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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Mar 02. 2017

신념에 따라 산다는 것

김유리가 만난 지구인 15 _ 편집디자이너 정종우.






 병역을 거부한 사람에 관해 사람들은 어떤 시선을 보낼까? 멀리 볼 것도 없이, 인터뷰에 함께 간 포토그래퍼 조차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다. 나는 뭐 빠지게 군대 갔다 왔는데, 그 사람은 뭐예요. 일이니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면서도, 나는 병역거부자를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지 몰라 쩔쩔 맸다. 그러나 인터뷰가 끝난 뒤, 포토그래퍼는 인터뷰 전에 자신이 한 말을 후회했다. 내가 어쩌지 않아도 그의 삶, 날것 자체가 그를 감동 시킨 것이다. 정종우는 평범하고 성실한 사회인이었다. 매일 일터에 나가 일을 하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크게 욕심 부리지 않는 사람. 평범한 삶이 편견 하나를 무너뜨렸다. 

           





Q . 자신을 소개해 주세요.

    

 A . 올해 서른 두살이고요. ‘스토리머지’라는 디자인 사무실을 운영하는 개인사업자예요. 아는 분이랑 같이 해요. 편집디자인이랑 인쇄물을 같이 해요. 간간히 구청 사업으로 벽화 그리러 가고요. 오늘은 트럭 몰 사람이 필요하대서 트럭 운전했어요. <디지털 채색의 정석>이라는 책도 썼어요. 


    

Q . 그림을 언제부터 하셨어요? 

    

A . 고등학교 3년 동안 입시 미술을 했어요. 대학은 못 갔는데, 취미로 디지털 그림을 계속 그렸으니까 그걸 하면서 지금 까지 왔어요. 웹디자인과가 있는 고등학교를 갔거든요. 툴은 다 다룰 줄 아니까 지금 일을 하게 됐어요. 학교 밖에서 배운 게 더 많지만요. 


    



Q . 미술을 하면 다들 대학을 가잖아요. 학력 때문에 고민한 적은 없으셨어요? 

   

A . 혼자 일한 적이 별로 없어요. 단체에 들어가거나 팀이랑 같이 활동했어요. 팀으로 활동하면, 그중 한명만 학력이 좋으면 되더라고요. 그래서 돈을 버는 일만 고민했지 학력은 신경 쓰지 않았어요. 활동하는데 제약은 별로 없었어요. 근데 동종업계 사람들이 험담을 하는 경우는 있어요. 일이 많이 들어 올 때요. 


   

Q . 자기 일을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A . 이 일을 좋아한다기 보다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는 거고, 이것만 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이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고, 프라이드를 마땅히 가져야 하는 사람들은 있어요. 그 사람들이 보기엔 내가 애정도 없으면서 디자인을 왜 하나 싶은 거죠. 하지만 이건 그냥 내 일 이예요. 대단히 큰 일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가질 수 있는 직업 중 하나요. 

 

   

Q . 수입이 어떠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A . 그렇게 많지 않아요. 디자인 사무실을 둘이 하잖아요. 둘이서 매달 100만원씩 가져가다가, 이번부터 130만원씩은 가져가자, 할 정도니까요. 200만원 벌면 더 좋겠지만 그렇게 욕심은 없어요. 올해는 지게차 운전을 배워서 그 일을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디자인 일이 지게차보다는 편하니까 그만큼을 감수할 필요는 있는 것 같고. 마음이 딱 정해지지 않았어요. 


 저는 경쟁을 싫어해요. 사람들이 이익 때문에 내뱉는 말이나, 질투나 시기 같은 걸 별로 안 좋아해요. 같이 밥 먹으면서 밥값 누가내지 하는 고민도 별로고요. 그냥 내가 내고 싶어요. 한명 뽑는 일 면접 보러갔는데 나 말고 또 한 사람이 왔다면,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싶어요. 저는 딴 일자리 찾으면 되죠.





Q .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궁금해요.

   

A . 종교가 ‘여호와의 증인’이에요. 그 종교 자체가 분위기가 그래요. 경쟁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고요. 그 안에서 나랑 비슷한 사람들이랑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어요. 



