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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지완 Feb 18. 2016

Do something in Pai

All about coffee는 이제 없다. 프로파간다 그림들도.

빠이는 치앙마이에서 미얀마 방향으로 마지막 도시인 매홍손으로 가는 중간의 작은 마을이었다. 싼 숙소와 경치도 그럭저럭 좋았고 음식도 먹을 만 해서 배낭여행자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다른 이유도 있지만) 그리고 덩달아 태국 예술가들도 모여들었고 손수 그린 엽서나 그림도 그려 팔고 이것저것 만들기 시작했고 밤이 되면 모여서 노래 부르며 놀았다. 그 작은 거리 시장에는 주변 몽족 여인들이 내려와 자기가 만들었다고 우기며 작은 지갑이나 옷가지를 팔기 시작했다.


낮이 되면 정말 할 일이 없었다. 오죽했으면 ‘Do nothing in Pai’가 슬로건이었을까. 빠이에 모인 예술가들은 여러 가지 것들을 만들었다. 심지어 빠이의 우편 번호인 58130도 무엇인가 상징하는 것 같았고 치앙마이에서부터 100번의 커브가 있다는 것도 누군가 알아내 티셔츠에 그려 넣었다. ‘InsPAIration’이라는 문구를 보면 뭔가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러던 빠이는 점점 숙소가 많아지고 외지인들이 와서 식당과 가게를 열고 몽족 여인들은 자기들과 사진을 찍는데 돈을 요구했다. 그리고 빠이 강을 따라 대규모 리조트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빠이에서 이런저런 콘서트들이 열리더니 TV 드라마를 찍었고 히트했다. 콘서트가 열리면 마을의 모든 숙소의 방이 동나고 TV 드라마의 배경지였던 ‘커피 인 러브’는 마을을 내려다보며 느끼는 고즈넉함은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빠이는 이제 배낭여행자들이 손수 만든 두 번째 스팟이 되었다. 카오산 로드에 이어 두 번째다.


다시 찾은 빠이는 아예 다른 곳이 중심가로 변모해 있었다. 여러 가지가 변해 있었지만 즐겨 먹던 식당은 반갑게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주인으로 바뀌어 있었다. All about coffee에서는 아침 메뉴로 1번부터 5번까지 제공했었는데 어제는 2번을 먹었으니 오늘은 3번을 먹는 식이었다. 그나마 50밧(1,500원)이었으니 아주 비싼 아침 식사에 속했다. 이 층에는 멋진 프로파간다 그림들이 걸려있었다. 지금은 아마도 무슬림인 것 같은 여주인으로 바뀌어 있었다. 상호도 달랐다. 그림은 없어졌고 커피값은 여전히 비싸다. 세수도 안 한 채로 이 커피숍에 나와 ‘어제 몇 번을 먹었더라?’ 하며 커피가 목구멍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제야 눈이 번쩍 떠졌다. 그리곤 바라 본 벽에는 ‘Eye opening coffee’라고 쓰여 있었다. 이제 그 아침 토스트 메뉴는 없어졌다.


버스에서 내리니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비를 맞으며 몇 군데 숙소를 헤매다 어떤 곳에 들어갔다. 한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숙소의 특징은 깨끗하다는 것. 온수 샤워는 물론 수압까지 체크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택하는 숙소는 그런 면에서는 최고다. 독채 방갈로식으로 된 숙소. 내가 좋아하는 타입이다. 역시 맨 마지막부터 네 개의 방갈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있었다.


방에서 나오지 않은 한 분을 빼고는 수다 떠는 걸 좋아해서 셋이 모여 맥주를 마셨다. 그들에게 빠이는 나의 빠이와는 달랐다. 처음 온 남자와 두 번째 오는 여자. 처음 온 남자는 이곳이 인제야 여행자들이 찾는 곳이라고 알고 있었다. 여자는 태국 북부의 가장 아름다운 하늘을 가진 마을로 각인돼 있었다. 


그러다 마지막 방의 여자분과도 인사했다. 빠이에 오고 나서 그만 푹 빠져 버려 오 개월을 넘게 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곧 한국에 가지만 다시 짐을 정리하고 돌아 올 거라고 말했다. 그녀에게 빠이는 그곳에서의 내 첫 느낌과 같은 것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나치게 각박하게 살아서 여행 나오면 바쁘게 일정을 잡고 그야말로 미친 듯이 노는 거라고 그녀가 이야기했다. 그녀가 빠이에 빠진 이유도 그런 것이 아닐까. 지나친 관계 중심적인 한국 사회가 싫어서 떠났다고 했다. 그리고 빠이에서 그녀는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많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내가 빠이의 속살을 알고 있다면 빠이는 상처받고 딱지가 앉고 새 살이 돋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딱지는 흉터가 돼서 더는 속살을 보여주지 못할 상태가 되었을 수도 있고.

Pai, Thai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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