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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Jul 24. 2018

1904, 흐르는 섬 가덕도_김영배님

선창마을 김영배님

인터뷰 영상 링크



https://youtu.be/-t986ax-fLg








선창 김영배(78세) / 남성 _ 가덕도로 온 피난민들

     

가덕도에 몇 대째 살고 계세요?

저는 ‘선창길20’에 사는 김영배입니다. 이 부락에서 출생했고요, 1941년생. 칠십 여덟 살입니다. 가덕도에서 3대를 살았고요. 제 할아버지 때 가덕도에 들어왔다고 하더라고요. 할아버지 고향은 잘 모르고요, 할아버지 중시(작은 형) 되시는 분이 진해 해군 통제부 안 있습니까? 거기 사격하는 부락이 있었답니다. 거기서 살았다고 그러더라고요. 그 이야기만 알지, 정확히는 잘 모릅니다.

     

한국전쟁을 겪으셨군요.

6.25사변 때 우리가 초등학교 4학년인가 그랬어요. 직접 겪진 않았는데 가덕도로 피난 온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피난 온 아이들이 우리 학교에서 같이 공부를 했습니다. 저 위에 소양원, 천양원이라는 고아원이 있었거든요. 고아원 아이들이 입학해가지고 공부를 같이 했어요.  그 전에는 고아원이 없었는데, 6.25사변이 나고 사람들이 많이 오니까 그 때 생겼어요. 저는 어릴 때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숙모 밑에서 컸습니다. 우리 식구들만 해도 많았어요. 그런데 면사무소에서 나와 가지고 무조건 피난민을 한 가구 이상 입주 시켜야 된다, 그래가지고 그 사람들이 거기서 아래채 창고에서 피난 생활을 했어요. 그분들이 소나무 껍질을 벗겨서  송진떡을 해가지고 얻어먹은 기억이 있어요. 6.25사변 때 진동(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까지 이북 군인들이 내려 왔거든요. 그 때 피난민들 많이 왔습니다. 집이 넓은 곳은 2가구, 3가구씩 살고 그랬어요. 그 때 가덕도는 배만 다니는 섬이었습니다. 지금은 신항 해가지고 다리도 놓이고 차들이 바로 오고 그러지만, 옛날에는 배. 동력선도 아니고 목선. 사람이 노를 젓거나 풍선(바람으로 움직이는 배)으로 용원(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용원동)까지 왔다 갔다 하는 도선(나룻배)이 있었어요. 그 길로 오지 않았나 싶어요.

     

옛날에 가덕도 사람들은 뭘 해서 먹고 살았나요?

섬이다 보니, 농사 같은 건 부족하고 주로 바다에 먹을 것이 많았어요. 가덕도 바다엔 자원이 굉장히 많았어요. 신항이 들어선 그 바다가 사실 황금바다입니다. 고기도 많고, 조개, 여러 해산물이 억수로 많이 나고 그래서 황금바답니다. 그런데 신항이 들어서는 바람에. 보상을 조금 받았지만, 어민들한테는 피해가 많았지요. 계속 바다에서 고기 잡고 그랬으면 더 잘 살 수 있는 여건이었습니다.

     


어르신은 어떤 일을 하셨어요?

저는 학교도 별로 좋은 데를 못 나오다 보니, 바다서 고기잡이 해가지고 생계유지했지요. 고기잡이 하는 게 사실상 부정업(불법)입니다. 삼중망(3장을 겹친 그물)이라는 게 있어요. 그게 부정업이지만 바닷가에서 먹고 살 길이 그 길 밖에 없으니. 그물 양 가 쪽은 구멍이 크고 중간은 촘촘하거든요. 촘촘하면, 고기가 촘촘한 곳에 걸려서 파닥이다보면 휘감겨서 꼼짝 못해요. 그게 삼중망입니다. 이젠 정치망(정해진 자리에 고정으로 어장을 설치해놓고 하는)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정치망은 고기가 물 따라 오다가 자연적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어요. 어장을 설치해 놓으면, 새벽 4시나 돼서 일어나가지고 어장 가서 고기를 낚는다 아입니까. 잡아서 수협에 가서 입판 시키고 하는데. 그것도 어장이 며칠 지나면 때가 많이 끼인다고요. 그러면 고기가 안 들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씩 씻어가지고 다시 설치해서 고기를 잡아요. 그물을 씻어서 햇볕에 말리는 걸 이런 데서는 ‘볕갈이’라고 하지요. 볕에 쬐어 말리는 겁니다. 그래하면 고기가 잘 들지요. 둑이 차고 그물이 더러우면 고기가 잘 안 들죠. 그런데 더러워야 드는 고기가 있어요. 전어, 숭어 같은 건 물이 맑아야 하고, 감성돔 많이 들어봤습니까, 그거는 깨끗하면 그물에 잘 안 들어갑니다.

