈의 광인’처럼. 당신들 때문에 능률이 떨어진다.


이 글은 <주간경향> 1518호(2023.03.13)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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