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리가 만난 지구인 14 _ 젠더 퀴어 이가영(가명)
QIP(Queer In Pusan)라는 단체 이름을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다. Q가 Queer의 약자인걸 알면서도 부산에 있는 단체 인줄은 몰랐다. 원래 QIP는 Queer In PNU였다. 부산대학교에 있는 성소수자 모임이었다. 몇 명으로 시작한 모임이 점점 커져 다른 학교 학생들, 학교를 다니지 않는 성 소수자도 함께 하게 되자 QIP는 Queer In Pusan이 되었다. 지금은 ‘성소수자 인권 단체’이다. 이가영은 젠더 퀴어이자,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이다.
Q . 활동한지 얼마나 되셨어요?
A . 1년 조금 넘었어요. 13개월 정도요.
Q . 어떻게 함께 하게 되셨어요?
A . QIP가 학교 외부 행사로 인권 운동을 할 때 였어요. 그게 인터넷이나 SNS로 많이 알려졌어요. 간행물도 찾아서 보니까, 이 단체는 부산에서 확실히 활동을 하려나 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가입했어요. 2016년 1월부터 7월까지 대표였다가, 6개월 임기 마치고 지금은 정회원이예요.
Q . 대표 생활 하면서 어땠어요?
A . 그 즈음 QIP가 급격히 회원 수가 늘었어요. 지금은 140명 정도예요. 회원이 많아질수록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다 모아서 조율하는 일이 적어졌어요. 행사는 크게 크게 많이 하는데, 참여하는 사람 수는 회원 수에 비해서 적어요.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기획을 항상 고민해야 했죠.
Q . 어떤 행사를 많이 했어요?
A . 파티를 많이 했어요. 드랙 파티나, 드랙 프롬도 하고요. 이번에 QIP가 ‘부산성소수자 인권단체’로 바뀌면서, 부산의 다른 인권단체들과 연대해서 행사를 했어요. 부산성폭력상담소나 청소년 인권 단체 아수나로 같은 단체들이요. 퀴어 퍼레이드처럼 부스 치고 하는 걸 실내로 옮겨서 규모는 좀 작게, 서로 무슨 활동을 하는지 알아가는 행사였죠. 하다 보니 연대체가 많아져서 요청도 많고, 행사도 제법 커졌어요.
Q . 행사를 방해하는 사람들은 없었어요?
A . 현수막을 걸면 다 뜯어가요. 누가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알고 보면 가까이에 성소수자가 있는 사람들 일거에요. 자기가 모를 뿐이지, 가장 사랑하는 존재일지도 모르죠.
부산대에서 출발한 단체니까, 부산대 내 교수님 중에 저희 활동을 반대하는 분이 계셨어요. 저희가 무슨 행사를 하면,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동성애와 에이즈의 밀접한 연관성’같은 제목으로 강연을 해요. 올 초에 했던 ‘짹짹파티’같은 연대체 행사를 하면, 반대하는 단체에서 찾아와서 항의하고 따져요.
Q . 나의 성정체성을 깨달은 때가 언제였어요?
A . 저는 젠더 퀴어(젠더를 남성과 여성 둘로만 분류하는 기존의 이분법적인 성별 구분을 벗어난 종류의 성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예요. 양성애자도, 동성애자도 아니에요. 초등학교 때 하리수씨가 데뷔했고, 홍석천 씨가 커밍아웃을 했어요. 이들이 얘기하는 게 무엇일까 하고 관심을 가졌어요. 책을 찾아보고, 관련 기사를 읽었어요. 그리고 나의 젠더를 생각하게 됐어요. 누구에게 보이는 성별 보다는, 내가 누구에게 애착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하게 여겨져요.
Q . 젠더 퀴어로 살면 사람들이 어떤 편견을 가져요?
A . 대학 다닐 때 투블럭 컷을 했어요. ‘여성스러운’ 옷 보단 편한 옷을 선택했어요. 교수님들이 항상 뭐라냐면, ‘너는 여자냐 남자냐’라고. 4학년이고 학번도 높은 편이어서 학생들이 대놓고 뭐라하진 않았는데, 후배들이 ‘저 사람 이상한 사람’이라고 뒤에서 얘기한다는 소리는 들었어요.
Q . 사실 말 안하거나 티 안내면 아무도 모르잖아요.
A . 내가 밥 한 끼 편하게 먹고, 눈 한번 편하게 깜박이고, 숨 한번 편하게 쉬려면 내가 내 정체성을 숨길 수 없어요. 사회 속에서 살아가려면 내가 저 사람이 누구인지 알 듯이 저 사람도 내가 누군지 알아야 해요. 그걸 숨기면 평생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 그건 내 모든 부위마다 안대를 씌워놓고 보지 못하게, 느끼지 못하게 하는 기분이에요. 그건 삶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요.
Q . 인생의 가치 중에서 가장 중요한건 뭐예요?
A . 아주 소박한데요,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있거든요. 그 사람이랑 거리를 걸어 다니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거,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거요. 너는 남자냐 여자냐, 라고 물어보지 않는 사회를 추구해요. 내가 어디를 가든, 내가 설 자리를 만들려면 인식 개선을 할 수밖에 없어요. 활동 할수록 부산에 있는 게 중요하게 느껴져요. 여기서 변화를 일으켜야 돼요. 내가 태어났고, 살았고, 살아갈 사회니까.
이가영은 조근조근 자기 이야기, 사회 이야기, 부산 이야기를 했다. 가늘고 낮은 목소리였다. 그래서 더욱 한마디 한마디를 흘려 들을 수 없었다. 소수자로 살아가고, 인권 활동까지 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면서도 뻔 한 질문 밖에 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 혹은 그녀가 아니라, 이가영은 이가영으로 내 기억 속에 남았다. 남성이냐 여성이냐 하는 것을, 특히 사회적 성을 결정하지 않는다고 사회가 나빠지는 걸까? 이가영은 그냥 잘 웃는 사람, 친절한 사람, 자기 신념이 있는 사람일 뿐이다. 그 사실 만으로도 소수자는 힘들어야 한다. 아주 약간의 이해, 아주 조금의 노력이, 그렇게나 힘든 것일까?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부산문화재단의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한 무지개다리 사업 일환으로 추진됩니다.
우리가 속칭 ‘소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어쩌면, 인종이나 민족, 장애, 성별, 외모, 학력, 가족 구성, 지역, 사회적 신분 등
사회가 정한 틀에 의해 소수자로 분류된 건 아닐까요.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우리 모두 다 소수자라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부산에 살고 있으면서 사회적 편견을 경험한 40인의 지구인 에피소드’를 기록해
그동안 깨닫지 못했거나 무관심 했던 우리 안의 배타성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부디 40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마음에 작은 파도가 일렁이기를 소망해 봅니다.
_ 부산문화재단 × 김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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