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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기자의 긁적끄적 Mar 13. 2024

악덕사업주 대한민국

'공'이라는 글자 뒤 가려진 상처에 대하여

대학생 때 노량진 고시촌의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꽤 큰 고깃집이었는데, 점심시간이면 학원가에서 쏟아져나온 학생들로 바글바글했다.


공무원 준비생이나 경찰·소방 준비생, 교사 준비생들이 테이블마다 삼삼오오 모여 점심특선 철판돼지볶음을 앞에 놓고 수다를 떨었다. 길고 빡빡한 수업시간 중 잠깐의 단비, 단비같은 잠깐. 내 또래인 그들에게 희고 뜨거운 쌀밥을 듬뿍 퍼주곤 했다. 그때 내 주변에도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한 뒤에도 집과 가까워서 노량진을 종종 찾았다. 해가 갈 수록 사람이 줄었다. 골목을 보면 ‘텅텅’이라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그때쯤 언론에도 ‘공무원 취업 외면하는 청년들’ ‘공무원 시험 경쟁률 추락’ 같은 기사들이 보도되기 시작했다. 저임금과 과로, 민원 스트레스 등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누구에게나 아프게 기억될 2023년 8월을 지나며, 나는 그 이야기의 ‘진짜 무게’를 알게 됐다. 선생님들이 계속 죽었다. 선생님들의 유서에는 민원 갑질의 경험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종사자를 보호하기는커녕, 남들 눈치만 설설 보면서 이들의 고통을 방치한 국가의 민낯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 경향신문

교사들이 눈물로 써내려간 이 기록들은, 교사들만의 일이 아니다. 일반 행정직 공무원, 경찰·소방, 공공기관 직원까지, 스스로를 ‘공노비’라 부르는 사람들의 공통된 고통이다. 국가를 사용자로 둔 이들은 모두 크든 작든 같은 경험을 갖고 있다.


많은 사기업들이 ‘손님은 왕’이라는 괴상한 말을 믿으며 고객의 폭력에 직원을 내던져 왔다. ‘공’자가 들어가는 곳은 다를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더 취약한 것 같다. 외부의 민원도 고통인데, 회사 안에서 괴롭힘을 겪어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호소하지 못하는 게 ‘공노비’의 삶이다.


법이 빗나간다면 사람이라도 울타리가 돼야 한다. 하다못해 작은 편의점도 가끔 고객의 갑질에서 직원을 보호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라는 희대의 악덕사업주는 그럴 생각이 없다. 대신 울고 있는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웃어, 참아, 문제 키우지 마, 외쳐봐 적극 행정!


왜 그럴까? 왜 부하 직원이 수모를 당하고 와도 보호는커녕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일까? 최근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인사혁신처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2022년 극단적 선택으로 순직을 청구한 공무원은 49명이었다. 전년(26명)보다 2배 늘었고, 2018년 9월 공무원재해보상법 시행 이후 최다 수치다. 또 2014년~2018년까지 공공기관에서 업무상 정신질환을 호소한 직원은 66명인데 절반 이상인 35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런 사장이라면 당장 감옥에 보내야 한다.


사후약방문 최고 전문가들인 정치인들은 또, 또 뒤늦은 대책을 콸콸콸 쏟아낸다. 바디캠, 법률지원, 통화 녹음…. 됐다. 믿지 않는다. 대신 나는 계속 기억할 것이다. 동료들의 죽음을 막겠다며 거리로 나오는 교사들에게 ‘징계’ 윽박이나 질러댄 교육부 장관과 높은 분들의 얼굴을. 국가라는 악덕사업주와 그 패거리들의 기름진 살을.


“왜 누가 죽어야만 뭘 바꾸는가?” 슬픈 질문을 영원히 반복하게 만드는 건 언제나 당신들이다.


이 글은 한국노총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 노보 <공공노동자> 13호(2023.10)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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