Q . 종교 때문에 군대 문제가 컸겠어요

   

A . 병역 거부를 했고, 1년 6개월 형을 받았어요. 모범수로 가석방 돼서 1년 4개월 살았고요. 판사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지금 법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는걸 알기 바란다.’라면서 형을 내렸어요. 그 이하를 받으면 문제가 다시 거론되거든요. 어느날부터 병역 거부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어서 그런 게 아니라, 나한테는 그런 삶이 당연했어요. 교회 친구들도 그랬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총을 들지 않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내 안에서는 단순한 문제였는데, 시간이 더 지나고 나서 생각해봐도, 그 선택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Q . 수형 생활이 힘들지 않았어요? 

   

A . 처음엔 눈물이 났어요. 나만 세상에 혼자 똑 떨어진 것 같았어요. 그런데 며칠 만에 적응했어요. 내가 대단해서 적응한 게 아니라, 누구라도 적응은 할 수 있어요. 거기 사람들도 결국 사람이니까, 나쁜 짓해서 거기 왔지만 결국은 나랑 같은 사람이니까요. 같이 웃고 밥 먹고 하다보니 ‘사람’이라는 존재가 더 이해됐어요.  


  



Q . 누구라도 이해하는 습관이 좋아 보여요.    


A . 근데 그렇게 좋지만은 않아요. 단점이 있어요. 여자 친구가 나의 그런 습관을 별로 안 좋아해요. 예를 들어 나랑 이야기 하고 있는 사람이 오늘은 잘 웃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 놓이면 난 ‘오늘 이 사람 기분이 좋지 않은가 보다’ 라고 그냥 판단내리거든요. 여자 친구는 ‘그런 판단을 왜 당신이 하냐’라고 반문해요. 객관적으로 보면, 저는 갈등을 겪지 않으려고 이해를 선택하는 거죠. 마음이 약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논리적으로 말싸움을 잘 못해서 그렇기도 하고요. 외려 피하려고 하는 거죠. 

     


Q .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어요. 

   

A . 네, 맞아요. 그래서 평생 거짓말을 안 하고 살았어요. 근데 여자 친구 만나면서 얘기를 한다든가, 사실을 말 할 때 갈등이 있었어요. 최근에는 사회적인 언어를 배워가고 있어요. 


 누구에게 누구를 소개할 때, 사람들은 그냥 ‘지인입니다’ 하잖아요. 근데 저는 ‘제가 어디서 어떤 일하다가 만난 분의 동생입니다’라고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근데 이걸 축소시키고 간결하게, 정보를 덜 주는 게 상대에게 더 편하잖아요. 일로 만난 사람이 만약 나한테 전화를 해요. ‘어디냐’고 물어요. 그럼 저는 ‘볼일 좀 보고 있습니다.’라고 짧게 말하는 것보다 ‘어떤 일로 어디에 와서 뭘 하고 있는 중입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게 더 쉬워요. 아는 형님이 그 통화를 듣고 있다가 ‘너 지금 상사한테 보고 하냐’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 말 듣고 보니까 그렇게 보이기도 해요. 그런 걸 배워가고 있어요.         








그는 여자 친구 이야기를 많이 했다. 점잖고 차분한 톤을 유지하면서도, 여자 친구가 얼마나 자신의 삶을 변화시켰는지에 대해 시종일관 진지했다. 대단한 사랑에 빠진 게 분명했다. 사랑에 빠진 남자, 편집 디자이너, 지게차 드라이버를 지망하는 남자, 트럭을 잘 모는 남자, 정종우는 그런 사람이다. 그 뿐이다. 그는 자신이 한 선택에 대가를 치렀고, 신념에 따라 산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 남을 속이지 않는 것,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총을 들지 않는 것, 모든 것은 그에게 동일한 선상이다. 변화를 일으키는 씨앗은 신념에서 비롯된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내가 옳다고 믿어온 것을 실천할 수 있었을까? 나에 대한 회의로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부산문화재단의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한 무지개다리 사업 일환으로 추진됩니다. 
 우리가 속칭 ‘소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어쩌면, 인종이나 민족, 장애, 성별, 외모, 학력, 가족 구성, 지역, 사회적 신분 등 
 사회가 정한 틀에 의해 소수자로 분류된 건 아닐까요.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우리 모두 다 소수자라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부산에 살고 있으면서 사회적 편견을 경험한 40인의 지구인 에피소드’를 기록해 
 그동안 깨닫지 못했거나 무관심 했던 우리 안의 배타성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부디 40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마음에 작은 파도가 일렁이기를 소망해 봅니다.  

                                                                      _ 부산문화재단 × 김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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