     

바다에 매일 나가시는 거예요?

그렇죠. 어장만 볕갈이 해가지고 물에 넣어만 놓으면, 아침에 보면 고기가 들어가 있거든요, 그럼 그물을 털어요. 어장 자리에 다라 고기가 많이 드는 곳이 있고, 적게 드는 데가 있습니다. 저는 자리가 별로 안 좋아서 많이는 못 잡았어요. 태풍 같은 게 온다든지 하면 고기가 좀 더 들어요. 물이 너무 맑을 때는 고기가 숨을 데가 없으니까 적게 들고. 겨우 뭐, 한 달 생활 할 정도는 벌지요.

     

지금은 없는 옛날 풍경들 기억나는 게 있으세요?

(웃음)그걸 한 마디로 하려하면 힘 드는데, 옛날에는 여기(인터뷰 장소)가 전부 바다였거든요. 바다에서 생활을 많이 했어요. 눈 딱 뜨고 나면 바다에 나가고, 집에서 밥 먹고 또 나가면 바다에서 생활하고, 많이 그래 했지요. 지금은 신항만이 들어서고 바다가 전부 막혔다 아닙니까. 골모양으로 조금씩 남긴 했는데…….

     


옛날과 지금이 뭐가 크게 달라지셨나요?

옛날엔 어장에 가서 고기가 많으면 기분이 좋고, 없으면 기분이 안 좋고 그랬어요. 고기 잡는 사람은 그래요. 그런데 이제는 못 잡지요. 나이도 있고, 어장 자리가 전부 신항만으로 바뀌었고요. 옛날에는 부정업을 해먹고 살았는데 지금은 할 수도 없고. 옛날에 여기 안쪽에는 큰 태풍이나 바람이 안 불면, 호수 같은 바다였어요. 항을 벗어나서 먼 바다로 나가면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파도가 세고 하니 못 간다아닙니까. 지금 젊은 사람들은 그 쪽에서 어장해서 대구도 잡고, 물 메기도 잡고 그래 하지만, 우리들은 나이가 많기 때문에 이젠 못 합니다.

     

지금도 어업 하는 젊은 사람들은 있네요?

예, 가덕도 대구 유명하잖아요. 전국에서 우리 가덕도 대구 제일 맛있다고 하잖아요. 우리 가덕도는 낙동강하고 제일 가깝다 아닙니까. 대구가 동해서 남해로 옵니다. 대구가 민물을 먹고 산다 아닙니까. 그런데 동해서 가덕도로 빠지는 길, 큰 바다로 해서 거제도로 빠지는 길이 안 있습니까. 그러면 아무래도 낙동강 민물을 많이 못 먹는다 아닙니까. 그래서 가덕도 대구가 맛있지요.

     

가덕도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뭔가요?

조그마한 섬이니깐 사람들이 가덕도를 잘 모르죠. 크게 뭐 자랑 할 건 없는데, 이순신 장군도 천성에서 진을 치고 왜군을 물리쳤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가덕도 등대 쪽으로 가면 동백골이 경치가 좋고요. 우리 어릴 때도 봄이면 관광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또 가덕도 사람들 모두가 인심이 좋습니다. 외지에서 오는 사람들 먹고 살 수 있게끔 인도해주고요. 옛날에도 가덕도만 들어오면 굶어죽는 사람 없었어요.

                           

                           

     

  







1904, 흐르는 섬 가덕도

     

기획  부산광역시 강서구 문화체육과

발행처 부산광역시 강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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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김유리

원고  김유리

영상  문창현

사진/업로드 박준혁

     

제작총괄 다양성 출판사 키스더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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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상에 딸린 텍스트는 저자, 부산광역시 강서구청,

다양성출판사 키스더북스의 동의 없이 무단으로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이 영상의 모든 인터뷰는 인터뷰이와의 동의 하에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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